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16살인데 '류마티스 관절염'... 세상이 달라졌다

[공모-거짓말 같은 이야기] 유병장수 시대, 자기관리 열심히 하렵니다

등록 2015.03.27 15:31수정 2015.03.27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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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분은 좋지 않은 병을 가지고 있습니다. 류마티스 관절염입니다."
"네?"


그렇게 난 2006년 중 3때 난치병에 걸렸다. 2014년에서야 내 병이 류마티스 관절염이 아니라 '강직성 척추염'(강직성 척추염은 류마티스 질환의 일종이다)으로 판명났지만, 여전히 난치병 환자로서 국가의 치료보조금을 받고 있다.

"돌팔이 아냐?" 오진인 줄 알았다

2006년 말, 중학교 졸업을 앞둔 나는 외국어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병은 불현듯 찾아왔다. 평소처럼 등교를 준비하는 10월 어느 날, 거짓말처럼 목이 돌아가지 않았다. 왼쪽으로 90도, 오른쪽으로 90도 돌아가야 할 목이 60도는커녕 30도도 돌아가지 않았다. '입시 스트레스 때문인가 보다'했다.

목이 불편한 상태로 학교와 학원을 가고, 다시 집에 왔다. 저녁이 되어서도 상황은 그대로였고 난 파스를 덕지덕지 붙인 채로 잠이 들었다. 그 다음 날은, 좀 나아진 듯했다. 하지만 11월에 있던 외고입시 때까지 완전히 낫진 않았다.

'시험도 끝나서 이젠 괜찮겠거니'하고 넘어가던 어느 날, 발목이 부었다. 발목을 삔 줄 알았던 나는 깁스를 하려고 정형외과에 들렀다. 의사가 부어오른 발목과 돌아가지 않는 내 목을 보고 마지막으로 내 이마에 손을 대더니 '야 이거는 좀 큰데'라며 근처 대학병원으로 나를 옮겼다. 그날따라 피곤했던 나는 알고보니 39℃에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고, 내 발목 역시 단순히 삔 것으로 치부하기에는 과하게 부었다.


그렇게 옮겨진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온갖 검사를 했다. 도착하자마자 피를 뽑았고 위내시경과 대장내시경을 예약했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검사는 소변검사인데, 2004년 요로결석을 겪었던 탓에 담당의사가 소변의 오염가능성을 우려해 방광의 소변을 직접 빼내려했다. 빨대 같은 관을 요도를 통해 방광으로 넣었는데, 그 고통은 체온이 40℃를 오가는 와중에도 또렷하게 기억난다.

응급실에서의 검사를 마치고 입원절차를 밟았다. 며칠 뒤에는 MRI(엠아르아이), X-RAY(엑스레이), 위내시경, 대장내시경까지 했는데도 뚜렷한 병명을 찾아내지 못했다. 나는 퇴원을 해서 집에서 보다 가까운 대학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다시 받았다. 그 곳에서 처음 받은 병명이 '류마티스 관절염'이다.


 어릴 때부터 건강한 편은 아니었다. 유난히 잔병치레가 많았고 중학교 1학년 때는 가장 고통스러운 병이라는 요로 결석까지 겪었다. 그렇다고 해서 류마티스 관절염은 상상도 못했다.
어릴 때부터 건강한 편은 아니었다. 유난히 잔병치레가 많았고 중학교 1학년 때는 가장 고통스러운 병이라는 요로 결석까지 겪었다. 그렇다고 해서 류마티스 관절염은 상상도 못했다.광고화면캡처

사실 난 어릴 때부터 건강한 편이 아니었다. 유난히 잔병치레가 많았고 중학교 1학년 때는 가장 고통스러운 병이라는 요로결석까지 겪었다. 그렇다고 해도 류마티스 관절염은 상상도 못했다. 할머니들 무릎에서 병을 캐낸다는 파스 광고에서나 볼 법한 병명을 진단받으니 황당할 따름이었다.

