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캄보디아 따께오주, 염산테러 피해여성과 아동
Zoriah Miller, CASC
캄보디아에서는 한 해에도 여러 건의 염산테러가 발생한다. 2011년 7월 염산 판매에 관한 시행령이 발표되었지만, 해마다 인권을 위협하는 중범죄는 반복되고 있다.
캄보디아 일간지 <프놈펜 포스트> 9일자 보도에 따르면 올해 첫 염산투척 범죄가 지난 6일 새벽 6시 무렵 발생했다. 가해자는 40세의 여성 스로에운 난(Sroeun Nann)이며 그녀는 자신의 남편과 내연관계를 맺고 있다고 의심한 매스 바니(20·Meas Vanny)에게 염산을 투척한 사실을 인정했다고, 법무부 관계자가 밝혔다. 범행 이유에 대해서 난은 "남편에게 새 애인이 생겼고, (남편이) 두 달 전에 거처를 옮겼다"면서 "남편이 애인이 생겼다는 걸 나에게 통보한 후 새 애인에 대한 증오심이 커졌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치정문제가 강력 범죄로 이어진 것인데, 염산테러의 경우 여성이 여성을 상대로 벌이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 바니는 염산테러를 당한 직후 바니의 언니에게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얼굴과 몸에 심각한 화상을 입은 상태다.
캄보디아 인권단체 리카도(Licadho)는 2003년 보고서에서 치정에 따른 원한의 앙갚음과 함께, 이웃 간의 갈등 등 흔히 발생하는 크고 작은 분쟁도 염산테러의 원인이 되는 것으로 파악했다. 그동안 발생한 사건들을 뜯어보면, 가해자가 여성인 경우가 많고 피해자 역시 남성보다 여성의 비율이 더 높다. 이는 가정 내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위치에 있지 못해서 빚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캄보디아에선 남편이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해도 여성이 보호받기 어렵다.
특히 남성이 두 번째 아내와 살게 되거나 새로운 애인이 생겨 집을 떠났을 때, 아내들은 이에 대한 화를 해소하지 못하고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염산을 무기로 '염산테러'라는 중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이 때문에 캄보디아에선 염산테러를 즉흥적인 범죄로 취급하지 않는다. 염산을 미리 구입하고, 휴대하고, 피해자의 동선을 파악하는 등 계획적인 범행 경로를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치정관계·이웃갈등 등 이유로 1년에 14명 꼴... 피해자는 주로 여성테러에 사용되는 염산은 독성이 있는데다 액체라서, 사건 현장에 피해자와 함께 있던 어린 아이들이 큰 부상을 입는 경우도 종종 있다. 테러 발생 건수보다 피해자 수가 더 많은 이유는 이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캄보디아 남부 따께오 지역에서 발생한 염산테러는 피해자가 모유수유 중에 발생한 것이어서, 아이도 피해를 입었다.
시장에서 식료품을 판매하는 뭉 스레이몸(31·Muong Sreymom)은 남편과 함께 장사할 준비를 마친 뒤 오전 7시께 2살 된 딸에게 모유수유를 하고 있었다. 뎅 레치나(22·여·Deng Leakhena)는 무방비 상태에 있는 모녀에게 범행을 저질러 뭉의 신체 44%에 심각한 화상을 입혔다. 다행히 아기는 얼굴과 팔에 약간의 화상만 입었다. 가해자인 뎅 레치나는 같은 시장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이었는데, 며칠 전에도 두 사람이 실랑이를 벌이는 등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2008년 2월에 발생한 테러 역시 여성이 아이와 함께 오토바이에 앉아 있는 상태에서 발생했다. 31세 여성과 여성의 앞에 앉아 있던 3세 아동이 함께 피해를 입은 경우이며, 가해자는 피해자의 남편인 분 춤(Bun Chum)으로 밝혀졌다. 피해 여성은 머리는 물론 얼굴과 목 등에 심각한 화상을 입어 시력을 상실했고, 청력까지 불안정한 상태이다.
