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변없이 최악의 정책으로 뽑힌 '인성 체크리스트'
고상훈
그렇게 학급 정책들이 하나둘 안정기로 접어 들어가던 어느 날, 갑자기 내 교탁 앞이 소란스러워졌다.
"(울먹거리며) 선생님, 있잖아여. 인성부. 여자는 체크리스트에 안 적고 남자만 적어여.""(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아니에요. 쌤. 분명히 얘가 욕 먼저 썼대요.""(닭똥 같은 눈물을 떨어뜨리며) 아니거드은! 쟤가 먼저 욕 썼거드은!""(눈물에 당황한 듯 나를 보며) 쌤, 진-짜 아니에요.""(눈물을 훔치며) 그리고여. 있잖아여. 막 사소한 것도여. 적으니까여. 친구랑 뭘 할 수가 없어여.""(목소리를 높이며) 우리는 그냥 정책대로 하는 거거든!" 대체 '인성 체크리스트 정책'이 무엇인가. 인성부의 인성 체크리스트 정책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인성부에는 직접 정한 학교생활과 관련한 몇 가지 약속들이 있다. 그리고 이 약속을 어기는 행동을 하면 체크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가는 것이다. 각종 고자질이 이 인성 체크리스트로 향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게 하루에 두 번 이름이 올라간 친구는 반성문 한 장이 주어진다.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는 아이와 제보를 받았으니 인성 체크리스트에 이름을 올려야 한다는 인성부원 간의 갈등은, 이미 서로 굉장히 날이 선 상황이었다. 갑자기 갈등이 터진 일은 아니었다. 꾸준히 불만을 가지고 있던 친구들이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이 사건을 계기로 불만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이다.
이 갈등은 결국 인성 체크리스트를 없애야 한다는 급진파와 유지하되 바꿔야 한다는 온건파, 그리고 인성 체크리스트는 꼭 유지되어야 한다는 보수파 세력으로 나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분명한 것은, 다수의 의견은 정책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이 정책을 바꾸기 위해서는 5월 말로 예정된 정기 의회를 기다려야 했다. 나도 일단은 갈등 상황에 개입하지 않고 지켜보기로 결정했다. 조용했던 건의함이 가득 차 있었다. 열어보지는 않았지만, 인성 체크리스트와 관련된 건의임에 확실했다. 자신이 가진 달력에 5월 말 학급의회를 적어두는 친구도 보였다. 교실에는 알 수 없는 스산한 기운마저 감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