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성 달리보르가탑 지하감옥정기석
프라하에서 나는 '프라하의 봄'의 강력한 인력과 자기장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 없었다. 숙소가 있는 안델지구에서 22번 트램을 타고 프라하성 밑 정거장에서 내려 네루도바 언덕 길을 걸어 올라가면서도 마찬가지였다. 마침내 프라하 성문 앞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프라하의 봄'의 영향력을 겨우 떨쳐버릴 수 있었다.
일단 프라하성 앞에 서면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다. 잡념이 들지 않는다. 차라리 사원이나 수도원을 접하는 경건하고 성스러운 기분이 된다. 오로지 프라하성의 존재감 자체에만 집중하게 된다. 성의 품격과 역사성의 무게에만 저절로 주목하게 만든다. 가볍고 들뜬 관광객일수록 진지하고 차분하고 겸손하게 만든다.
성의 규모와 위용 자체부터 압도적이다. 멀리서 쳐다보면서 벌써 기가 죽고 들어간다. 프라하 블타바 강 서쪽 언덕을 온통 차지하고 있다. 넓이가 7만㎡, 길이가 570m, 폭이 130m에 이른다. 기네스북에 세계에서 가장 큰 고성으로 등재되어 있을 정도다. 그래서 체코의 상징이라 불린다. 체코공화국 국민의 자존심이자 자긍심이라는 말이겠다.
'천년왕궁'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9세기에 성 비투스 대성당(Basilica of St. Vitus)을 지은 이래 20세기인 1927년에 비로소 완공이 되었기 떄문이다. 시공에서 준공까지 1000년 넘게 걸린 셈이다.
특히 14세기 카를 4세의 전성기를 거쳐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로마네스크, 고딕, 바로크, 르네상스 등 다양한 유럽의 건축양식을 한 장소에서, 한꺼번에 보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성 비투스 성당을 비롯해 구 왕궁, 이르지 수도원, 황금소로, 왕실정원 등 단순히 성채로서의 건축물에 그치지 않는다. 하나의 작은 도시를 이루고 있다. 건축학을 모르면 점점 답답해진다.
그동안 수많은 체코의 왕들은 물론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들이 이 천년왕궁에 머물며 천년제국과 천하를 다스렸다. 오늘날 일부 성채는 체코공화국의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그 마당 안으로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든다. 승효상 건축가가 '봉건적 건축'이라 비판하는 한국 대통령의 집무실과는 차원과 격이 다르다. 보초를 서고 있는 근위병들은 무섭지 않다. 동화나라 장난감 병정처럼 만만해보인다.
프라하성 창문 밖으로 던져질 뻔한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