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그대를 춤추게 하라" 고도원 작가와 만나다

인문학 아고라 - 인문학이 이끄는 삶

등록 2015.04.16 17:17수정 2015.04.16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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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짝 핀 벚꽃에 비가 와서 작은 어린잎이 연초록빛을 뽐내며 돋아나고 흩날리는 바람에 꽃비가 나리는 그런 날이다. 이런 날 나는 아침편지문화재단의 고도원 작가를 만나러 왔다. 어제 경기도인재개발원에서 인문학 아고라 인문학이 이끄는 삶이라는 주제로 한 달에 한 번씩 강의가 있는데 그 두 번째 시간이 '삶이 그대를 춤추게 하라' 고도원작가의 시간이었다.


인문학 아고라 포스터 경기도인재개발원 인문학이 이끄는 삶 강의가 펼쳐졌다.

인문학 아고라 포스터 경기도인재개발원 인문학이 이끄는 삶 강의가 펼쳐졌다. ⓒ 김효임


고도원의 아침편지 참 많이 들어봤는데 어떤 분인지는 정말 몰랐었다. 그냥 날마다 좋은 글귀의 편지를 써주는 사람정도로만 생각했었다. 사실 어떻게 그렇게 날마다 좋은 글귀를 생각해 낼 수 있을까 궁금한 마음에 강의를 들으러 갔던 계기가 되었다.

4월 강의(아침편지 고도원작가) 삶이 그대를 춤추게 하라 4월 강의 아침편지 고도원 작가의 강의가 경기도인재개발원 대강당에서 진행되었다.

4월 강의(아침편지 고도원작가) 삶이 그대를 춤추게 하라 4월 강의 아침편지 고도원 작가의 강의가 경기도인재개발원 대강당에서 진행되었다. ⓒ 김효임


어떤 사람을 알게 된다는 것 그것은 내 인생의 커다란 점을 찍는 것과 같다는 말씀으로 시작했다. 오늘 고도원 작가를 만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사건을 겪게 되고 이런 모든 것들이 경험의 점이 된다고 한다. 고도원작가는 본인의 인생에 있어서 수많은 점들을 소개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어떻게 그렇게 말도 안 되게 힘든 삶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견디어 낼 수 있었을까? 이야기를 듣는 내내 정말이지 대한민국에서 산다는 것이 정말 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목이 말라 물을 마셨는데 기도가 막혀 물이 안 삼켜지고 숨이 안 쉬어진단다. 그러면서 진짜 물을 마시고 기도가 막혀 물이 안 삼켜지는 장면을 리얼하게 연기하며 강의를 박진감 넘치게 했다. 하지만 이 모든 상황을 작가는 감사한다고 말한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고도원 작가는 가난한 시골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고 3남 4녀의 형제들과 밥을 먹을 때마다 싸웠고 도시락을 못 싸 가지고 다닐 정도로 가난했다고 한다. 10번 넘게 이사를 가서 친해진 친구가 없었고 그로인해 늘 외로웠다고 한다. 한 번은 이사를 간 곳에서 한 친구가 미소를 지으며 이끌어주어서 아 이 동네는 정말 다른가 보다 했었지만 수많은 아이들과 함께 자신을 속이고 똥구덩이를 파놓고 그곳에 빠지는 모습을 보며 박장대소하며 웃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 역시 고맙게 생각했다고 한다.


자신을 괴롭히는 친구들을 보며 '나는 적어도 저런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하고 생각은 들었지만 사람에 대한 트라우마는 계속 가슴에 남았다고 한다. 그리고 사람들 속에서 따로 떨어지는 방편으로 고독하게 책과의 만남을 시작했다고 한다. 책을 유난히도 좋아하는 목사아버지 덕택으로 집에는 수많은 책들이 쌓여있었고 밖에서 친구들과 놀기보다 책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중학교 2학년 사춘기를 겪으면서 아버지로부터 책을 읽으면서 독서카드를 쓰는 습관을 키우게 되었고 함석헌선생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 아놀드 조셉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 등 중학생이 읽기엔 조금 어렵지 않은가 하는 책들을 아버지로부터 소개 받았고 그 책들을 밑줄을 그어가며 독서카드로 꼼꼼하게 정리하며 읽었다고 한다. 물론 어려운 책이었지만 손에 계속 책을 들고 다니고 밥 먹는 것처럼 읽고 또 읽다보면 내용이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연세대학교 시절 기명칼럼으로 대학신문에 칼럼을 쓰던 작가를 긴급조치라는 이름으로 집단 제적을 당했고 수배자가 되고 소위 말하는 나랏밥을 먹었다고 한다. 하루도 구타를 당하지 않은 날이 없었고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 지옥이었다고 한다. 이런 전과를 가지고 있어서인지 취직도 할 수 없었고 받아주는 곳도 없었다고 한다. 그런 속에서도 대학교 3학년 축제에서 만난 지금의 부인과 결혼을 했고 신혼여행도 없이 달랑 방 한 칸에 전기밥솥하나를 놓고 아현동 신혼살림을 차렸다고 한다.

