'끝사랑' 찾아 제주온 노총각
"여기 한번 빠지면 못 헤어나요"

[1인가구 마을과 만나다⑫-탈도시1] 신용철 <제주신문> 기자

등록 2015.03.24 11:34수정 2015.03.24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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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2013년, <오마이뉴스>는 '마을의 귀환' 특별기획을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위험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대안으로 마을공동체를 제시한 바 있습니다. 마을의 귀환 시즌2는 '1인가구 공동체'에 주목합니다.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는 1인가구와 마을공동체, 언뜻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데요. '1인가구'와 '공동체', 나아가 '마을'의 만남은 가능할까요. '탈고립', '탈가족주의', '탈자본주의', '탈도시'... 1인가구를 위한 마을사용설명서, 지금 공개합니다. [편집자말]
 신용철 씨가 8일 오전 제주 서귀포 안덕면 군산오름 정상에서 혈혈단신으로 건너온 3년차 제주 이주에 대해 "하얀 도화지 위에 그림을 그리는 심정"이라며 소회를 밝히고 있다.
신용철 씨가 8일 오전 제주 서귀포 안덕면 군산오름 정상에서 혈혈단신으로 건너온 3년차 제주 이주에 대해 "하얀 도화지 위에 그림을 그리는 심정"이라며 소회를 밝히고 있다.유성호

"'두고 온 고향 보고픈 얼굴 따뜻한 저녁과 웃음소리, 고갤 흔들어 지워버리며...' 제가 신해철을 좋아하거든요. 제주 올 때 '민물장어의 꿈'을 정말 많이 들었어요. 아직도 그 느낌을 잊지 못해요. 딱 이 차에. 이 안에 책이며 짐 꽉꽉 채워 가지고, 배타고 올 때. 설렘 반 두려움 반. '지금 이 순간'에 나오는 그 노랫말처럼 '신이여, 도와주소서...'"

2013년 6월. 고향 청주를 떠나 제주로 오던 그날을 신용철(40)씨는 이렇게 회상했다. 그에게 다시 한 번 물었다.

"진짜, 아무 계획 없이 오신 거예요?"
"좋게 이야기하면 낭만이 있는 거고. 나쁘게 이야기하면 개념 없이 온 거죠. 그냥 제주가 좋아서요. 까짓것 굶어 죽겠어(웃음)."

2005년부터 시작한 기자 생활. 제주에 오기 전까지, 서울과 청주에서 4개의 매체를 거쳤다. 진보성향의 월간지, 주간지, 인터넷 신문, 종교매체까지. 매체가 문을 닫거나, 월급이 제대로 안 나오거나, 후배 양성이 안 되거나. 누구 못지않은 열정과 사명감을 가지고 일했지만, 진보는 늘 배가 고팠다.

2011년 6월. 10여 년의 서울생활을 접고 고향 청주의 한 주간지에서 일할 때였다.

"후배랑 같이 제주에 왔는데, 일주일 동안 있으면서 제주의 풍광에 완전히 반한 거죠. 그 이후로 월차를 내고, 한두 달에 한 번씩 꼭 제주에 왔어요. 이제 제가 월차를 내면, 동료들이 그러는 거죠. '왜, 또 제주 가려고'. 제가 페이스북을 열심히 하니까, 제주 왔다고 올리면 '너 제주에 숨겨둔 애인 있냐', '너 돈 많구나' 그랬어요."

그에게 제주는 특별한 곳이다.


"짝사랑했던 사람이 제주 사람이었고, 첫사랑이랑 처음 이곳에 여행을 왔어요. 그래서 제가 말하죠. 제주에 끝사랑 찾으러 왔다고." 

