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과정을 홍보하는 교육부의 '유치원 시스템' 홈페이지 모습.
화면 갈무리
누리과정 파행의 핵심 쟁점은 예산을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다. 정부는 누리과정 예산이 지방재정에 속하는 일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어린이집은 시·도가 설립 허가, 재정 지원, 운영 평가 등을 직접 관장한다. 관련 예산 집행이 시·도를 통해 이뤄지므로 국고가 지원되더라도 지방채 형식을 빌려야 한다는 것이 정부 논리다.
반면 각 시·도교육청들은 누리과정이 국가 사무이기 때문에 국고에서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으로 시작된 사업이었다는 점이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교육부 누리과정 누리집에도 유치원과 어린이집 구별 없이 모든 3~5세 영유아에게 공정한 교육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국가가 제공하는 수준 높은 교육과정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법 개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지방재정법을 개정하여 누리과정 예산을 지방채 발행을 통해 마련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자는 게 기본 방향이다. 작년 11월 김장실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안은 지방재정법 상의 지방채 발행요건을 완화하는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2월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한 이 법안은 지난달 29일 국회 안정행정위원회에서 의결된 뒤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 통과를 남겨두고 있다.
그 사이 논란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안행위 야당 간사인 정청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방채 발행은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공약을 파기하면서부터 비롯된 불행"이라고 주장했다. 정 의원은 "누리과정을 국가가 완전히 책임지겠다는 약속을 지키면 지방재정법을 개정하지 않아도 된다. 지방채 발행해서 누리과정 예산을 틀어막겠다는 것부터 잘못"이라며 정부와 여당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지나친 주장일까.
지난 3월 8일 김승환 전북교육감이 보육료 지원과 관련된 정부의 태도를 강하게 비판한 적이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김 교육감은 보육 예산으로 인한 혼란을 야기한 장본인이 정부임을 분명히 밝히면서, "(정부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처럼 당당한 것은 부도덕하며 정치적으로도 비난받을 일"이라고 말했다. 이번 '보육대란' 문제의 근본 원인이자 출발점이 박 대통령과 정부가 보육 공약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데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정 의원과 김 교육감의 비판적인 입장은 박 대통령과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누리과정 사업은 박근혜 대통령의 10대 복지 공약 가운데 하나다.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집에는 "0~5살 보육 및 교육 국가 완전 책임"이라는 항목이 실려 있다. 박 대통령은 2013년 전국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보육사업과 같은 전국을 단위로 이뤄지는 사업은 중앙정부가 책임지는 것이 맞다"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출석해 "보육예산 '펑크'의 1차적 책임은 지방정부에 있다"라고 말하면서 무상보육의 국가책임론을 정면에서 무력화하는 발언을 했다. 대통령이 약속을 깨고, 이를 위해 정부가 정책 방향과 모순되는 행보를 보이면서 야당과 지역 교육청이 격렬히 반발하는 게 아닐까.
예비비로 펑크 막아야... 김승환 교육감 정치 필요해보육 예산 '펑크' 사태를 일단 진정시킬 수 있는 해법이 있긴 하다. 누리과정 국고지원 예산 총액은 2조1000억 원 가량이다. 이중 5064억 원이 예비비로 잡혀 있는데, 이를 각 시·도교육청에 내려보내는 방법이 그것이다. 그 나머지 1조2000억 원은 지방재정법 개정 후 지방채 발행을 통해 충당하는 것이 정부 복안이라고 한다.
현재 야당과 시·도교육청에서는 정부를 향해 예비비를 즉각 집행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지방재정법 개정안이 국회 입법 과정이라는 이유를 들어 거부하고 있다고 한다. 필요할 때 논의를 거쳐 쓰라고 마련해 둔 예산이 예비비다. 입법 과정이라는 명목으로 집행을 거부하는 정부 논리가 궁색해 보이는 이유다. 논란이 거세지자 여야는 지난 3월 10일 지방재정법 개정안 처리와 누리과정 예비비를 4월 중 동시에 처리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개정안이 안행위를 통과한 마당에 예비비 집행을 더 미룰 이유가 없는 것이다.
현재 전북교육청의 입장은 단호하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지방재정법이 본회의를 통과해 확정되더라도 지방채 발행을 거부하겠다는 게 전북교육청의 기본 방침이라고 한다. 현행 영유아보육법상 어린이집 예산 편성권이 시·도지사에게 있으므로, 지방채 발행은 임시방편일 뿐 누리과정의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존의 법적 문제를 여전히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김승환 전북교육감이 "어린이집 눈물 빼는 진보교육감"이라는 비판은 합당할까. 전체적으로 종합해 볼 때 현재 전북과 강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보육대란'의 근본 책임은 박 대통령의 공약 파기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여기에는 최근 점증하는 복지 예산 문제를 증세가 아니라 세수 쥐어짜기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박근혜 정부의 정책 기조가 근본 배경으로 깔려 있는 듯하다. '복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누리과정을 '교육' 정책으로 보고 관련 예산 책임을 시․도교육청에 떠넘기는 것도 이런 '증세 없는 복지' 기조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8일 김 교육감은 "작년 말 (누리과정) 3개월분 예산을 편성하면서 도의회와 어린이집 연합회가 작성한 합의서를 보면 교육청에 추가 예산 요구는 하지 않는 것으로 돼 있어 후속예산은 세울 수 없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당시 도의회와 어린이집 연합회 모두 보육 예산의 책임이 정부에 있다는 점을 공유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보육대란'의 책임을 묻는 비판의 주요 화살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지점이 아닐까.
'법'만 붙들고 있는 듯한 전북교육청 역시 '보육대란' 책임의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현재의 사태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 마련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방관하는 있는 것처럼 보여서다.
법적 문제에 대한 다툼은 다툼대로 가되, 이를 우회하는 한이 있더라도 당장 상당한 경제적 부담을 떠안을 게 분명한 어린이집과 학부모들의 혼란을 진정시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 책임만 강조하며 손을 놓고 있는 것은 교육기관의 자세가 아니다. 이번 일로 인해 이른바 '진보교육감' 전체가 보육복지를 망치는 '주범'처럼 비춰질 수도 있다. '진보교육'의 주요 아이콘인 김 교육감의 '정치력'을 기대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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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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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눈물 빼는 진보교육감'은 박근혜 정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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