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잃고 '일진'이 된 엄마... "진실 위해 삭발쯤이야"

[현장] '재욱엄마' 홍영미씨가 삭발하던 날

등록 2015.04.02 23:21수정 2015.04.03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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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욱 엄마 "진실 위해 삭발쯤이야" 세월호 참사 희생자 이재욱 학생의 어머니 홍영미 씨(가운데)가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서 정부가 발표한 배상·보상안에 반대하며 삭발하고 있다.
재욱 엄마 "진실 위해 삭발쯤이야"세월호 참사 희생자 이재욱 학생의 어머니 홍영미 씨(가운데)가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서 정부가 발표한 배상·보상안에 반대하며 삭발하고 있다. 유성호



"우리 아이들이 온 거예요. 지난 100일, 200일 때도 비가 왔어요."

304개 영정사진이 빼곡하게 인쇄된 대형 현수막 앞에서 아무 말 없이 서 있던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삭발 순서를 기다리던 그의 갈색 머리칼에 빗방울이 툭 떨어진 직후였다. 단원고 고 이재욱군의 어머니 홍영미(48)씨의 얼굴에 반가운 기색이 번졌다. 2일 낮 12시 54분. 정부의 배·보상 절차 강행 등에 항의하며 세월호 참사 유가족 52명이 단체 삭발식을 연 서울 광화문 농성장이었다.

삭발 직전 한 남성의 절규... "엄마들은 안하면 안 돼요?"

"엄마들은 안 하면 안 돼요?"

낮 2시 10분. 100여 명의 군중 사이에서 한 남성이 절규했다. '희생자와 피해 가족들을 돈으로 능욕한 정부 규탄 및 배·보상 절차 전면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마치고, 사회자가 어머니들의 이름을 하나둘 호명한 뒤였다. 한 번에 10명씩, 총 다섯 번에 걸쳐 진행되는 순서에서 이번엔 어머니들 차례였다. 앞서 머리칼을 잘라낸 아빠들은 각각 '진실규명' '시행령 폐기'라고 쓴 노란 머리띠를 두르고 뒤편에 마련된 자리로 돌아갔다.

이어서 흰색 천 위로 걸어 나온 어머니들이 일렬로 놓인 파란색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 빗방울을 반가워 했던 홍영미씨는 왼쪽 세 번째 자리였다. 오열하며 걸어 나온 다른 어머니들과 달리 그의 얼굴은 어색할 만큼 의연했다. 이발을 맡은 자원봉사자가 '정부 시행령안 폐기하라! 세월호 온전하게 인양하라!'라고 쓴 노란 천을 그의 몸에 두를 때는 크게 한숨을 쉰 뒤 눈을 감았다. 그리고 머리칼이 모두 잘려나갈 때까지 미동도 하지 않았다.


5분. 홍씨의 풍성했던 커트 머리가 모두 없어지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그의 머리카락은 정수리부터 조심스럽게 잘려나갔다. 자원봉사자는 그의 머리칼이 바람에 흩날리지 않도록 두 손으로 고이 감싸 쥔 채 잘라낸 뒤, 주최 측이 준비한 흰색 반투명 플라스틱 수납함에 넣었다. "진상규명에 목숨을 건다"는 의미로 잘라낸 머리칼을 담기에는 한없이 초라한 상자였다.

삭발하는 동안 미동 없던 엄마... 아들 이름 부를 때는 손 떨려


세월호 유가족 위로하는 시민들 "자식 잃은 부모 삭발까지 해야 하나요" 세월호 참사 희생자 이재욱 학생의 어머니 홍영미 씨가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서 정부가 발표한 배상·보상안에 반대하며 유가족과 함께 삭발하자, 이를 지켜보고 있던 수녀와 시민들이 마음 아파하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 위로하는 시민들 "자식 잃은 부모 삭발까지 해야 하나요"세월호 참사 희생자 이재욱 학생의 어머니 홍영미 씨가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서 정부가 발표한 배상·보상안에 반대하며 유가족과 함께 삭발하자, 이를 지켜보고 있던 수녀와 시민들이 마음 아파하고 있다.유성호

"이쁩니까?"

삭발을 마친 홍씨가 웃으며 말했다. '진실규명'이라고 쓴 노란 머리띠를 두르고 마이크를 잡은 그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씩씩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아들의 이름인 '재욱이'를 언급한 순간부터 손과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재욱이가 (삭발하는 동안 제게) 한 말을 대신 전해드릴게요. 4월 16일에 올라올 때 내가 엄마 손 잡아주지 못해도 엄마가 그냥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약속했는데, 오늘 삭발을 하시네요. 여기 있는 우리 친구들은 엄마 아빠가 피눈물 나지 않게 사는 모습을 정말 보고 싶어해요. 여기서 응원할 테니까 마음껏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저희는 여기서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겠습니다."