포장마차를 하려다 하루 만에 접고, 문방구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4년간 모은 재산을 탈탈 털어서 가게를 마련하려 했지만 사기를 당해서 모두 날리고 6개월간을 아내와 싸우고 한강과 고층빌딩을 싸우며 들락날락했다 한다. 웨딩드레스 대여업도 했다고 한다. 이화여대 입구에서 행복의 문 웨딩드레스 대여점을 하면서 아내는 두 번의 유산을 했다고 한다. 그것도 8개월 만삭의 몸으로 한 유산이라 한다. 아픔이라고 밖에는 할수 없는 일이다. 웨딩드레스를 세탁하고 그것을 들고 비탈길을 오르내리다 일어난 일이라고 한다.

그의 삶은 축복일까 재앙일까

그는 사기를 당해 4년간 모은 재산을 모두 날렸을 때 수많은 싸움 끝에 아내와 약속을 하나 했다고 한다. '다시는 죽겠다는 이야기 하지 않을게, 한강에도 가지 않을게, 먹을 것이 없으니 난 꿈을 먹을 거야'라며 지금까지 내가 겪은 일은 좋은 글을 쓰는 재료가 될 것이라고 자신을 위로했다고 한다. 그리고 죽기 전에 대통령 연설문 한번은 써보고 죽어야겠다고 그냥 툭하고 입에서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고 한다. 그때 아내는 옆에서 '그래 당신 글은 잘 쓰잖아 당신은 할 수 있어'라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고 한다.

그 후 작가는 뿌리 깊은 나무라는 잡지의 기자, 중앙일보 편집국 사회부 정치부 기자, 중앙일보 편집국 정치부 차장을 거치면서 김대중 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 공보수석실 국내 언론 총괄 국장을 거쳐 대통령비서실 공보수석실 연설담당비서관으로 김대중 대통령의 모든 연설문을 썼다고 한다.

신입기자시절 김대중 대통령과의 만남도 일화로 소개해 주었다. 기자 간담회에서 신입기자와 평민당 총재가 역사의 연구라는 아놀드 조셉 토인비라는 책을 놓고 논쟁을 벌였다고 한다. 그 책은 바로 작가의 아버지가 중학교시절 던져주며 독서카드를 쓰며 읽으라고 했던 바로 그 책이었고 좋은 구절은 암송을 할 정도로 익숙한 책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책을 통한 김대중 대통령과의 만남은 좋은 인연이 되었다고 청화대의 주인이 된 김대중 전 대통령은 고도원 작가를 부른 것이라고 한다.

김대중 대통령의 목소리를 흉내 내면서 들려주는 그의 이야기는 통쾌하고 유쾌했다.

작가의 삶은 굴곡 있는 삶이었고 '삶이 그대를 춤추게 하라'라는 강의의 제목은 이왕 끌고 가야 할 삶이라면 마냥 슬퍼하지만은 할 수 없는 것인가 딛고 가는 것이 희망이 아닌가 하는 말로 희망을 이야기 했다. 아마도 작가가 수많은 시련 속에서도 이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의 목표가 있다는 것 그것은 깜깜한 바다 한가운데에서 북극성을 만나는 것과 같고 그 북극성은 우리에게 인생의 바다를 항해하는 방향이 되는 것이라 한다. 목표가 없는 삶은 표류하는 것이라며 삶의 목표를 세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힘주어 말했고 좋은 목표를 세워야 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의 강의는 진심이 묻어났고 느끼게 하는 바도 컸다. 그냥 날마다 그가 쓰는 고도원의 아침편지 좋은 글귀는 다 어디서 났을까 궁금해서 들으러 간 강의였는데 역시나 좋은 글귀는 뼈저린 고통을 딛고 일어난 차가운 얼음성위에 쌓아올려진 별처럼 빛나는 눈꽃송이 같은 것이라는 생각에 강의가 끝나고 가슴이 멍해지고 머리가 하얗게 되었다.

누군가의 고통이 그대로는 고통이지만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좋은 경험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글을 쓴다는 것은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직업이다'라는 강의중의 작가의 말이 가슴에 꽃힌다.

고도원 작가와의 기념촬영 강의가 끝나고 고도원작가와의 기념촬영에서 반갑게 손을 잡아주셨다

고도원 작가와의 기념촬영 강의가 끝나고 고도원작가와의 기념촬영에서 반갑게 손을 잡아주셨다 ⓒ 김효임


나도 고도원작가와의 의미있는 만남의 점을 하나 찍었다. 이것이 어떤 의미가 될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나도 고도원 작가처럼 사람의 가슴을 울리는 작가가 되고 싶은 꿈이 그냥 툭 하며 내 마음에 떨어졌다. 그가 잡아준 손이 어찌나 따뜻하던지 놓고 싶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수원e뉴스와 네이버 꼬마천사 블로그에도 게재됨을 알려드립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고도원작가 #고도원작가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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