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일부터 정규수업 끝나면 바로 집에 와서 저녁밥을 하는 우리 큰아들 제굴. 6월 3일에 차린 밥상이다.
배지영
"제규야! 너, 어디 가? 어디 가는 거야?""밥 하러."
6월 1일 오후 4시 40분, 군산 동고등학교 1학년 6반 교실. 정규 수업을 마친 제굴(강제규)은 교실을 나왔다. 반 친구들 27명은 남아서 보충 수업 2시간을 더 받는다. 그 수업이 끝나면 9명의 친구들만 집에 간다. 18명의 친구들은 저녁밥 먹고 다시 오후 10시까지 야자를 한다. 제굴은 학교 앞에서 냉큼 시내버스를 탔다. 집에 오니까 5시 40분이었다.
중3 때, 제굴은 조리고등학교에 지원했다. 내신 성적이 별로여서겠지, 서류 전형에서 떨어졌다. 우리가 사는 군산에서 남학생이 갈 학교는 일반고 세 곳, 상고 한 곳, 공고 한 곳, 외고 한 곳, 자사고 한 곳. 제굴은 집에서 가장 가까운 일반 고등학교에 1지망으로 지원했다. 안 됐다. 가장 먼(시내버스 1시간, 카풀 30분, 자동차 20분) 학교에 배정 받고는 절규했다.
"엄마, 완전 망했어요. 그 학교는 야자 한다고요. 3월 한 달은 무조건 해야 한대요." 3월 2일, 고등학교에 입학한 제굴은 오후 5시쯤 집에 왔다. 저녁밥 먹고는 그릇을 식기 세척기에 넣어 정리했다. "야자 하면, 꽃차남(열 살 차이 나는 동생) 자는 모습만 볼 거야. 같이 놀지도 못할 거야" 한탄하면서. 꽃차남은 "야호! 형 인생은 끝났다!"고 기뻐했다. 눈물 콧물을 쏟게 만드는 뜨거운 형제애를 가진 제굴, 동생을 때렸다. 새로울 것 없는 밤이었다.
3월 3일 오후 10시 30분, 야자 하고 온 제굴은 얼이 빠져 보였다. 그 긴 시간 동안 우두커니 앉아만 있었다면서 "내일부터 책이라도 읽어야겠어요"라고 했다. 다음 날 제굴은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을 가져갔다. 그 다음 날에는 한 권으로 안 된다면서 <시간을 파는 상점>과 <구덩이>를 가져갔다. 일주일 지나자 여유가 생긴 걸까. 제굴은 투덜거렸다.
"엄마, 내 얼굴 좀 봐 보세요. 눈 밑에 다크 서클 생겼지요? 나는 다 크지도 않았는데, 늙게 생겼어요. 완전 억울해. 이렇게는 못 살아요. 자퇴할 거야.""그만 둬야지, 뭐. 근데 3개월 치 등록금 낸 건 너무 아깝다야. 엄마 돈 벌기 완전 힘든데.""(한숨) 5월까지만 참아볼게요. 근데 학교에서 할 것 없으니까, 이달의 독서왕 해 볼까요?"제굴은 3월 15일 일요일 밤에 갑자기 아팠다. 남편이 응급실에 데려갔더니 뇌수막염. 나는 큰애 어릴 때부터 진료해준 소아과 선생님한테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은 제굴이가 혼자 걸을 수 있으면, 집에 가서 자도 된다고 했다. 팔에 링거를 꽂고 집에 온 제굴의 눈동자, 반짝였다. 그래보였다. "엄마, 저 내일 야자 못 하겠지요?"라는 말이 흥겹게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