캄보디아 염산테러 피해자를 위한 자선기관인 CASC(Cambodian Acid Survivors charity)가 2014년 발간한 '염산테러 피해자에 관한 연간보고서'에 따르면 1985년에서 2014년 사이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염산테러 공격은 총 329건으로 피해자 수는 412명에 이른다. 하지만 신고를 하지 않아서 파악되지 않은 숫자를 합하면, 테러 피해자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CASC는 캄보디아 염산테러 피해자의 회복과 재활을 돕고 있지만, 피해자들이 입은 정신적 외상은 더 심각하다.
2003년 리카도의 보고서에 등장하는 사례를 보자. 염산테러 피해자인 보팔(가명·여성·피해 당시 21세)은 하루하루 죽을 날을 기다린다. 그는 매일 고통과 절망, 수치심에 괴로워하며 지내고 있다. 누군가 염산 두 병을 그녀에게 쏟아부었고, 그 후 얼굴과 목, 상체에 회복하기 어려운 흉터가 남았다. 세상과 단절된 채 숨어 지내는 보팔은 죽지 않았으나 온전히 살아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삶을 살고 있다. 심지어 보팔은 "가해자가 왜 즉시 죽이지 않고, 이렇게 고통스럽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염산테러의 심각성은 피해자가 화상을 입어 신체적인 부상을 당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대다수 피해자들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람을 만나기도 어려워 대인기피증을 겪게 된다. 또 테러 이후 생긴 트라우마로 남은 생을 고통 속에서 보내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염산테러 후유증으로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을 기도하는 경우도 있다.
아내 해친 남편에 징역 5년... 중형 선고 사례 찾기 힘들어이러한 중범죄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것에는 캄보디아 당국의 안일한 염산관리도 한몫하고 있다. 물론 캄보디아 당국이 염산테러에 대한 규제 등을 강화하는 추세이긴 하다. 2011년 8월 염산관리와 염산테러범죄자 처벌에 관한 법이 국무회의를 통과했고, 2013년 1월 6개 부처의 승인으로 최종 염산관리 시행령이 발효되었다.
그러나 염산테러를 당한 후 끔찍한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피해자에 비해,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머물러왔다. 염산테러를 규제하는 법적 기준이 불명확해서 일률적인 법 집행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범행을 제재할 만한 중형 선고의 사례 역시 찾아보기 힘들었다. 아내에게 염산테러를 자행한 베 쏘운(Be Soeun)에게 법원은 2013년 1월, 벌금 10만 리엘(약 2500달러, 한화 280만 원)과 징역 5년형을 선고했다. 2011년 12월 염산 사용에 대한 법률이 제정된 후 내려진 첫 판결이었다.
피해를 입은 넴 스레다(Nhem Sreyda)는 이 판결에 대해서 "최소 10년형과 더 무거운 벌금형이 내려져야 했다"라고 말하며 경미한 처벌이 염산테러를 제재하는 데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는지 의심스러워했다.
CASC는 "이 판결은 앞으로 이정표가 되는 중요한 선고"라고 말하면서도 염산테러에 대한 중형 선고의 사례가 많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피해자들에게 범행을 자행한 염산테러범에 30년형과 종신형 등 중형을 선고하는 등 법적 구속성, 재발방지 및 악행에 대한 강력한 제재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편 캄보디아에서 염산은 주로 보석가공 및 제조공정, 고무 재배농장 등에서 사용되는데 2달러(한화 약 2200원)만 내면 1리터의 염산을 시내 어디서든 손쉽게 구할 수 있다. 물론 관련 법안에는 18세 이상의 성인만 신분증을 지참해 구입할 수 있고, 판매자가 용도에 대해 확인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를 지키는 경우는 드물다. 영세한 판매자들은 이런 조항을 지키면 구매자들을 불편하게 만들어 판매량이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설상가상으로 단속도 이뤄지지 않고 있고, 위반에 대한 처벌 또한 미비한 것이 사실이다. 법은 제정되었으나 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아무런 제재 없이 유해물질을 사고 팔 수 있는 현실은 염산테러 위험을 더욱 증폭시킨다. 염산관리에 대한 캄보디아 정부의 책임 있는 역할을 촉구한 CASC는 가해자에게 철저하게 법적 책임을 묻고 중형 선고를 통해 염산테러에 대해 강력히 제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더 이상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실질적인 규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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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 '염산테러' 한 남편에게 고작 5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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