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 하나를 공유하니... 집이 2채가 된 사연

[전세계를 돌아다니는 디지털노마드가족③] 제주살이하며 유휴자원 공유하기

등록 2015.04.20 18:53수정 2015.04.23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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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서울 생활을 정리했다. 우리는 한 달에 걸쳐 서울에서 육로와 해로를 지나 제주도로 넘어왔다. 더 이상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고, 100일이 갓 넘은 아이와 함께 우리의 힘으로 새 삶을 시작해야 한다. 제주도에서는 과연 무엇을 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 기자말

허물어질 운명에 처한 집 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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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해안가 근처, 2주 동안 수리한 집 ⓒ 김태균


제주도에 내려오기 3개월 전부터 제주도에서 지낼 수 있는 집들을 인터넷을 통해서 알아보았지만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제주귀농귀촌협동조합의 소개로 5일간 한 농가주택을 빌려 머물렀다. <오일장>과 <교차로>를 통해 제주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집들을 방문해보았지만, 우리의 예산으로 원하는 형태의 집을 찾기란 불가능해보였다. 제주도에 이주하러 오는 가구수는 2010년부터 현재까지 20배 이상 증가했단다. 월세나 전세 가격 모두 많이 올랐다.

<오일장> 신문에 우리가 예상한 예산보다 더 저렴한 가격으로 한림에 주택이 나온 것을 발견했다. 부랴부랴 찾아가봤다. 읍내에서 멀지 않은 시골길을 따라 마을에 들어가니, 펜션단지로 주택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다양한 허브들이 정원에 잘 가꾸어져 있고, 집 뒤에는 텃밭을 가꿀 수 있는 곳이었다. 집 또한 겉으로 봐서는 멋있어 보이는데 왜 이렇게 저렴한 것일까?

집 내부를 살펴보니 손 볼 곳이 많았다. 곰팡이가 벽에 여기저기 많이 피어있고, 녹슬어 있는 식기건조대도 눈에 띄었다. 이곳을 우리가 살 공간으로 만들려면 2주 정도의 시간은 걸릴 듯 싶었다. 집주인 아저씨는 원래 이 집을 허물고 새집을 지으려고 하셨는데, 예산이 안 맞아 빌려주는 거라고 하셨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집을 마음대로 꾸밀 수 있는 기회였다.

마당에 1주일 여 텐트를 치고, 집 단장에 돌입했다. 원하는 색깔로 페인트칠을 하며 벽화를 그렸다. 중고로 구매한 냉장고와 식탁은 한지로 리폼했다. 그동안 잠재되어 있던 창의력을 마음껏 펼쳐볼 수 있는 기회였다. 다른 사람 눈치를 보지 않고, 내가 원하는 재료로 집을 마음대로 꾸며볼 수 있으니 오랜만에 동심의 세계로 가본 듯 했다.

공유하니, 집이 두 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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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표선 귤 농장 ⓒ 김태균


새로 단장한 집에서 3개월이 지나고 겨울이 됐다. 지인이 귤 농장에서 귤을 따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하지만 귤 농장은 우리가 사는 곳과 정반대인 표선에 위치하고 있었다. 귤 농장에서 일손이 한달 여 필요하다고 하는데, 표선에 한 달 동안 거주할 공간을 빌리면 그만큼 비용이 나가기 때문에 고민이 됐다.

"집이 비어있는 동안 제주도로 놀러오는 사람들에게 공유해 보는 것은 어떨까?"


'제주맘카페'에 한 달 동안 필요한 분에게 집을 공유한다고 글을 올렸다. 업로드한 지 2분도 채 되지 않아서 연락이 왔다. 인천에 사는 가족이 제주도에 이주하러 사전답사를 오는데, 우리 공간에서 머물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가 단장한 집을 공유하기 시작하니, 살림살이들이 풍부해지기 시작했다. 식당을 운영하다가 건강이 안 좋아져서 쉬러 온 부부, 아이들과 한 달 동안 놀러 온 가족, 자식들 결혼시킨 후 유목하면서 살고 싶어 온다는 노부부 등 다양한 사람들이 오고갔다. 그리고 숯·그릴·이불·컵·접시 등 필요 없거나 다음 분들이 쓰면 좋을만한 것들도 공유해줬다. 덕분에 살림살이가 늘어났다. 세상에는 나누면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거 같았다.

우리가 쓰지 않는 유휴자원 공간을 공유한 것 뿐인데, 집이 2채가 되고 살림살이가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을 보니 신기했다. 누군가에게는 필요 없거나 평범한 것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를 연결해 주는 공유경제는 매력적이다. 과연 집을 공유한 경험이 다음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게 해줄지 기대해본다.
#공유경제 #제주도 #제주 #디지털노마드 #한달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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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탐험을 좋아하고 현재 덴마크 교사공동체에서 살고 있는 기발한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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