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체육대회에 등장한 손팻말급식실에 달려가는 마음으로 열심히 최선을 다하자는 뜻의 “급식실 가는 마음으로”라는 팻말이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임정훈
"급식실 가는 마음으로"
매월 초 중규의 중요 업무(?) 중 하나는 급식표 가정통신문을 외우는 일이다. 중규는 월초마다 나오는 급식표 가정통신문을 가장 애타게 기다린다. 혹 사정이 생겨 하루이틀이라도 늦으면 중규는 급식표 가정통신문이 왜 늦느냐고 담임 선생님에게 따지듯 묻기도 하고 급식실로 달려가 직접 확인하기도 한다.
중규뿐만 아니라 한창 성장기인 중딩들에게 급식은 절체절명의 중요 일과다. 급식을 후다닥 먹어치우고 매점으로 달려가 후식을 사 먹는 것까지 마쳐야 중식 코스가 끝난다. 그러므로 교과서보다 밥이 더 중요하다는 데 이견을 달 중딩은 단언컨대 없다.
그래서 4교시 수업은 항상 위태롭다. 점심시간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4교시 마치는 종소리가 울리는 시각을 '적확하게' 안다. 교실 벽에 걸린 낡은 아날로그 시계를 보고 1초도 안 틀리게 타종 시각을 잡아낸다. 아무리 용한 족집게 무속인도 이럴 수는 없다.
"(학생들 몇 명 속삭이듯 작은 소리로) 5, 4, 3, 2 (큰 소리로) 1!""(동시에 수업 끝을 알리는 종소리) 딩동댕~~"4교시 수업을 마치기 몇 분 전부터 학생들은 미묘하게 술렁이기 시작한다. 의자에 앉아는 있지만 이미 몸의 절반 이상이 출입문 쪽을 향하고 있거나 엉덩이를 들었다 놨다 안절부절못한다. 아직 선생님의 설명은 계속인데 그러거나 말거나 교과서를 진즉에 덮어버린 이들도 있다. 게다가 학생들이 좋아하는 메뉴가 들어있는 날은 급식실 앞 줄서기에 밀리지 않으려면 더욱 서둘러야 한다. 밥은 소중하니까!
매월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나눠주는 숱한 가정통신문 가운데 학생들이 유일하게 절대로 함부로 버리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대부분의 가정통신문은 나눠주는 순간 종이비행기가 되거나 쓰레기로 전락해 버리지만 이건 결코 그렇지 않다. 바로 한 달 치의 급식 식단을 알려주는 급식표 가정통신문이다. 밥과 반찬 그리고 열량 표시까지 다 들어 있는 급식표 가정통신문을 학생들은 가장 소중히 간직한다.
이 급식표 가정통신문을 학생들이 보관·관리하는 데는 대체로 몇 가지 일정한 유형이 있는데 대략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 필통 보관형 - 급식표 가정통신문을 받으면 고이 접어 필통 속에 넣어두고 날마다 꺼내보는 유형이다. ▲ 벽보 게시형 – 주로 교실 벽 쪽 자리에 앉는 학생들이 자주 하는 것으로 벽에 급식표를 붙여두고 확인하거나 날짜별로 지우는 유형이다. ▲ 책상 부착형 – 자신의 책상에 급식표를 붙여두고 날마다 하나씩 뜯어내거나 X 표시를 하며 지우는 방식으로 이용하는 유형이다.
▲ 몽땅 암기형 – 급식표 가정통신문을 받으면 곧장 외워버리는 유형으로 전체 메뉴를 모두 외우거나 주 메뉴만 외우는 형태, 혹은 자신이 좋아하는 메뉴와 그렇지 않은 메뉴로 나누어 외우는 형태로 구분된다. ▲ 교탁 활용형 – 교탁 바로 앞에 앉는 학생들이 즐기는 유형으로, 자신의 책상과 교탁이 마주하는 위치에 급식표를 붙이거나 날짜별로 잘라서 붙여두고 활용하는 형태다. 등잔 밑이 어두운 관계로 선생님들은 결코 이를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이 밖에 자신이 좋아하는 메뉴가 나오는 날만 골라 책상 위에 날짜별로 식판 그림을 그려 놓는 유형 등도 있다.
이처럼 학생들이 급식표 가정통신문을 보관·활용하는 형태는 다양하지만 결국 모두가 '밥'을 향한 격렬하고 뜨거운 마음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전국의 모든 학교의 급식 메뉴를 알려주는 스마트폰 앱도 다양하게 나와 있다. 때문에 학생들은 저마다 휴대폰에 하나씩 설치해 두고 같은 동네 이웃 학교와 급식의 질을 비교하는 데 활용하기도 한다.
학교 체육대회에서는 급식실에 달려가는 마음으로 열심히 최선을 다하자는 뜻의 "급식실 가는 마음으로"라는 팻말이 등장해 눈길을 끌며 보는 이들이 웃음을 머금게 하기도 했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라는 걸 중딩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