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아 군단아이들이 필요한 것은 사랑과 관심. 그리고 모유. 엄마들의 희생은 대단합니다. 이제 막 10일을 곁에서 지켜본 아빠는 이 과정을 위대하다는 단어 말고는 할 말이 없어집니다.
추현호
산후조리원마다 시스템이 다르겠지만, 저희가 묵고 있는 한 여성병원에는 방마다 전화기가 놓여 있습니다. 저는 이 전화기가 처음에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몰랐습니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는 전화기 같습니다. 가상세계와 그 세계를 초월한 세계로 연결되는 전화벨입니다.
엄마는 자신만의 방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이 전화 한 통이면 자리로 이동합니다. 그 방안에는 오로지 아빠만이 같이 거주할 수 있습니다. 이제 조리원을 퇴원하면 아이를 위해 평생 엄마를 찾는 전화기를 가슴 속에 품고 살아갈 것입니다.
잠 많던 아내가 새벽 3시에도, 아침 6시에도 벌떡 일어나 신생아실로 달려가게 만드는 이 전화기. 이건마치 군대 훈련소의 기상 나팔보다 아니 자대 배치 후의 기상 팡파레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합니다.
약 30여 개의 방에는 산모들이 휴식을 취하면서 대기합니다. 아이들은 모두 신생아실에서 간호사 선생님의 보호를 받습니다. 그러다가 아이가 웁니다. 그러면 간호사 선생님은 이 아이가 왜 우는지 봅니다. 배변기저귀때문인지, 아니면 배가 고파서인지? 시간을 기록한 차트를 보고는, 아이가 우는 게 밥 먹을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라면, 해당 호수로 전화를 겁니다.
"수유실입니다.""네."대화는 이렇게 짧습니다. 그안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수유실입니다. (아이가 젖 달라고 웁니다.)""네. (지금 바로 갈게요!)"저는 알랭드 보통이 공항에서의 일주일을 보내면서 써낸 책 <공항에서의 일주일>보다 더 세밀하게 관찰합니다. 그는 관찰자로서 공항에서 시간을 보냈지만, 저는 아빠라는 밀접한 참여자로 이곳 산후조리원에서 생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것이 신기합니다.
아이를 낳고 아줌마가 된 여성들의 대화도 흥미롭습니다. 산신할머니에게 절을 해야한다느니, 배꼽의 냄새라든지, 모유의 양이라든지... 아내들의 대화 주제는 아이에게 많이 이동합니다. 아니 전부입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내의 관심에서 아빠는 멀어집니다. 아빠는 이것저것 나르고 보조하는 '비서' 정도의 역할이랄까요? 아내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는 것, 그게 최고의 미션 수행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행복한 기분입니다.
조리원 1주차가 지나고 나면, 처음에 왕성하던 엄마의 끈기도 작심삼일처럼 끊길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닙니다. 모성이란 작심삼일을 뛰어넘는 위대한 무언가가 있습니다.
24시간 울려대는 모유 콜, 야간 수유, 유축기의 신기한 압착음... 혹시 여러분도 산후조리원에 계신가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 먼 산, 남 이야기하듯 다가오는 많은 총각처녀분이 계실 것입니다. 저 또한 그랬습니다. 육아와 태교에는 전혀 무감각·무관심 했습니다. 그렇지만 어느덧 이 부분이 제 삶의 중앙에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좀 더 준비하고, 좀 더 알아둘 걸'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밀물처럼 가슴을 파고듭니다. 시간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아이가 덩그러니 자란 어느 날에는, 이런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아빠의 역할에 대한 고민은 이제 시작입니다. 엄마가 모유를 짤 동안 아빠는 가족계획을 짭니다. 역시 부부는 위대한 한 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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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에 울리는 전화... 시작된 모유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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