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성호 사장이 한학자 장영 선생과 의뢰받은 글을 보며 의견을 나누고 있다.
장선애
"글씨를 많이 안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다양한 서체들을 많이 본 노하우로 읽을 수 있는 글씨가 많아요. 손님들이 작품을 가져와서 무슨 글씨인지 모르겠다겠거나, 뜻을 해석해 달라는 경우가 있는데, 내가 글이랑 그림을 좋아하니까 같이 읽고 얘기하는 게 재밌어요.""뭘 해도 양심껏 해야지"전통표구사를 거쳐간 의뢰품들에는 이응로·이종상 화백의 그림처럼 고가의 작품들도 있지만, 특이한 주문들도 많았다고 한다. 할머니가 돈 벌면서 평생 입은 거라며 몇겹을 덧댄 털실 파자마를 표구해 달라거나, 경마에서 1등 난 말발굽, 씨름 샅바, 수상 메달, 야구선수 윗도리 등 기상천외한 의뢰들이다. 정말 모두 가능했을까?
"다 돼죠. 기지(재료)마다 성격이 달라 다루기 어렵지만, 그걸 풀고 나면 안 될 게 없어요. 다만 누가 가르쳐 주거나, 책에 나와 있는 게 아니니까 재료하고 싸워서 이겨야지. 답을 못찾으면 며칠이고 재료를 마냥 쳐다보기만도 하고, 까다로운 작업은 아예 미뤄두고 머리를 비웠다가 다시 싸우기도 하면서 나만의 방법을 찾아야 해요."표구를 하든 취미인 음악(예중 1학년 때부터 예농을 졸업할 때까지 밴드부에서 활약했다는 방 사장은 기타, 올겐, 드럼 등 수준급 연주자다)을 하든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되면 손을 대지 않는다.
"표구는 또 하나의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방 사장은 액자틀로 쓰는 나무도 국산만 고집하고 병풍틀도 기성제품을 쓰지 않는다. 마음에 드는 색이면 비단도 잘라 사지 않고 다 사버린다. 종이와 유리, 족자 재료 하나하나 까다롭게 고른다. 표구를 하면서 얼마를 벌겠다는 생각없이 일하는 자체를 좋아하다 보니 물건을 찾아가지 않아도 전화를 하지 않고 기다릴 뿐이다.
"돈 받는 취미가 없다 보니 받을 금만 부르는데 깎아달라고 하면 내살에서 묻어날 수밖에. 표구는 장사꾼 기질로는 안 돼요. 옛날에는 진사 벼슬을 하던 일인데 정직하고 정당하게 하지 않고 손님 속여 돈이나 벌자면 오래 갈 수 있겠어? 그건 표구뿐만 아니라, 어떤 일이든 양심껏 해야 명이 길어."표구는 비단 색깔, 선을 넣는 형태, 규격 같은 것들이 하는 사람마다 달라 누가 한 건지 단박에 알 수 있다고 한다.
"지금껏 내가 한 거 쓰레기장에 나오는 거 못 봤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다시 해서 됐다 싶어야 끝내니까."그런데 방 사장의 고집과 까다로움은 아마도 일할 때만 적용되는가 보다. 특별한 용건 없이도 오가다 들르는 이들이 많아 하루에 커피를 30잔 이상 타는 날도 있다는 것을 보면. 혹시 집안 어딘가에 묵혀두고 있는 글이나 그림, 혹은 기념하고픈 물건들을 영구적으로 남기고 싶다면 더 늦기 전에 여기 장인의 손에 맡기고, 간이 의자에 앉아 커피 한 잔 맛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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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발굽, 샅바... '표구사'의 기상천외한 의뢰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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