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어머니
가시내와 사내는 아이를 낳으면 '어머니'하고 '아버지'라는 이름을 얻습니다. 두 사람한테 아이가 찾아오면 이때부터 '어버이'라는 이름을 누립니다. 가시내와 사내는 '어른'이 되어 짝을 맺을 수 있는데, 둘이 짝을 맺어서 '짝님'으로 지내더라도 아이가 없으면 '어머니'도 '아버지'도 '어버이'도 되지 못합니다. 아이를 낳아 어머니로 지내기에 '아이 어머니'이고, 아이를 낳아 아버지로 지내니 '아이 아버지'입니다. '아이 어머니·아이 아버지'는 한집을 이룬 두 사람이 다른 사람 앞에서 서로 가리키는 이름으로 쓰기도 합니다.
요즈음은 '애 엄마·애 아빠'처럼 쓰는 사람이 대단히 많습니다. '애'는 '아이'를 줄인 낱말이지만, '엄마·아빠'는 아기가 쓰는 말입니다. 아직 혀를 제대로 놀리지 못하는 아기가 혀짤배기 소리로 내는 이름이 '엄마·아빠'입니다. 그래서 '아기'가 철이 들어 '아이'로 넘어설 무렵에 혀짤배기 말인 '엄마·아빠'를 내려놓고 '어머니·아버지'로 이름을 새롭게 써야 합니다.
아이가 제 어버이를 '어머니·아버지'로 부를 적에는 아이 스스로 철이 들면서 씩씩한 '한 사람'으로 선다는 뜻이요, 이제부터 아이는 심부름을 곧잘 할 뿐 아니라, 집일하고 들일(바깥일)을 찬찬히 배운다는 셈입니다. 늦어도 열 살부터는 '아기 말'인 '엄마·아빠'를 내려놓고 '어머니·아버지'를 써야 하며, 여느 어른하고 어버이라면 아이가 '혀짤배기 말'을 그만 쓰는 '철든 한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삶노래
아름다운 이웃님이 빚은 멋진 동시집이 있기에, 이 책을 펼쳐서 아이들하고 '노래를 부르곤' 합니다. 왜 동시를 노래로 부르는가 하면, 참말 동시는 언제나 노래처럼 읽을 만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동시집에 나오는 글도 아버지가 쪽종이에 적어서 건네는 글도 모두 아이 나름대로 가락을 입혀서 노래로 부릅니다.
아이들이 모든 글을 노래로 부르면서 노는 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보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우리가 쓰는 글이 모두 노래가 된다면, 우리가 쓰는 글은 언제나 '글'이면서 '노래'라는 뜻입니다. 여러 가지 무늬와 결로 종이에 글씨를 입히니 글이지만, 이 글을 입으로 읊으면 말입니다. 말은 글이 되고, 글은 말입니다. 그러니, 글이 노래라고 한다면 말이 노래라는 뜻이요,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도 언제나 노래라는 뜻이에요. 더 헤아리면, 처음에는 글이 없이 '말'만 있었어요. 처음에는 모든 사람이 서로 말만 나누었고, 말에는 생각이나 느낌이 담겨 '이야기'로 거듭납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 곱게 가락을 입히니 '노래'입니다.
이제 하나씩 돌아봅니다. 오늘날 많은 분들이 '문학'을 하려고 '시'를 씁니다. 시를 한글로 '시'라고만 적으면 멋이 없다고 여기기도 하기에 '詩'처럼 쓰는 분이 있고, 영어로 'poem'처럼 쓰는 분이 있습니다. 이리하여, 나는 이 땅에서 오래도록 살아온 무늬와 결을 살피면서 '삶노래'라는 이름을 하나 새로 빚습니다. 사람들이 나누는 말은 '내 생각과 느낌을 담은 이야기'인데, 이러한 이야기는 바로 우리 '삶'입니다. 그래서 '삶말'이고, 이를 글로 옮기면 '삶글'이 되며, 이를 늘 즐겁게 부르면서 '삶노래'입니다. 삶노래를 곱게 지어서 기쁘게 부르는 사람들은 모두 '삶노래님'입니다. 시인도 가수도 모두 삶노래님이요, 삶노래지기이고, 삶노래꾼이면서, 삶노래장이입니다.
