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다쳤어요", 보이스피싱인 줄 알았는데...

'사기'란 생각에 응급전화 무시... 아이에게 많이 미안했다

등록 2015.05.16 16:31수정 2015.05.16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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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내기라 가슴이 들떠 있을 때였다. 대한민국 국민의 독서 수준이 세계 평균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말에 욱해 구입한 책이 19금 야설 수준이었다.


직장생활하며 모은 결혼자금 2천만 원을 3부 이자 준다는 말에 혹해 사장 친구에게 빌려주었다가 그대로 떼였다. 사장 친구는 부도를 내고 미국으로 도망갔다.

두 번 당한 사기가 만들어낸 트라우마이거나, 사회 분위기 탓이거나... 어쨌든, 매사 경계 하며 다신 사기를 당하지 말아야지 조심 또 조심하며 산다고 했는데, 그로인한 구멍이 뜻하지 않은 곳에서 생겼다.

"큰애가 학교가다 다쳤다고 전화가 와서..."

 아이가 다쳤다는 전화가 왔지만, 나와 남편은 피싱일 거라는 생각에 무시했다.
아이가 다쳤다는 전화가 왔지만, 나와 남편은 피싱일 거라는 생각에 무시했다. sxc

최근 보이스피싱으로 인한 피해가 워낙 많다 보니 모르는 번호로 오는 전화는 잘 받지도 않거니와, 아는 번호여도 목소리가 좀 이상하면 번호를 조작해서 오는 사기 전화인가 싶어 끊어버리곤 했다. 그러다 보니 아들에게 진짜 사고가 났음에도 우리 부부는 2시간 가량 아들을 방치하는 실수를 해버렸다. 정말 미안하고 부끄럽고 선생님껜 죄송하다.

오늘(14일) 아침 우리 집 풍경이다. 고1인 둘째는 7시 20분께 자전거 타고 학교로 출발했다. 대학생인 첫째는 11시 강의라 늦잠을 잤고, 남편은 7시 30분에 출근했다. 난 출근 전에 강아지를 산책시켰다.


"집에 별 일 없어?"

산책하는데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한 시간 전에 나갔으면서 갑자기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큰애가 학교가다 다쳤다고 전화가 와서..."
"큰애 자고 있는데?"
"그러게... 보이스피싱인가 보다."

한동안 잠잠하던 보이스피싱 전화가 아침부터 왔다면서 최근 회원 가입하며 개인 정보 적은 거 없는지 살펴보라면서 전화를 끊었다. 산책하면서도 새로 회원가입한 곳이 어딘지 떠올렸고, 최근 다운로드한 앱이 미심쩍었다. 어떻게 알아보나 궁리하고 있을 때 둘째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바로 전화가 오는가 싶더니 바로 끊겼다.

남편의 전화도 있었고 진짜 담임선생님이시면 여러 번 신호가 울렸을 텐데 바로 끊긴 것이 이상했다. 남편에게도 피싱 전화가 갔다고 하니 내게도 선생님 전화번호를 도용해 오는 전화일 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곤 마저 산책을 하다가 잊었다.

산책을 끝내고 집에 와서는 출근 준비를 하느라 바빴다. 화장대에 앉아있는데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또 전화가 왔다. '그래 뭐라고 하나 들어나 보자' 하는 마음에 받았다. 정말 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은 대뜸 "우선 수술이 급하다고 하니 빨리 오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놀라는 내게 아버님께 전화를 드렸는데 전달받지 못하셨느냐고 물었다. 남편은 담임선생님의 번호를 저장해두지 않았다.

양손에 붕대, 반창고... 아프고 애잔했다

 둘째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다가 사고를 당했다.
둘째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다가 사고를 당했다. sxc

둘째가 등굣길에 다쳐 병원 응급실에 있다고 했다. 손목 골절이 심각해 수술을 해야 하는데 보호자가 오지 않아 검사도 못하고 있다고 했다. 눈앞이 캄캄했다. 그제야 상황이 이해되었다. 연락이 되지 않는 부모가 얼마나 답답했을까. 선생님은 얼마나 황당하셨을까... 자느라 받지 못한 큰아들의 전화에도 여러 통의 전화가 와 있었다.

"정말이야... 큰 아이 이름을 말하니 분명 집에서 자고 있는 걸 보고 나왔으니 의심하지."

연락을 받은 남편도 놀랐다. 큰아들과 작은 아들은 학교가 같다. 올해 졸업한 큰애는 학교생활을 즐겨 대다수 선생님들이 기억하신다. 마침 작은애 담임선생님도 그런 분이시라 남편과 통화할 때 큰아들 이름을 먼저 말씀하셨나 보았다.

평소 나처럼 사기를 당한 적이 없는 것이 '철저한 안전 원칙' 때문이라 생각하는 남편은 큰애가 자고 있는 모습을 보고 출근한 상황에서 사고가 났다는 말로 이해했고, 그 다음 이야기는 '사기에 넘어가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에 귀담아 듣지 않았다고 했다. 보이스피싱 전화로 의심받으신 선생님... 하필 스승의 날을 코앞에 두고 속상하셨을 것 같아 죄송하다.

병원에 도착하니 양손에 붕대, 얼굴 여러 곳엔 반창고, 터진 입술, 피와 흙이 엉긴 교복을 입고 누워있는 아들이 보였다. 그 몸으로 학교까지 걸어와서 선생님들이 놀랐다고 했다. 너무 미안하고 안쓰러웠다. 자전거로 20분 걸리는 등굣길에 적색신호로 변한 횡단보도 앞에서 갑자기 멈추다 그대로 뒤집어졌다고 했다. 왼쪽 손목이 복합 골절되었고 여러 곳에 찰과상을 입었다.

아들은 약 두 시간을 부모 없이 혼자 아파했다. 고등학교 1학년이면 이 정돈 아무것도 아니라고 강하게 키워야 한다지만 마음이 아프고 애잔한 건 어쩔 수 없다.

"처음엔 정신이 하나도 없더니 이젠 괜찮아요."

미안해하는 내게 아들은 담담하게 말했다. 우선 수술은 잘 되었고 아들은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된다고 좋아한다. 담임선생님께는 죄송한 마음을 전했다.

이번 일을 겪으며 선생님에 대한 정보를 남편에게 제공하지 않은 나의 부주의를 반성하며 '절대 사기 당하지 않겠다'면서 내 안에 친 편견이 진실을 알아가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됐다. 부모가 되기에도 어른이 되기에도 부끄러운 하루다.

○ 편집ㅣ최유진 기자

#피싱사기 #자전거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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