"까짓것 굶어 죽겠어, 그냥 제주가 좋아서 왔어요"


 뱃일 등 여러 육체노동을 거쳐 다시 <제주신문>에 기자로 취직한 신용철 씨가 7일 오후 제주 애월읍 새별오름에서 열린 '2015년 제 18회 제주들불축제'를 취재하고 있다.
그는 "제주도 이주를 결심할 때 몸 쓰는 일을 해보자고 생각했는데 제주 토박이들을 만날 기회도 많아지고 정보도 공유할 수 있다는 장점에 다시 기자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뱃일 등 여러 육체노동을 거쳐 다시 <제주신문>에 기자로 취직한 신용철 씨가 7일 오후 제주 애월읍 새별오름에서 열린 '2015년 제 18회 제주들불축제'를 취재하고 있다. 그는 "제주도 이주를 결심할 때 몸 쓰는 일을 해보자고 생각했는데 제주 토박이들을 만날 기회도 많아지고 정보도 공유할 수 있다는 장점에 다시 기자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유성호

지난 7일, 제주에서 신용철씨를 만났다. '들불축제'가 열리는 새별오름에서 시작된 인터뷰는 그의 차 안, 대평리의 한 식당 그리고 그의 집으로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그는 자신이 제주에 오게 된 이유의 팔할은 대평리 때문이라고 했다. '대평리를 꼭 보여주고 싶다'며 자신의 차로 대평리를 한 바퀴 돌았다.

"올레길을 걷다가 한 게스트하우스를 갔는데, 거기서 만난 형이 있어요. 그 형이 대평리를 권해주는 거예요. 와 봤더니, '뭐 이런 데가 다 있나' 싶더라고요. 여기는 길이 끝나는 지점이에요. 조용한 남쪽바다, 고즈넉한 시골의 정서가 남아있어요. 옛날부터 제주는 '3무'라고 하거든요. 대문이 없고 도둑이 없고 거지가 없다고. 그런데 여기는 지금도 대문이 없어요. 서귀포시에서 유일하게 대문이 없는 마을이라고 하더라고요. 보세요. 정말 대문이 없죠. 요즘 대문 있는 집들이 생겨나는데, 그건 외지 사람들이 지은 집이에요."

그는 대평리 바다 근처 자신만의 '아지트'도 보여줬다.

"멀쩡한 집 놔두고 여기서 텐트치고 자고 그랬어요. 베짱이처럼 책 읽고 기타 치고. 집 안에서는 파도소리가 안 들리는데, 밖에서 자면 파도소리가 들리면서, 행복해요(웃음). 대평리의 매력에 한 번 빠지면 못 헤어난다니까요." 

얼마 전 이사했다는 그의 집으로 들어가자, 거실 겸 부엌에 가지런히 놓인 기타 4대와 악보대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그가 왜 스스로를 '소년'이라고 부르는지 알 것 같았다.

"제주 오는 사람들한테 조언해 달라고 하면, '제주가 만만한 곳이 아니니까 잘 보고 와라' 다들 그러거든요. 그런데 저는 그냥 왔어요. 머리 쓰는 일 10년 정도 했으니까, 이제 몸 쓰는 일 해보자. 그래서 처음에 뱃일을 했어요. 일은 할 만했는데 배 멀미가 너무 심했어요. 아무리 지나도 안 괜찮아 지는 거예요. 결국 두 달 만에 그만뒀죠."

이후 논술 과외, 귤 판매, 여행사 운영 등을 하던 그는 다시 '신 기자'로 돌아왔다. 현재 그는 <제주신문>에서 일하고 있다.

"여행사를 하다보니까 육지 사람들만 만나는 거예요. 저는 제주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어요. 원래 뱃일 안 하면 택시 기사를 하고 싶었거든요. 택시 타고 다니면 제주 곳곳을 다닐 수 있으니까. 기자 다시 할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동화든, 시나리오든 '글 밥'을 먹으면서 살고 싶긴 했지만요. 그래도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기자를 하면 제주 사람들을 다양하게 만날 수 있잖아요. 지금 있는 신문사 말고 딴 데 면접 보러 갔다가 들은 말이, '우리는 육지 출신 기자 안 뽑는다'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육지 출신 기자가 점점 늘어나는 것 같아요."