ㄱㄴㄷ
어떤 이야기를 들면서 곧잘 'ㄱㄴㄷ'을 씁니다. 글을 쓸 적에도 으레 'ㄱㄴㄷ'을 붙입니다. 숫자로 '1 2 3'을 쓸 수 있지만, 나는 한글 닿소리로 'ㄱㄴㄷ'을 즐겁게 씁니다. 열다섯 가지가 넘는 이야기를 줄줄이 늘어놓는 자리라면 한글 닿소리로는 모자라서 숫자를 쓰지만, 몇 가지 안 되는 이야기를 벌이는 자리에는 한글 닿소리를 기쁘게 씁니다. 오늘날에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a b c'를 으레 씁니다만, 나는 씩씩하게 'ㄱㄴㄷ'을 씁니다. 그냥 씁니다. 작은 자리에서는 'ㄱㄴㄷ'을 쓰고, 조금 큰 자리를 벌여야 할 적에는 '가 나 다'를 써요. 그리고, 숫자를 써야 하는 자리에서 '1 2 3'을 언제나 '하나 둘 셋'으로 읽습니다.
사랑손
아픈 이를 따스하게 돌보면서 어루만지는 손길을 '약손(藥-)'이라고 일컫습니다. 어버이는 아이를 어루만지면서 약손이 되고, 아이도 어버이를 살살 어루만지면서 약손이 됩니다. 서로 약손이고, 서로 따순 손길입니다. 서로 고운 손길이며, 서로 사랑스러운 손길입니다. 그런데, '약손'은 우리 겨레가 '藥'이라는 한자를 받아들인 뒤에 나타난 아름다운 낱말입니다. '藥'이라는 한자를 아직 한겨레가 받아들이지 않던 때에, 또 이런저런 한자를 모르던 시골사람이 살던 곳에서, 우리는 어떤 이름을 썼을까요? 아마 그냥 '따순 손'이나 '사랑스러운 손'이라 했으리라 느껴요.
아픔을 달래는 손길은 반가우면서 고맙습니다. 아픔을 달래려는 손길은 따스하면서 아늑합니다. 반가우면서 고마운 손길에서 사랑이 피어나고, 따스하면서 아늑한 손길에서 사랑이 자라납니다. 그래요, 우리가 서로 아끼고 보살피는 손길은 '사랑손'입니다. '사랑꽃'을 피우고 싶은 '사랑빛'이고, '사랑꿈'을 키우고 싶은 '사랑넋'입니다. '사랑살이'로 가꾸고 싶은 '사랑노래'요, '사랑살림'을 일구려는 '사랑집'입니다. 서로 '사랑말'을 나누고, 서로 '사랑꿈'을 키우며, 서로 '사랑놀이'를 누립니다.
이웃님
한국말에는 '님'이라는 낱말이 있습니다. 참으로 멋지고 아름다운 낱말이라고 느낍니다. 가만히 헤아려요. 하느님, 땅님, 바다님, 숲님, 들님, 꽃님, 풀님, 비님, 눈님, 밭님, 흙님, 나비님, 제비님, 곰님, 여우님, 이렇게 '님'을 붙이면 이야기가 확 달라집니다. 아우님, 형님, 동무님, 이웃님, 이렇게 서로 '님'을 붙일 적에도 이야기와 마음이 사뭇 거듭나요. 우리 겨레가 예부터 쓰던 이런 낱말은 서로 아끼면서 사랑하던 숨결을 담았구나 하고 느낍니다.
함께 사진을 찍는 벗이라면 '사진벗'이라 할 만한데, 사진벗을 기리거나 아끼려는 뜻을 담아 '사진벗님'처럼 쓸 수 있습니다. 글을 주고받거나 나누는 벗이라면 '글벗'이라 할 텐데, 글벗을 사랑하거나 좋아하는 뜻을 실어 '글벗님'처럼 쓸 만합니다. 이리하여, 책벗님·마실벗님·말벗님·밥벗님 들도 있습니다.
다른 어느 말마디를 안 붙이고, 그저 '님'이라고만 부를 수 있어요. 님아, 님이여, 하고 불러 보셔요. 곁님이라 부르고 사랑님이라 불러 보셔요. 그러고 보면,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즐거운 이웃이기에 이웃님입니다. 이 지구별에서 서로 아끼고 돌보면서 기쁘게 웃을 이웃이기에 이웃님입니다. 이 마을에서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노래잔치를 누리고 싶은 이웃이기에 이웃님입니다. 멀리 떨어져서 지내든 바로 옆집에 붙어서 지내든 따사로운 바람이 흐르면서 언제나 반가운 이웃님입니다. 마음으로 사귀고 웃음으로 만나는 이웃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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