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열 기자의 페이스북
고재열
메르스가 사람들에게 공포로 각인되기 시작하던 지난 6월 4일, <시사IN> 고재열 기자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 한 편이 이슈가 되었다. '메르스, 그리고 '중심의 저주''로 시작하는 짧은 글이었는데, 그 촌철살인으로 인해 많은 이들에게 공유되어 퍼져나갔다.
그는 메르스와 세월호를 비교하며 주변부에서나 벌어질 것 같았던 재앙이 메르스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의 중심부를 노크하고 있다고 서술했는데, 그 비교의 날카로움에, 그리고 그 섬뜩함에 많은 이들이 반응을 보였다.
그의 글은 세월호만 생각해도 답답한 이들에게는 통렬한 일갈이었으며, 세월호 사건을 한낱 교통사고로 생각하던 이들에게는 억지스럽지만 마냥 무시할 수도 없는 비아냥거림이었다.
모든 이에게 평등한 메르스사실 고재열 기자가 적은 대로 메르스는 강남을 강타하고, 삼성을 강타했지만 그것은 필연이라기보다 우연에 가까웠으며, 사람과 정보가 중심부로 몰리기 때문에 생기는 일종의 착시일 뿐이었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메르스 관련 병원을 공개하지 않았던 당시만 하더라도 삼성서울병원 보다는 평택성모병원이 더 심각한 상황이었고, 강남 사람들이 다른 지역보다 예민하게 반응했던 건 그들이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삼성서울병원이 강남에 위치해 있고, 메르스와 관련된 의사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곳이 강남이니 그럴 수밖에.
그러나 그로부터 열흘 정도가 지나 상황이 달라졌다. 비록 메르스에 대한 공포는 강남을 넘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지만, 실제 대한민국 최고의 병원이라 자부하던 삼성서울병원은 전염병의 '숙주'가 되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메르스가 질병관리 본부나 병원에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인력들에 의해 전파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IT관련 외주업체 파견직 직원이나 응급실 이송요원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인데, 그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비정규직이라는 점이다. 즉, 사회에서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제대로 관리 받지 못하고 있는 약자들이 방역 시스템에 있어 아킬레스 건으로 등장한 것이다. 메르스는 비정규직과 정규직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더욱 심각한 사실은 그들이 자신의 메르스 감염 사실을 숨길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일자리가 불안한 그들에게는 아직 치사율 10%밖에 되지 않는 메르스보다 메르스 감염에 걸렸을 때 자신이 받을지도 모르는 직장에서의 불이익이 더 치명적일 수도 있다. 메르스 때문에 격리가 되고 혹여 이 때문에 직장에서 잘리고 나면 그 이후에 대해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것이 냉엄한 현실이지 않은가.
정부에서는 메르스 관련 치료비를 모두 대주겠다느니, 의심환자로 격리된 가구에 대해서는 110만 원(4인 기준)을 지원하겠다느니 하며 생색을 내고 있지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이들에게 이는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그들에게 절박한 것은 반짝 지원이 아니라 안정된 삶이다.
다시 읽는 중심부의 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