"사람 냄새 나는 공간 만드는 게 꿈"

 신 씨는 대평리의 평화로운 풍광을 조망하기에는 이곳이 적격이라며 군산오름 정상으로 일행을 인도했다. 그는 "자신을 제주로 이끈 까닭의 팔할은 대평리 때문이다"고 말했다.
신 씨는 대평리의 평화로운 풍광을 조망하기에는 이곳이 적격이라며 군산오름 정상으로 일행을 인도했다. 그는 "자신을 제주로 이끈 까닭의 팔할은 대평리 때문이다"고 말했다.유성호

 신 씨는 SNS를 통해 대평리의 평화로운 풍광을 알리고 있다.
신 씨는 SNS를 통해 대평리의 평화로운 풍광을 알리고 있다.유성호

그는 사람을 좋아한다. 전날, 그의 집에서는 <제주신문> 동료들이 모여 집들이를 했다고 한다. 동이 틀 때까지. 다음날 저녁에는 서울에서 언론사 선배가 오기로 했다. 그의 전화는 쉴 새 없이 울렸다. '주(主)님'을 믿는다는 그는 "매일 저녁 주(酒 )님을 모신다"고 했다.

그가 얼마 전부터 '우리 마을을 찾아서'라는 연재 기획을 시작했다. 매주 한 곳씩, 제주 마을을 찾아가 이장님들을 만나고 있다. '소길댁' 이효리로 유명해진 소길리를 시작으로, 온평리, 가시리, 가파리 등의 마을을 소개했다. 취재를 마치고 이장님들과 막걸리 한 잔을 기울이기도 한다. 

이주민들이 제주에서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이주민 전문기자'가 되고 싶다는 그는 "제주가 '괸당' 문화라고 하는데, 이장님들이랑 만나서 이야기해보면 오히려 원주민들은 이주민들과 가까워지려고 하고 있다"면서 "이주민들이 원주민들과 소통을 하지 않으려 하고, 자신들만의 요새를 만드는 경우가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사람을 좋아하는 그이기에, 혼자 있을 때면 사무치게 외롭기도 하다.  

"세월호 이후 제 알람 시각은 0416이에요. 새벽 4시 16분. 아침 시간을 확보하지 않으면 제 시간이 없더라고요. 새벽의 기운 때문인지, 아침에는 외롭지 않아요. 그런데 저녁이 되면 막 밀려와요. 외로움이." 

오는 6월이면 제주온 지 2년. 그는 자신에게 선물을 하나 주기로 했다. 바로 '우리들만의 아지트'. 지난해 12월,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저는 이곳 제주에서 '대형사고(?)' 하나를 치려고 합니다. 다름 아니라 제주에서 300만 원으로 땅을 사고 집을 짓거나 잘 지어진 집을 인수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냐구요? 혼자서는 이룰 수 없지만 여럿이서 함께 하면 이룰 수 있습니다.'

1인당 300만 원씩, 100명을 모집해 제주 대평리에 아지트를 만드는 것. 300만 원을 낸 이들에게는 30년 동안 아지트에서 1년에 10박을 할 수 있는 이용권을 줄 예정이다. 이용권은 양도, 양수, 선물, 상속이 모두 가능하다. 100명이 한 번에 올 일은 없으니, 최대 30명이 머무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 계획이다. 운영비는 비조합원들을 대상으로도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해 충당하려고 한다. 아지트 이름도 이미 구상했다. 체게바라와 함께 세계를 여행했던 낡은 오토바이 '포데로사'.

"제가 제주도에 있으니까, 가끔 전혀 일면식도 없던 분이 페이스북 통해서, 제주에 왔는데 차라도 한 잔 할 수 있겠냐, 올레길 같이 걸을 수 있겠냐고 물어올 때가 있어요. 언제나 불이 켜져 있고, 서로가 말벗, 길벗, 술벗, 아침에는 차벗까지 함께 될 수 있는 그런 공간을 하나 만들고 싶어요. 협동조합 형태의 게스트 하우스인 거죠.

