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그림
최종규
머리 위로 눈이 수북이 쌓인 걸 알았어→ 머리에 눈이 수북이 쌓인 줄 알았어작은 눈덩이를 만들었지→ 작은 눈덩이를 굴렸지눈덩이는 점점 커졌고→ 눈덩이는 차츰 커졌고피리 연주를 들려줄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피리를 불어 줄 동무를 기다렸는데두더지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어→ 두더지는 더는 혼자가 아니었어행복한 고민에 빠졌어→ 즐거운 생각에 빠졌어→ 기쁜 생각이 가득했어눈은 '머리에' 쌓입니다. 그릇은 '밥상에' 올립니다. 책은 '책상에' 놓습니다. "책에 냄비 올리지 마" 하고 말해야 옳습니다. "쌓인 줄"이라고 '줄'을 넣어야 할 자리에 '것(걸)'을 넣는 말투는 옳지 않습니다.
그리고, 눈덩이는 '굴린다'고 하지, '만든다'고 하지 않습니다. 눈사람도 "눈을 굴려서" 눈사람이 되게 합니다. 그림책에서도 눈을 굴리는 모습만 나오니 "눈덩이를 만들다"로 적으면 틀립니다. 눈덩이를 만든다고 한다면, 눈을 손에 쥐어서 척척 붙여서 덩이가 지도록 해야 '만들다'입니다.
일본 한자말 '점점(漸漸)'은 '자꾸'로 손질하고, "피리 연주(演奏)를 들려줄"은 겹말이니 "피리를 불어 줄"로 손질합니다. 한자말 '연주'는 "노래를 들려주는 일"을 뜻합니다. "기다리고 있었는데"는 현재진행형 말투이니 "기다렸는데"로 손보고, "더 이상(以上)"은 "더는"으로 손봅니다.
'행복(幸福)'은 '기쁨'을 뜻하고 '고민(苦悶)'은 '걱정'을 뜻합니다. 그러니 "행복한 고민"은 "기쁜 걱정"을 가리키는 셈인데, '걱정'은 괴롭거나 애가 타는 마음을 가리켜요. "기뻐서 괴롭다"고도 할 만하지만, 이야기 흐름을 살피거나 이 그림책을 읽을 아이들을 헤아린다면 "즐거운 생각"이나 "기쁜 생각"으로 고쳐써야 알맞습니다.
한 가지를 더 돌아본다면, 책이름도 "두더지의 고민"이 아니라 "걱정 많은 두더지"라든지 "걱정꾸러기 두더지"라든지 "걱정쟁이 두더지"로 새롭게 붙일 만합니다. 한국말에서는 '-의'를 함부로 붙여서 이름을 짓지 않습니다. 다른 책도 아닌 어린이책인 만큼, 책이름과 몸글에 넣는 말마디는 더 깊고 넓게 마음을 기울여서 바라보고 다룰 수 있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