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호 작가가 절필 선언 후 마지막으로 그렸던 <째마리> 만화
이두호
이두호 작가는 당시 이현세 작가의 재판이 원망스럽다고 했다. "이현세씨가 작가로서 심적인 타격이 컸고 결과적으로 작품에 지장이 엄청나게 많았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도 <천국의 신화>는 정말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그는 거듭 아쉬움을 풀어냈다. 아마 이두호 작가 역시 그때, 바지저고리들의 '오늘'을 뼈저리게 느꼈을지 모른다. 바지저고리 이야기로 화제를 바꿀 차례였다.
- 혹시 김주영 선생님과는 자주 연락을 주고받으시는지?"특별한 일 있을 때만 만나요. 무슨 회의할 때나 시상식 같은 거 할 때(웃음)."
- 김주영 선생님이 올해 초 인터뷰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더군요. 소설을 쓰면서 일관되게 견지한 기조를 묻는 질문에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 역사의 행간에서 배제된 사람을 중심 주제로 삼았다", 선생님 작품 주인공들도 역시 그런데요."저도 물론 그 생각입니다. 흔히 민초라고 하잖아요. 맥락은 김주영 선생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또 그래야 무슨 드라마가 나올 것 같으니까. 이런 생각도 있죠. 조금이라도 내 만화에 정의감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바르게 사는 것인가, 이런 물음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어서요. 제가 예전 살아온 삶도 그랬으니까 접근하기도 용이하고, 그래서 그렇게 된 거죠."
사실 이두호 작가의 꿈은 화가였다. 하지만 가난했다. "캔버스를 구하기 어려워 천막 파는 데서 천을 구하고, 제재소에서 나무를 사서 내 손으로 캔버스를 만들어 그려야 했을"정도였다. 생계 수단으로 선택한 만화가의 길, 바지저고리만 그려야겠다는 결심에 이르기까지 2년의 진통이 있었다고 한다.
"한 10년쯤 만화 연재를 하니까, 누구도 나를 화가로 안 보고 만화가로만 알더군요. 그래서 정말 결단을 내려야 되겠다, 예술가적 기질이 있는지 없는지 보려고, 스스로 약속하고 2년 동안 유화를 그렸어요. 그런데 참 이상한 게... 2년이 다 돼가니까 그렇게 만화가 그리고 싶은 거예요. 나는 결국 만화가가 돼야 하는구나... 그럼, 어떤 만화가가 될 거냐.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 내가 그래도 관심이 있는 것, 역사를 그리자. 범위가 너무 넓어도 머리 아프니까 가급적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하자, 그렇게 된 거죠."<미생>을 보고... "야, 이 녀석 참 대단하다"
- 혹시 <미생>이란 드라마 보셨나요?"드라마는 못 봤어요. 책은, 그 친구 윤태호가 줘서 봤어요. 보면서 '야, 이 녀석 참 대단하다(웃음)', 진짜 대단해요. 우선 윤태호 그림을 제가 굉장히 신뢰하거든요. 그림이, 기본이 딱 잡혀 있는 친구예요. 그리고 스토리도 탄탄하잖아요. 굉장히 객관적인 스토리에 그림은 또 다른 만화가들과 완전히 판이하게 다르니. 나중에 교수 했으면 좋겠어요, 그 친구."
- 말씀을 듣다 보니까 양복저고리란 말이 떠오르네요. 바지저고리와 통하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미생>에 나오는 양복이 <객주>에 나오는 바지저고리와 맥락이 같으면 참 좋죠. 또 그렇게 얘기하고 싶은데, 그렇게 하면 내가 너무 까부는 것 같고(웃음). <미생>을 보면서 참 리얼하다고 느꼈습니다. 저도 가급적이면 리얼한 면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 당시 살았던 사람도 아니고, 공부를 많이 한 것도 아니어서 그 정도였거든요? 물론 <미생>은 오늘날 우리 이야기니까, 더 접근하기는 쉬웠겠지만, 다른 만화와 비교해 보면 전혀 다르잖아요. 직장인들의 리얼한 삶을 그대로 보여주잖아요. 그래서 가슴 참 먹...먹하게 하잖아요. 제 만화도 좀 그랬으면 좋겠는데."
- 선생님 작품도 먹먹한 적 많았는데요?"어렸을 때니까 그렇지(웃음)."
이두호 작가에게도 물론 어린 시절이 있었다. 자신에게 그림을 가르쳐 준 선생님이 전근을 가자 그 학교로 무작정 달려가 나도 여기 다니겠다고 떼쓰던 시절이 있었다. 그로부터 시작된 그림의 길, 조선시대 민초들의 삶에 천착하는 역사 만화가의 길을 걸어온 그였기에 꼭 묻고 싶은 질문이 있었다. 이상하게도 다른 인터뷰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이야기라서 더 그런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