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있는 학교> 표지
시사인북
그는 대신 컴퓨터는 결코 할 수 없는 것, 즉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에 더욱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컴퓨터가 할 수 없는 것이란 무엇일까. 아름다움을 창출하거나, 분별하는 일, 창의력과 상상력을 이용하는 일, 정신적이고 영혼적인 일을 컴퓨터는 할 수 없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미래의 컴퓨터가 할 수 있는 일을 잘 하는 사람을 선호한다. 국, 영, 수 잘 하고, 암기에 뛰어나고, 시험 잘 치는 사람들 말이다. 반면 상상력이 뛰어나고 창의성이 돋보이는 개인은 '모난 돌' 취급 받기 일쑤다. 그래서 아쉬움과 울분을 토로하는 재능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앞으로는 서서히 이런 사람들의 역할이 커지게 될 거라는 생각을 이 강연을 본 후 더 확실히 하게 됐다. 그러면서 마음 한 편이 더욱 답답해졌다.
지금 우리의 교육을 보면 앞으로도 쭉 컴퓨터가 할 수 있는 걸 잘 하는 사람만을 양성할 가능성이 커 보이기 때문이다. 앨빈 토플러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 학생은 미래에 필요하지도 않을 지식을 외우고 공부한다. 미래에 있지도 않을 직장을 염두에 두고 공부한다"고. 한국 학생 또한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것은 아니다. 우리 교육이 한국 학생을 단지 이렇게 몰아갈 뿐.
한국 학생들은 국제 학업 성취도 평가에서 꾸준히 1, 2위를 차지하고 있다. 다른 어느 나라의 학생들보다 공부는 잘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 학생들은 결코 상상력이 뛰어나거나, 창의력이 좋지는 않다. 즉, 문제를 해결하는 면에서는 뛰어난 역량을 보이지만, 문제 설정 능력은 거의 없는 것이다. 문제 설정 능력은 바로 창의력에서 나온다. 그래서 우리 부모들은 아이들 창의력을 길러주기 위해 매우 열심이다. 일주일에 한 번 창의적 체험 활동을 하거나 텃밭을 가꾸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는 것이 아이들의 창의성을 위한 최선일까.
책 <꿈이 있는 학교>에서 황선준은 아닐 것이라고 말한다. 창의력은 '비판적 사고'를 통해서만 길러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창의력은 "국어, 영어, 수학, 자연 및 사회 과학 등 교과 과목 시간에 끊임 없이 비판적으로 보며 토론하고 무엇이 문제인가를 고민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에요"라고.
황선준은 스웨덴 스톡홀름 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은 뒤, 스웨덴 국립교육청에서 정책 평가 위원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그도 역시 자식을 키우는 '아빠'다. 그리고 이 책에서 그는 아빠 입장에서 본인 개인의 경험과 스웨덴의 교육 환경을 예로 들며, 우리 교육과 우리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스웨덴은 학생들의 국제 학업 성취도 평가에서는 중위권에 있지만, 스위스와 함께 국제 기술 혁신 지표에서는 선두에 서 있다. 시험에선 특출난 성적을 올리진 못하지만, 창의력 면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에 있는 것이다. 이렇듯 스웨덴 사람들이 창의적일 수 있는 이유는 물론, 교육 때문이다.
교육을 말하기 전에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학교 교육이든, 가정 교육이든,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국가가 정책적으로 학교와 가정을 뒷받침 해주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육아, 교육, 노인 복지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스웨덴은 기본 국가 시스템에서부터 우리와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 보니 스웨덴 사람들은 아이를 낳고 교육 하는 데 큰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스웨덴, 우리와 무엇이 다를까스웨덴의 사회 분위기 또한 교육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스웨덴은 사회 대부분의 영역에서 평등의 가치를 다른 무엇보다 중요시한다. 벽돌공과 의사는 하는 일만 다를 뿐이지 모두 공동체를 위해 일하고 있다는 면에서는 같은 노동자일 뿐이다. 사회적 불평등, 남녀 불평등, 소수자에 대한 불평등이 없다 보니 스웨덴의 교육열은 우리나라처럼 뜨겁지 않다. 학생들은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공부가 하고 싶어' 대학에 진학한다.
스웨덴은 또한 국가, 학교, 가정이 선순환 서클 안에서 같은 생각, 같은 마음으로 함께 아이들을 기르고 가르친다. 학교에서 배운 것이 가정에서도, 국가에서도 통용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아이들은 모순을 경험하지 않는다. 우리 아이들과는 반대다. 즉, 우리나라 교육은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라고 가르치지만, 학교 교육 현장은 결코 민주적이지 않다. 우리나라 엄마들은 자식들에게 창의력을 기르라고 말하지만, 정작 아이들의 비판적인 사고 앞에서는 굳은 표정을 보일 뿐이다. 이렇게 우리 아이들은 모순 속에서 회의감과 체념을 배우게 된다.
책에서 등장하는 스웨덴 교육 현장은 부러울 만큼 체계적이고 또 효율적이었다. 그 결과도 좋았다. 하나의 예를 든다면, 스웨덴 학생들은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이 되면 멋진 논문 하나를 완성할 정도의 비판력과 사고력, 그리고 글쓰기 실력을 갖추게 된다. 그들이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건 토론, 토의식 수업을 주로 하는 교수 방법 때문이다.
