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6월 11일 오전 서울 염창동 한나라당사에서 열린 박근혜 전 대표의 대선 경선 출마 기자회견에 배석한 허태열, 김기춘 의원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종호
자원외교 비리 의혹 수사 과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성완종 전 회장이 김기춘·허태열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의 이름, 액수 등이 적힌 메모지를 남긴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그가 남긴 메모와 언론 인터뷰 내용을 정치자금 수사의 단서로 삼을 수 있는지 검토할 계획이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1부(부장검사 임관혁)는 10일 성 전 회장의 시신에서 몇 사람의 이름 등이 담긴 메모지가 나왔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어제(9일) 저녁 검시 과정에서 고인의 상의 주머니에서 메모지가 한 장 발견돼 검찰이 확보했다"며 "(메모지에 나오는 사람들 가운데) 5, 6명은 금액이 기재돼 있고, 나머지는 이름만 있다"고 설명했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종이에 담긴 글자 수는 모두 55자이지만 검찰이 공개한 내용은 이 정도였다.
그런데 이 메모에는 김기춘·허태열 전 비서실장의 이름도 들어가 있었다. 성 전 회장은 사망 직전 <경향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두 사람을 직접 언급하며 자신이 김 전 실장에게는 2006년 미화 10만 달러를, 허 전 실장에게는 현금 7억 원을 건넸다고 주장했다. 또 이 돈이 박근혜 대통령의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자금으로 쓰였다고 했다(관련 기사 :
성완종의 폭로, 박 대통령 겨냥 "김기춘 10만달러, 허태열 7억 줬다").
검찰은 성 전 회장이 남긴 메모에도 김기춘·허태열 두 사람 이름 옆에 금액이 쓰여 있으며 그 규모는 언론보도와 일치한다고 했다. 검찰 관계자는 "한 명은 이름 옆에 날짜가 기재돼 있다"고 덧붙였다.
'성완종 리스트' 등장... 그 진실은? 핵심 관계자가 사망한 만큼 메모의 진상 확인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성완종 리스트'가 등장했기 때문에 검찰도 일단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려는 모습이다. 김기춘·허태열 전 실장의 경우 정치자금법상 공소시효는 지났지만,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죄의 시효는 10년이기 때문에 수사가 아예 불가능한 상황도 아니다.
검찰은 우선 필적 감정으로 작성자가 성 전 회장이 맞는지를 확인하고 그의 장례 절차가 끝나면 유족과 경남기업 임직원들에게 관련 자료 제출을 요청할지 등을 검토할 예정이다. 또 <경향신문>이 성 전 회장과 통화한 내용을 공개한다면 녹취록 등을 바탕으로 메모지 내용 확인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성 전 회장의 휴대폰 등 유류품은 현재 경찰에서 보관 중이다.
다만 검찰은 성 전 회장이 조사과정에서 관련 내용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검찰 관계자는 "성 전 회장은 (3일 조사 때) 본인의 혐의를 일관되게 부인했고, 다른 내용을 말할 시간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의 자택을 압수수색할 때 장부를 확보하거나 가족 또는 측근들이 임의제출한 자료 역시 없다고 했다.
'성완종 리스트'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과 별개로 검찰은 자원외교 비리 의혹 수사를 계속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이날 다시 한 번 "성 전 회장과 관련해 어제 발생한 불행한 일은 저희들도 여전히 안타깝지만 여기서 그만 두거나 물러설 수는 없다"고 말했다(관련 기사 :
'자원외교' 수사 1호였는데...검찰, 흔들림 없이 정면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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