낭랑 18세도 되지 못한 16살인데 관절염이라니. 절망까진 아니었지만 오진인 줄 알았다. "컨디션이 안 좋아서 열이 난 건데, 스트레스를 받아서 목이 잘 안 돌아가고, 발목을 접질러서 부은 건데 관절염이라니... 의사, 돌팔이 아니야?"가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담당의사는 단호했다. 흔히들 관절 염증을 노인들이 겪는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오해다. 관절염은 크게 퇴행성과 류마티스가 있는데, 후자 같은 경우는 유전자와 관련된 질병으로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유전자라고 해서 책임이 부모님한테 있는 것도 아니다. 부모의 병력과 상관 없이 류마티스 질환은 일어난다. 그저 우연찮게 관련된 유전인자를 갖고 있었고, 어쩌다보니 병에 걸리는 것이다. 왜 걸렸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병무청에 내야만 했던 당시 병사용 진단서에는 '원인 불명의 류마티스 관절염'이라고 적혀 있었다.

물론 나이와 관련된 병이 아니더라도 나처럼 어린 나이에 걸린 경우는 흔치 않다. 국가정보포털에 따르면 류마티스 관절염이나 강직성 척추염과 관련된 유전자는 우리나라의 2~8%만 갖고 있으며 그런 사람들 중에서도 1~2%만 발병한다. 희귀병으로 줄을 세우면 서울대는 눈감고 들어갈 수 있는 수준이다.

영하 150도 방안에서 팬티만 입고 체조를

주치의는 2006년 당시 내 병을 류마티스 관절염이라고 말했지만, 8년이 지난 2014년에는 강직성 척추염이라고 고쳐 말했다. 의사의 명백한 실수가 아니냐라는 말을 할 수도 있지만 어떤 전문가들도 당시 내 병을 정확히 진단내리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중 3이던 나는 병이 얼마 진행되지 않았고 이 때문에 구체적 병명을 알아내기 어려웠다.

그리고 두 병은 이웃사촌격이다. 일단 류마티스 질환이라는 큰 틀 안에 류마티스 관절염과 강직성 척추염이 있다. 그래서 두 병을 앓는 환자 모두 류마티스 내과에서 치료 받아야 한다. 두 병 모두 '자가면역질환'에 속하며 몸이 굳는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한 가지 차이점은 류마티스 관절염 환자는 주로 노인층이고 여성이 많고, 강직성 척추염 환자는 비교적 젊은층이고 남성이 많다라는 사실이다.

무릎이나 발목, 손목 등의 관절이 붓고, 몸이 굳는 것이 류마티스 관절염의 주된 증상이다. 강직성 척추염 환자들도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 다만 류마티스 관절염은 손, 발 위주고 강직성 척추염은 척추 위주다. 난 지금도 손가락이 뻣뻣한 편이고 한 자세로 조금만 오래 있으면 목이나 어깨, 허리가 빠르게 아파 온다. 병원에 갔을 당시 내 무릎은 이미 퉁퉁 부어 있어서 주사기로 물을 빼낼 수밖에 없었다.

꽤나 두꺼운 주사기로 양쪽 무릎의 물을 빼내고서는 병원에서 냉동치료를 받았다. 액체질소를 이용해 영하 150도 가량의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서 환자가 체조를 하는 식이었다. 주로 운동선수들이 재활치료로 쓰는 방식인데, 나와 같은 전신관절질환을 앓는 환자에게도 효과적이라고 했다. 화상을 입을까봐 커다란 팬티만 입고 영하 150도가 되는 방안에서 체조를 하니 기분이 묘했다. 내 생에 영하 150도를 다시 느낄 일도 없을 테지만 여기서 체조를 하는 것이 왜 치료에 도움되는지 이해가지 않았다.