그렇다면 궁금하다. 우리는 왜 그들처럼 하지 못하는가. 토론, 토의식 수업이 좋다면 우리는 왜 그들을 따라하지 않는가. 이유 중 하나는 교사들 자체가 이런 토론, 토의식 수업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교사들을 교육하면 해결될 문제이다. 더 큰 이유는 바로 학력 평가 때문이다. 우리는 주관식 시험이 아닌 객관식 시험을 치러야 하기 때문에 이런 수업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객관식 시험을 치르는가. 공정성과 변별력 때문이다. 이에 대해 황선문은 말했다. "공정성을 지키려다 아이들을 망치고 있어요"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사실 제가 스웨덴 교육청에서 근무할 때, 스웨덴은 서술형, 논술형 및 작문 시험이 시간과 돈이 많이 들고 답안지 평가에 주관적 요소가 들어갈 여지가 있기에 선택형 시험으로 전환하면 안 될까 하는 논의가 있었어요. 그러나 결론은 똑같았어요... '아이들 머리를 망치려면 선택형 시험을 하라. 아이들에게 비판력을 키워주고 창의력을 키워주기 위해서는 서술형, 논술형 시험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꿈이 있는 학교> 중에서학교 교육 시스템이 이처럼 잘 이뤄져 있는 스웨덴이지만, 그럼에도 역시 아이들 교육엔 부모의 역할이 가장 크다고 한다. 그렇다는 건, 지금의 우리 학교 교육 시스템이 우리 아이들의 창의력에 도움이 안 된다고 낙담하기 보다는, 우리 부모들이 아이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도 스웨덴 부모들처럼 하면 되지 않을까.
스웨덴에선 학교에서와 마찬가지로 집에서도 아이들의 비판력과 창의력을 길러주기 위해 노력한다고 한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부모가 자신들의 "편견, 고정 관념, 기존의 사고 방식이나 문화를 아이들에게 주입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또 역시 중요한 것이 부모 자식간의 소통이다. 아이와 수직적 관계가 아닌 수평적 관계에서 이야기하는 것. 아이의 의견을 진지하게 경청하는 것. 하나의 사안에 대해 깊이 토론하고 논의하는 것. 이러한 활동만으로도 아이들의 비판력과 창의력은 자극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부모들에겐 이보다 더 어려운 것이 없는 것 같다. 왜냐하면 부모들 역시 소통과 토론에 미숙하며, 비판적 사고, 창의적 사고에도 역시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학교 시절 영어 선생님이 생각난다. 그 선생님의 수업 시간만 되면 우리는 언제나 마음을 졸였다. 영어를 잘하기 위해선 단어만 외우면 된다는 듯이 선생님은 무작위로 번호를 부르고는 일어선 아이에게 단어의 뜻을 심문하듯 물어봤다. 긴장한 우리는 아는 것도 대답하지 못해 한 시간 내내 서 있어야 했다.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야 나는 그 선생님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선생님은 그렇게 교육 받은 것이다. 단어를 많이 알고, 문법을 알면, 영어를 잘 하게 되는 줄 알았던 것이다. 듣고, 말하기를 교육 받지 않은 사람에게 어떻게 듣고, 말하기를 가르치라고 할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 부모들 입장도 내 영어 선생님과 같은 입장인 게 아닐까. 사실 아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함께 토론하고 논의하라는 말, 부모라면 많이 들어봤을 조언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도 이런 식의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 역시 토론 문화 속에서 자라지 못했다. 진지하게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도 어색하기만 하다.
비판적 사고 앞에서도 어색하긴 마찬가지라 그저 마음이 어려워 비판이고 뭐고 빨리 쉽게 쉽게 갔으면 싶다. 그래서 부모들은 자기도 모르게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아이들에게 '쓸데 없는 생각'하지 말라며 상황을 모면하려고만 한다. 익숙한 상황이 아니어서 그렇다. 그런데 바로 이런 부모의 반응이 아이들의 창의력 싹을 잘라버리는 것이다.
한국 부모도 할 수 있다경상도 남자 황선준 역시 스웨덴 교육과 스웨덴 아내를 접하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는 스웨덴에 가서야 자신이 전혀 소통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심정으로 대학원 시절 5년 동안 책을 읽으며 한 문장, 한 문장마다 '왜'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그렇게 했음에도 '왜'라는 질문과 함께 자란 아내의 소통법에는 완벽히 다가갈 수 없었지만, 그래도 지금은 어느 정도 아이들과 말이 통하는 아빠가 돼 있는 듯했다.
우리 부모들도 다시 시작하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렵겠지만, 우선 비판적 사고 앞에서 열린 마음이 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그리고 훈련을 하는 것이다. 우리도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가장 효과적이면서도 좋은 훈련 방법은 아무래도 토론하고 이야기하는 환경 속으로 자기 자신을 밀어 넣는 것일 테다.
가장 쉽게는 책을 읽은 후 사람들과 함께 토론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럴 시간이 없다면 황선준 본인이 쓴 방법도 도움이 되리라. 혼자 책을 읽으면서 한 문장, 한 문장마다 '왜?'를 붙여보는 식으로 말이다. 이것도 힘들다면 그냥 머릿속으로라도 자신의 기존 생각들을 하나 하나 반박해 보는 것은 어떨까. 방법은 다양할 것 같다.
이런 노력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아이의 비판적 사고 앞에서도 유연한 부모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아이의 번뜩이는 아이디어 앞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함께 신나게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겠고 말이다. 나중에는 먼저 손 내밀어 아이를 토론 속으로 끌고 들어올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우리 아이들의 창의력은 부모에 의해 조금씩 길러지게 될 것이다. 적어도 부모가 아이의 창의력 싹을 잘라버리지는 않게 될 것이다. 교육 시스템이 제자리 걸음을 하더라도,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것이다. 물론, 교육 시스템이 바뀌면 부모들의 수고도 조금 덜어지겠다.
꿈이 있는 공부 - 점수와 등수를 뛰어넘는 두근두근 공부 이야기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기획,
시사IN북,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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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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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머리 망치는 선택형 시험... 창의력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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