딱 문 앞에 '발기인 명단' 이런 식으로 붙일 거예요. 피 한 방울 안 섞였지만 우리는 가족 같은 관계가 되는 거죠. 의미 있는 일이 있다면 조합원들이랑 상의해서 공간을 대여해줄 수도 있고요. 제가 '노빠'거든요. 노무현 좋아하고, 신해철 좋아하고, 저랑 결이 맞는 분들이 함께 했으면 좋겠어요. 제주에서 사람 냄새 나는 공간을 만드는 게 꿈이에요. 기한을 30년으로 한 이유는, 제가 70살 넘어서 이걸 계속 할 자신은 없어서요(웃음)."

"행복하려고 왔으니 행복하게 살 겁니다"

 협동조합 형태의 게스트 하우스 '우리들만의 아지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신용철 씨가 8일 오전 그 예정지로 점 찍어둔 제주 서귀포 안덕면 대평리 바닷가에서 그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는 "협동조합 형태의 게스트 하우스로 말벗, 술벗, 길벗, 차벗을 만날 수 있는 사람 향기가 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꿈이다"고 설명했다.
협동조합 형태의 게스트 하우스 '우리들만의 아지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신용철 씨가 8일 오전 그 예정지로 점 찍어둔 제주 서귀포 안덕면 대평리 바닷가에서 그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는 "협동조합 형태의 게스트 하우스로 말벗, 술벗, 길벗, 차벗을 만날 수 있는 사람 향기가 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꿈이다"고 설명했다.유성호

 신용철 씨가 대평리 바다 근처 자신만의 아지트를 보여주며 대평리의 매력을 자랑하고 있다.
신용철 씨가 대평리 바다 근처 자신만의 아지트를 보여주며 대평리의 매력을 자랑하고 있다.유성호

그동안 쌓아온 인맥을 통해 이미 100명 가운데 70~80명 정도는 모집이 된 상황. 불과 3~4년 전만 해도 평당 10만 원 대였던 대평리 땅값은 현재 100만 원 대로 뛰었다. 3억 원으로는 예상하고 있는 규모의 공간을 만드는 데 돈이 빠듯할 수도 있어서 최대 153명까지 '식구들'을 모집할 계획이다. 얼마 전 크라우딩 펀딩을 오픈했지만, 적지 않은 금액 때문일까. 펀딩이 쉽지는 않다.

그는 우리에게 아지트 예정 부지 두 군데를 보여줬다. 탁 트인 하늘 아래 뒤로는 산이, 앞으로는 바다가. 탄성이 절로 나왔다. 그는 "100명을 모집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규모를 축소하는 등 상황에 맞게 아지트를 꼭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와의 인터뷰는 다음날 오전 군산오름, 안덕계곡 투어로까지 이어졌다. 꼭 보여주고 싶은 게 많단다. 여전히 궁금한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은 그를 보며 '몽상가'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신해철 노래 중에 'Dreamer'라는 노래가 있어요. 가사가 '난 아직 내게 던져진 질문들을 일상의 피곤 속에 묻어 버릴 수는 없어...'. 제가 그래요. 제주에 사는 것도, 사람 사는 건데. 당연히 퍽퍽할 때가 있어요. 지금 만약 고향에 있었다면, 가족들이랑 따뜻한 밥 먹으면서 외롭지 않을 수 있었겠죠. 그래도 여기는 자연이라는 선물이 주어지니까요. 제주에 행복하려고 온 거잖아요. 전 행복하게 살 거예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신 씨는 "짝사랑했던 사람이 제주 사람이었고, 첫사랑이라 처음 이곳에 여행을 왔다"며 "이젠 제주에서 끝사랑을 만나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신 씨는 "짝사랑했던 사람이 제주 사람이었고, 첫사랑이라 처음 이곳에 여행을 왔다"며 "이젠 제주에서 끝사랑을 만나면 좋겠다"고 말했다.유성호

덧붙이는 글 '우리들만의 아지트' 크라우드 펀딩 주소 http://www.ohmycompany.com/renew/project/prjView.php?bbs_code=von_project&seq=432
#1인가구 #마을 #제주 #신용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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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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