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마리아 막달레나루카 시뇨렐리 '성 마리아 막달레나' 오르비에토, 오페라 델 두오모 박물관
박용은
상상이 됩니까? 아무도 없는 박물관에 나 홀로 맞이한 작품 '성 마리아 막달레나!' 초기 르네상스 양식의 얼굴 묘사에(이 묘사는 피렌체에서 보티첼리의 그림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황금색과 붉은색의 화려한 옷차림, 신비한 눈빛과 황금빛 긴 머리카락, 그리고 손에는 향유병을 든 여인! 오직 나 혼자 그녀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물밀듯 밀려오는 감동이란 말은 이런 때 쓰는 것일 테지요. 나는 또 오래 오래 그녀, '성 마리아 막달레나' 앞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모두 목격한 유일한 사람입니다. 예수의 유일한 여제자로 평가받기도 하지요. 원래 거리의 여인이었던 그녀는 예수 앞에서 눈물로 회개했는데 그때 흘린 눈물이 예수의 발을 적시자 자신의 긴 머리카락으로 예수의 발을 닦고 향유를 부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가 죽은 다음 날부터 예수의 시신에 향유를 바르기 위해 찾아갔다가 예수의 부활을 목격하지요. 따라서 손에 든 향유병과 황금빛 긴 머리카락은 그녀를 상징하는 도상입니다.
이탈리아 미술사에서 루카 시뇨렐리는 르네상스 초기의 선구자로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 '성 마리아 막달레나'도 딱 그 위치에 어울리는 그림입니다. 그래서 중세의 모자이크와 같이 여전히 부자연스러운 묘사도 언뜻 보입니다. 하지만 그의 그림들이 "수많은 미술가들에게 미술의 궁극적인 극치에 이르는 길을 열어주었다"는 화가이자 르네상스 미술사가인 조르조 바사리의 평가처럼, 다음 세대 르네상스의 천재들 즉, 미켈란젤로나 라파엘로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은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두오모'와 '루카 시뇨렐리'를 만나고 나니 어느새 3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배가 너무 고파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오르비에토 여기저기를 천천히 걷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나도 처음 알게 된 사실인데, 혹시 알고 있는지요? 이른바 '슬로 시티 운동'의 발상지 중 하나가 이곳 오르비에토란 사실 말입니다.
슬로 시티란 말도 이탈리아어 'Citta slow'의 영어식 표현입니다. 비록 내용은 다르지만 나도 슬로 시티, 오르비에토를 최대한 천천히 느끼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밤늦게까지 오르비에토 구석구석을 돌아보려고 로마로 되돌아가는 기차도 막차 바로 앞 차로 예매했습니다. 예쁜 카페가 있으면 오래 앉아 책도 읽고 글도 쓰려고 합니다.
▲오르비에토 거리오르비에토에는 아이들과 함께 온 어른들이 많습니다.
박용은
그런데 오르비에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보니 특이한 점이 눈에 띕니다. 그것은 바로 아이들이었습니다. 이곳 오르비에토엔 유난히 아이들을 데리고 온 여행객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로마에서의 이틀보다 훨씬 많은 아이들을 여기서 만난 것 같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오르비에토에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예쁜 가게들이 너무 많습니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이하여 온통 알록달록하게 치장한 오르비에토에선 귀여운 도자기 인형 가게와 나무 공예품 가게들, 장난감 가게들이 아이들을 유혹합니다. 더구나 오르비에토 전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그다지 높지 않은 예쁜 시계탑과 고대 에트루리아인들이 만들었다는 지하 도시도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오르비에토에서 만난 아이들은 하나같이 천사 같습니다.
▲시계탑오르비에토의 중앙에 위치한 시계탑입니다.
박용은
천사 같은 아이들. 세상 어느 곳 아이들이 천사 같지 않겠습니까마는 사실은 저 아이들이 정말 천사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는 천사의 이미지는 유럽 화가들의 그림 속 천사들이고, 그 천사들의 모델은 당연히 저 아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참, 고정관념이란 게 이토록 공고합니다. 천사에 대한 관념마저도 이렇게 서구적일 수밖에 없다니 괜히 아이들에게 미안해지기도 합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오르비에토를 돌아다니다가 다시 푸니콜레라를 타고 내려오니 묘한 기분이 듭니다. 작은 마을에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두오모. 그리고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아기자기한 마을과 또 어울리지 않게 공포스러운 '최후의 심판'. 오르비에토는 이렇게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말 그대로 '천공의 성' 같습니다.
▲오르비에토시계탑에서 바라본 오르비에토 풍경.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가 떠오르는 풍경입니다.
박용은
[짧은 덧붙임] 용어 해설 |
두오모 duomo : 영어의 돔(dome)과 같으며 라틴어의 도무스(domus)를 어원으로 합니다. 영어의 돔이 반구형의 둥근 지붕, 둥근 천장의 뜻으로 사용되는 데 대하여 이탈리아어의 두오모와 독일어의 돔은 대성당(cathédrale)을 말합니다.
로마네스크 Romanesque 양식 : 로마네스크 양식은 8세기 말 샤를마뉴(Charlemagne) 대제 시절부터 13세기 고딕 양식이 발생하기까지 서유럽 각지에서 발달한 건축양식입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로마의 전통에 게르만족의 요소가 많이 반영된 양식으로 창문과 문, 아케이드(개방형 통로)에 반원형 아치를 많이 사용한 점, 건물 내부를 떠받치기 위하여 원통형 볼트(천장이나 지붕의 곡면 구조)와 교차 볼트를 쓴 점이 특징입니다.
오페라 opera : 이탈리아어 오페라는 흔히 알고 있는 음악 용어 '오페라(가극)'를 뜻하기도 하지만 '작품', '저작'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따라서 '오페라 델 두오모 박물관'은 '두오모에 있던 작품들을 모아놓은 박물관'이란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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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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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이동조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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