류마티스 질환을 가진 사람은 가만히 있으면 뼈마디가 굳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움직여줘야 한다. 하지만 과한 자극은 관절에 무리를 준다. 이 때문에 환자들을 운동을 아예 하지 않는 것도,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 않다. 의사는 내게 수영을 권했으나, 아토피 피부염 때문에 수영장 물을 피해야 하는 나로서는 할 수가 없었다. 결국 할 수 있는 운동이라고는 뼈마디에 무리가 안 갈 정도의 유산소 운동뿐이었다. 근력운동을 하는 순간 관절에 무리가 가서 염증수치가 높아지고 드러누울 수밖에 없었다.

발병 이후, 내 세계는 크게 달라졌다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 것이라는 말이 있는데 확실히 발병 이후로 내 세계는 크게 달라졌다. 비 오는 날엔 유난히 무릎이 아프고, 목을 자주 주무르는 습관이 생기는 등 작은 변화도 있지만 큰 변화도 있다. 잘하진 못해도 좋아했던 운동을 일정 시간 이후로는 할 수가 없었고, 음식 역시 조절해야만 했다. 비록 물리적 질환은 아니더라도 과체중이 무릎에 부담되기 때문이었다. 대학교 축구 소모임에서 전반 30분을 뛰고 나면 무릎이 퉁퉁 부어올라 집에 갈 때까지 절뚝거려야만 할 정도였다.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격하게 운동을 할라치면 무릎이 붓는 등의 반응이 곧바로 온다.

류마티스 질환은 완치가 불가하다. 아직까지 병이 왜 일어나는지 알지도 못하는 실정인데, 완치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결국, 당뇨병처럼 증상이 계속되기 때문에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뼈마디가 굳는 것을 막기 위해 주기적으로 스트레칭을 해줘야만 했다. 조금만 무리하면 몸에서 염증 수치가 높아져 열이 나기 때문에 과로는 피해야만 했다. 물론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최대한 몸을 관리해야만 했다.

치료제는 성분이 독해서 몸에 나쁘다. 스테로이드제가 섞인 약 성분은 간에 지속적인 부담을 줬고 이 때문에 난 항상 피곤했다. 음주와 흡연은 피하라고 하지만 담배는 원래 피우지 않았고 20살이 된 후에서야 술을 마셨지만 잘 먹지 못한다. 아마 관절염 약이 간에 부담을 줘서 더 못 마시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하나뿐인 아들이 난치병에 걸리니 부모님 마음은 얼마나 슬펐을까. 부모 마음이 다 그렇겠지만, 엄마와 아빠는 아직도 내가 자신들 때문에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신다. 그래서 그런지 건강 방송만 나오면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못하신다. <닥터의 승부> <엄지의 제왕> <내 몸 사용 설명서> 등 온갖 건강정보프로그램을 챙겨보셨다.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챙겨야 할 환자 본인은 아침저녁으로 먹어야 하는 약을 거를 때가 많고, 술을 피하라고 하나, 마셨다 하면 과음이기에 죄송할 따름이다. 주말 밤, 거실에 누워있으면 아빠가 이런 말씀을 하신다.

"사람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크게 아픈 건데, 넌 그게 좀 빨리 온 것이고 관리만 하면 된다. 취업이다 뭐다 걱정하지 말고 건강부터 관리하면서 살면 남들보다 불편할 것은 하나도 없다."

강직성 척추염에 걸리고 10년이 지나면 환자의 50%가량은 일상생활에 장애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 보건복지부의 설명이다. 이제 9년차 환자인 나는 쉽게 피로하다거나 피곤하면 목이 뻣뻣해진다는 것 외에는 큰 불편함이 없다.

처음에는 이 병이 내게 큰 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저 남들보다 조금 더 자기관리를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니 부담이 되지 않았다. 100세 시대는 무병장수가 아니라 유병장수라는 뉴스가 있었다. 오래 살다 보니 누구나 병으로 한 번쯤은 고생을 한다는 이야기인데, 정말 내 얘기인 듯 싶었다. 16살에 거짓말처럼 걸린 류마티스 관절염과의 동거도 끝내진 못하더라도 100살까지 건강하게 할 수 있진 않을까.
덧붙이는 글 거짓말 같은 이야기 공모글입니다.
#관절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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