자리로 돌아간 홍씨는 다시 의연한 모습이었다. 뒤편에서 삭발하는 모습을 지켜본 유가족들이 홍씨를 부둥켜안고 울 때도 그는 별일 아니라는 듯 미소를 지었다. 잠시 눈물을 훔치다가도 이내 웃었다. 전날(1일) 밤 기자와 한 통화에서는 "삭발은 '목숨을 건다'는 걸 상징한다고 하는데, 현실이 바뀔 수 있다면 삭발은 어렵지 않다"라고 말한 그였다. 이날 오전 삭발을 기다리며 스스로를 '일진엄마'라고 지칭한 이유이기도 했다.

홍씨는 아들을 잃고 3개월 만에 일을 그만뒀다. 학생들을 상대로 역사를 바로 알리는 역사 강사로서 큰 보람을 느끼던 그였다. 하지만 '그날' 이후 아무 의미가 없어졌다. 대신 '유가족 간담회' 등 전국을 돌아다니며 스스로 진실을 알리기로 했다. 지난해 5월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로 그를 초청해 진상 규명을 약속했을 때까지만 해도 일말의 기대를 품었다. 지금은 그런 기대를 완전히 접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가 '일진엄마'가 된 이유다.

하지만 생존학생 아버지 장동우씨가 삭발을 끝내고 마이크를 잡았을 때는 '일진엄마'도 무너지고 말았다.

"그런 말을 들었다. 내 자식은 살아왔는데, 왜 그러냐고. 제 딸이 유치원서부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같이) 들어간 친구들이 다 죽었다. 딸이 사고 나고 처음으로 학교 가는 길에 울면서 다시 집에 돌아왔다. 나는 아무것도 안 물었다.

딸이 '민정이가 보고 싶다, 꿈에 한번 나왔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데 안 나온다고 한다. 그러면서 내게 '아빠는 진상규명 꼭 할 거지?'라고 묻는다. 더 이상 못된 어른 되지 않겠다. 유가족들과 끝까지 함께하겠다."

엄마가 슬플 때마다 거짓말처럼 비가... "우리 아이가 온 거예요"

삭발하고 거리 나선 재욱 엄마 세월호 참사 희생자 이재욱 학생의 어머니 홍영미 씨가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정부 시행령 폐기를 촉구하며 거리선거전을 벌이고 있다.
삭발하고 거리 나선 재욱 엄마세월호 참사 희생자 이재욱 학생의 어머니 홍영미 씨가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정부 시행령 폐기를 촉구하며 거리선거전을 벌이고 있다. 유성호

오후 3시 30분. 이따금씩 떨어졌던 빗방울이 또 거세졌다. 유가족 52명 모두가 삭발을 마치고 취재진 앞에 설 즈음이었다. 비가 올 때마다 아이들이 왔다고 여기는 홍씨는 쏟아지는 비를 그대로 맞았다. 이마에 써있는 '진실규명'이라는 글자가 빠르게 젖어들었다.

삭발식을 끝내고 유가족들이 잠시 쉬는 동안에는 거짓말처럼 비가 멈췄다. 약 30분 동안 쉬는 시간을 가진 유가족들이 두개 조로 나뉘어 광화문 일대에서 '세월호 선체 인양' 등을 요구하는 홍보물을 나눠주는 순간에도 하늘은 잠잠했다.

하지만 곧 빗방울이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다. 홍씨가 '세월호 특별법 무참히 짓밟은 위법 시행령 원천 무효'라고 쓴 피켓을 들고 광화문 일대를 돌며 기자와 인터뷰 중에 목소리를 높일 때였다.

그는 진상규명을 시작하기도 전에 정부가 배·보상안을 꺼내든 것을 두고 "인격 모독의 결정판"이라고 강조했다.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를 사실상 무력화하는 해양수산부의 특별법 시행령안을 저지하기 위해 다시 농성을 시작한 유가족들을 마치 돈 더 달라고 떼를 쓰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정부가 호도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오후 4시 34분. 홍씨가 서울 시청을 주변을 돌아 다시 광화문 농성장으로 향하는 길에 다시 비가 쏟아졌다.
#삭발 #해수부 #세월호 #유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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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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