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용,성민제,정재일의 'Untitled'공연은 피아노,베이스,국악의 개성만점 매력을 슈베르트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크레디아
2015 디토 페스티벌 <슈베르티아데>가 6월 6일부터 30일까지 LG아트센터와 예술의전당에서 공연중이다.
비올리스트리처드 용재오닐이 음악감독을 맡아 클래식음악의 브랜드화와 대중화, 세련된 현대음악 연주의 지속적인 실천해 온 <디토 페스티벌>이 올해는 고독과 순수한 감성의 작곡가 '슈베르트'를 주제로 다채롭고 흥미로운 공연을 마련했다.
6월 6일리처드 용재오닐의 <겨울나그네>, 13일 바이올리니스트신지아 <세레나데>, 17일 임동혁 with 스티븐 린 <슈베르트 판타지>공연에 이어, 18일과 19일에는 지용, 성민제, 정재일의<Untitled>, 20일엔 디퍼런트 디토 <추락천사>로 슈베르트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18일 지용, 성민제, 정재일의 <Untitled> 공연은 피아노, 베이스, 국악의 각기 다른 특성과 그것이 바라본 슈베르트의 느낌을 비교하며 들을 수 있는 자리였다. 피아니스트 지용은 <행복을 찾는 길>이라는 제목으로 자신이 감독하고 출연하고 녹음한 흑백 영상을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피아노 소품 네 개를 묘사하는 방식으로 세련되게 연출했다. 영상에서 나직한 시 낭송 후 이어진 첫 번째 곡 '방랑자'는 온화한 선율과 다짐으로 홀로 공연장에 앉은 한 피아니스트의 단단하고도 평온한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풍부한 페달과 단단한 오른손 선율이 안정감을 주었다.
밤거리 클럽에서 여인들에게 둘러싸인 채방황하는 지용의 모습, "My Father, My Father"하며 격렬한 내레이션의 느낌이 곧 연주된 '마왕'의 피아노 3연음부의 격렬한 고동과 뚜렷하고 음산한 선율로 전달되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그대에게 인사를'은 중음역의 선율 위로 알알이 반짝이는 상성부 장식음들로 부드러운 마지막 키스, 평온한 인사와 같은 느낌을 주었다. '세레나데'는 앞 소품보다 좀더 화려하고 강한 느낌과 확신의 어조로 변주되는 선율이 인상적이었다.
성민제는 <바스프레소를 위하여>(*베이스(Bass)+에스프레소 커피(Espresso))라는 제목으로 더블베이스의 다양한 면모를 지용처럼 네 개의 작품을 통해 보여주었다. 첫 곡에서는 둔중한 몸집의 베이스와 코맹맹이 음색이 어색했지만 다음의 슈베르트 '송어'에서는 변주가 진행될수록 저음부터 고음까지 다양한 선율과 리듬의 결합, 다이내믹한 활의 운동, 성민제의 신들린 듯한 몸집과 연주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베이스라서 못하는 것은 없구나'라고 느껴졌다. 고음까지 자연스럽게 흘러나와 일치된 네 악기의 화음이 흐뭇했다.
'악흥의 순간2번'은 무대 왼편에 세 명, 오른편에 한 명으로나눠 서서 고독하고 어두운 도시 밤, 새벽동이 트는 희망의 읊조림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다음으로 '거리의 악사'는네 명 모두 중절모를 쓴 채, 반복되며 계속 이어지는 주제선율로 주황색 조명 아래 도시방랑자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마왕'은 앞 지용의 피아노 건반악기와는 또 다른 저음 현악기의 독특한 매력으로 일치된 베이스주자들의 속사포 같은 3연음부가 무척 매력적이었다. 성민제는 활 시작부분에 악센트를 주고, 더욱 현에 밀착된 보잉(활 운동)으로 선율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저음이라 바이올린, 비올라에 비해 합주에서 더욱 선율의 강조가 힘든 베이스의 핸디캡을 극복했다. 마지막 연주자를 둘러싼 붉은 조명이 피처럼 흩어지는 것 또한 인상적이었다.
후반부에는 국악 작곡가 정재일이 참여한 <마왕> 시나위, <Untitled> 두 곡이 이어졌다. 극작가 배삼식이 <마왕>의 텍스트를 한국어로 바꾸었고, 이것이 곡 시작 전 영상에 잠시 소개되고, 그 느낌이 연주와 판소리 가사로 이어졌다. 정재일은 <마왕> 도입부의 G음 3연음부의 지속적인 울림을 자신이 연주하는 피아노 저음의 지속음 울림으로 바꾸어 천천히 달구어갔다. 점차 분위기가 고조되고, 신세대 소리꾼 정은혜의 폐부를 확 찌르는 시원한 가창과 현악사중주의 절도 있는 보잉, 타악기의 신명 나는 두드림의 한판이 펼쳐졌다.
한 가지, <마왕>의 첫 도입 지속음과 국악기 징과장구의 울림을 하나로 관통시키다 보니, 음 진행의 방향이 지속음을 떠나지 못하고 계속 웅웅거리는 느낌으로 일관된 것이 절정부 이전에는 다소 지루함을 유발시키기도 했다. 또한, 음향밸런스 측면으로는 징과 장구의 음량은 낮추어 너무 센 울림을 약간 줄이고, 피아노의 음량은 좀 더 높이고 동시에 저음 EQ는 낮추고 고음 EQ는 좀 더 높여서 더욱 명민하게 강조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낫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용의피아노, 성민제의 더블베이스, 정재일의 일렉 기타와 랩탑이함께한 <Untitled>는 정재일의 프로듀서로,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탑 클래스 연주자들의 즉흥의 순간을 감상할 수 있었다. 각기 자기분야에 능통한아티스트들이라 정재일이 제시하는 큰 테두리 안에서 펼치는 연주라서, 지용과 성민제는 각자의 변주를 이끌며 소리공간을 채워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무제'라는 타이틀보다는 디토 시즌 전체 주제와 걸맞은 합일점을 찾았다면, 구성적으로 더욱 구체적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