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문제 베낀 교사... 학생들에게 '고통분담'

[단독] 절반 이상 문제 베꼈는데 고등학교·교육청 '미적지근' 대응

등록 2015.06.01 14:24수정 2015.06.01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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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영천의 한 고등학교에서 지난 4월 29일 치른 중간고사 시험 중 시중의 문제지에서 그대로 배낀 문제들을 학생들이 찾아냈다.
경북 영천의 한 고등학교에서 지난 4월 29일 치른 중간고사 시험 중 시중의 문제지에서 그대로 배낀 문제들을 학생들이 찾아냈다.조정훈

경북의 한 고등학교에서 치른 중간고사에서 일부 과목의 시험문제가 시중에 있는 참고서에서 그대로 베껴 출제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학교는 문제를 제기한 학생에게 진술서를 요구하고 교육청은 수수방관하는 태도를 보여 비난이 일고 있다.

경북 영천에 있는 Y여고는 지난 4월 29일부터 5월 1일 사이 중간고사 시험을 치렀다. 하지만 3학년 인문사회계열 시험과목인 <독서와 문법>, <화법과 작문> 문제 가운데 절반이 넘는 문제가 교사용 지도서와 시중의 참고서에서 그대로 베낀 사실이 드러났다. 이 학교는 인문사회개열 4개 반과 자연계열 3개 반이 있다.

이 같은 사실은 시험을 친 학생이 학원에서 미리 받은 중간시험 대비용 문제지에 같은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다른 학생들에게 이야기하면서 알려졌다. 두 과목 각각 30문항 중 16문항씩 지학사에서 출판한 '교사용 지도서 문제은행'과 '교과서 뛰어넘기'에서 출제된 것이다.

해당 교사 "교사용 지도서 문제는 학생들이 모를 것이라고 생각"

시험 일주일 뒤인 지난달 8일 사실을 알게 된 학생들은 시험을 출제한 교사를 찾아가 이의를 제기했지만 해당 교사는 "교사용 지도서는 판매용이 아니기 때문에 베껴서 출제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너희들이 재시험을 원한다면 다시 치를 것인지 의견을 모아오라"고 했다.

해당 교사는 다시 3일 뒤인 11일 인문사회계열 학생들에게 일부 시험문제를 베껴 출제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고 유출이 된 것처럼 설명한 뒤 재시험을 치를 것인지를 투표했다. 그때까지 문제의 심각성을 알지 못했던 학생들은 4반을 제외하고는 과반수가 재시험에 동의하지 않았다.

해당 교사는 이날 오후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문제를 제기한 학생들을 불러 30문제 중 14문제만 다시 시험을 치자고 요구했지만 학생들이 거절하자 다시 재투표를 통해 재시험을 결정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진술서를 쓸 것을 요구하고 "유출된 문제를 풀어 이익을 본 학생들은 누구냐"고 다그치기까지 했다. 또 증거자료가 필요하다며 "표절한 문제가 어떤 것들인지 학생들이 직접 찾아오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유출된 문제를 풀었다는 학생이 누구인지 알려졌고 이 학생은 교사에게 불려가 경위서를 작성했다.

이에 대해 해당 교사는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문제가 유출된 경로를 알기 위해 미리 문제를 본 학생들을 알려달라고 한 것이지 책임을 묻기 위해서 한 것은 아니다"며 "교사용 지도서에 나오는 문제는 학생들이 전혀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또 "교사들이 문제를 낼 준비가 부족해 시중 문제를 참고하기도 한다"며 "이번 출제는 두 과목 60문항이라 나 혼자만 가지고 있는 자료에서 잘 배열하면 모를 것이라 생각했다. 아이들이 문제집을 가지고 있을 줄 전혀 몰랐다"고 해명했다.

 경북 영천의 한 고등학교 시험지가 시중의 문제지에서 그대로 베껴 출제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학생들이 찾아낸 문제를 학교측에 제시했다.
경북 영천의 한 고등학교 시험지가 시중의 문제지에서 그대로 베껴 출제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학생들이 찾아낸 문제를 학교측에 제시했다.조정훈

Y여고 L교장은 시험을 치른 뒤 2주일이 지난 후에야 뒤늦게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지만 오히려 해당 교사를 두둔했다. L교장은 학생들에게 "학교는 공동체이기 때문에 잘못은 선생님이 했더라도 그 결과는 학생들이 나누어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학교에는 일부 시험문제가 표절됐다는 사실과 문제를 제기한 학생들이 진술서를 강요받았다는 내용의 대자보가 기숙사와 학교 매점, 화장실 등에 붙었고 5월 20일에는 3층 교실에서 운동장으로 뿌려지기도 했다. 이날 경북도교육청과 영천교육지원청에 익명으로 제보가 들어갔다.

교육청 '문제 베끼기' 제보 받고도 '익명'이라며 조사 안 해

하지만 교육청은 익명으로 제보된 내용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며 조사도 하지 않았고 Y여고 교장은 해당 교사에게 '경고' 조치만 했다. 또 학교운영위원회를 열어 일부 학부모에게만 사실을 알린 후 이의제기를 하지 말도록 요구한 상태에서 재시험은 지난달 29일 치러졌다.

교장은 대자보를 붙인 학생들이 시험에 불만이 있는 일부 극소수 학생들이라 판단하고 수업시간에 문제제기를 한 학생들을 교장실로 불러 책임 추궁까지 했다고 한다. CCTV를 통해 누가 대자보를 뿌렸는지 알고 있다는 협박성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문제제기를 한 학생을 불러 "대자보를 뿌리는 것은 명예훼손에 해당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A학생은 "해당 선생님은 학생들이 문제가 잘못됐음을 알았을 때 절차에 따라 해결하지 않고 학생들에게 책임을 전가했다"며 "학생들의 문제제기를 무마하려고만 하고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는 식의 학교 태도에 무서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교육청도 진상을 파악하고 대처하기는커녕 오히려 학교를 두둔하기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투서가 들어가자 해당 학교에 전화를 해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만 묻고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

해당 장학사는 1일 오전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투서가 들어온 것은 맞지만 익명이어서 민원으로 처리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학교가 재시험을 치르기로 했기 때문에 마무리가 된 후 경위 파악을 할 예정이었다"고 말했다.

결국 학생들이 피해를 입지만 문제 학교와 교육청은 문제를 덮는 데만 급급한 것이다. 한 달이 지나도록 학교가 재시험을 제외한 아무런 태도를 보이지 않자 학생들은 집단행동에 들어갈 태세다.

학생들은 학교 측에 공개 사과를 요구하고 학생들 사이를 이간질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또 문제를 표절한 교사에 대한 처벌과 교체까지도 요구하고 나섰다. 3학년 B양은 "해당 교사의 수업을 다시 듣고 시험을 쳐야 하는 게 힘들다"며 교사를 교체해야 한다고 말했다.

○ 편집ㅣ손병관 기자

#경북교육청 #고등학교 #중간고사 #문제 베껴 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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