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피살자 유해 안치소 철거령에 유족회 '분통'

시민성금 모아 발굴한 유해 20여구 안치... 공동대책위 "패륜적 행정"

등록 2015.06.25 18:04수정 2015.06.26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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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1일 오후 대전 산내유가족들이 유해를 수습하기 전 추모제를 지내고 이다. 앞쪽에 보이는 것이 희생자의 유해다.
지난 3월 1일 오후 대전 산내유가족들이 유해를 수습하기 전 추모제를 지내고 이다. 앞쪽에 보이는 것이 희생자의 유해다.모소영

시민들이 성금을 모아 한국전쟁 당시 우리 군경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당한 유해들을 발굴, 안치해 놓은 '임시유해안치소'를 철거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이에 유족들은 이러한 공문을 보낸 대전 동구청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와 대전지역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한국전쟁기 대전산내 민간인학살 유해발굴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동대책위)'는 25일 성명을 내고 "한국전쟁 발발 65주년을 맞이하는 오늘, 우리는 대전동구청의 인륜마저 저버린 '패륜적 행정'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들에 따르면, 대전동구청(청장 한현택)은 최근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에 공문을 보내, 대전 낭월동 골령골에 있는 '임시유해안치소'는 '불법시설물'이라며 '철거명령'을 내렸다.

이에 대해 공동대책위는 "유해안치시설을 설치해주고 위령사업을 지원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철거하라고 한 것은 패륜적 행정이 아닐 수 없다"며 "동구청이 유가족들의 아픈 상처를 건드려 덧나게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산내학살사건은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17일 새벽 사이, 충남지구CIC, 제2사단 헌병대, 대전지역 경찰 등이 아무런 법적 절차 없이 대전형무소 재소자와 보도연맹원을 대전산내 골령골에서 집단살해한 사건이다.

지난 2010년 진실화해위원회는 이 같은 내용으로 사실규명 결정을 내렸고, 국가는 당시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절차를 밟고 있지만, 학살현장에 대한 보존이나 유해발굴, 기념사업 등은 전혀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을 안타깝게 여긴 시민들은 지난 3월 성금을 모아 학살현장 일부에 대해 유해발굴을 시도했고, 20여 구의 유해를 찾아냈다. 그리고는 발굴된 유해들을 안치해 놓을 공간이 없어 임시 컨테이너박스에 유해를 안치해 놓았다. 이에 대해 동구청이 '불법시설물'이라며 '철거명령'을 내리자 공동대책위가 반발하고 나선 것.


공동대책위는 성명에서 "희생자유족회에서는 지난 3월 시민들의 성금과 자원봉사활동으로 골령골에 암매장돼 있는 희생자 유해 20여 구를 발굴했다, 또한 남아 있는 유해들이 훼손될까 더 이상 농사를 짓지 않도록 땅을 임대해 기다란 봉분을 만들었다"며 "그렇게 발굴한 유해는 컨테이너박스에 임시안치했다, 오갈 곳 없는 유해에 대해 유족회와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였다"고 밝혔다.

이어 "하지만 대전 동구청은 전국 각지에서 유해 발굴을 위해 찾아온 시민들을 모른 채 외면하고, 아무런 행정적 도움도 주지 않았다, 오히려 유해매장 추정지가 더 이상 훼손되지 않게 현장 안내판이라도 설치해달라는 유족회의 요청마저 거부했다"고 비난했다.


"동구청, 앵무새처럼 '중앙정부가 할 일'이라고 되뇌이더니..."

이들은 또 "대전 동구청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달 유해매장 추정지 중 한 곳이 훼손되어 유골이 통째로 사라졌는데, 현장을 보존하고 관리해야 할 관할 동구청은 그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며 "심지어 유족들의 공개사과와 재발방지대책 요구에도 외면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동구청은 늘 앵무새처럼 '중앙정부가 할 일'이라고 되뇌기만 하더니 갑자기 '임시유해안치소'를 철거하라고 통지했다"며 "지난 십 수 년 동안 몰역사적이고 비인도적이고 편파적인 행정을 보여온 동구청은 유해매장지에 건축허가를 내주고, 정부의 현장안내판 설치예산은 거부하고, 유해매장지 보존 약속은 '임시유해안치소 철거 명령'으로 대답했다, 행정기관의 존재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다"고 개탄했다.

이들은 또 "유해매장지를 보존하고 유해를 발굴하는 건 국가사무이고, 유해매장지를 훼손, 방치하는 건 지방자치단체 사무인가"라고 물은 뒤 "임시 유해안치시설을 철거하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발굴한 유해를 다시 땅에 되묻으라는 건가, 남의 땅에 유해를 되묻는 건 불법인가 합법인가, 발굴된 유해를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리길 바라는가"라고 물었다.

이들은 끝으로 "대전 동구청장은 유가족들의 아픔과 고통에 대해 정말 손톱만큼의 책임도 없다고 생각하는가"라면서 "중앙정부에 시도 때도 없이 지방자치와 자치분권을 요구해오다가 자치단체의 의지만으로도 가능한 일은 중앙정부의 일이라고 떠밀어야만 하는가"라고 비난했다.

이들은 한현택 동구청장(새정치민주연합)을 향해 ▲반인도적인 임시유해안치소 철거명령을 철회할 것 ▲산내 학살 유해매장 추정지 관리 소홀로 유해와 유해매장지가 훼손된 것에 대해 유족들에게 사과할 것 ▲이번에 확인된 산내 학살 유해매장 추정지 유해훼손 과정에 대해 명확한 진상조사를 실시할 것 등을 요구하고 대전시와 동구청에 대해서도 ▲산내 학살지에서 이와 같은 유해훼손이 재발하지 않도록 산내 학살 유해매장 추정지 주변 현장안내판 설치, 유해매장지 내 영농행위 중단 조치 등 종합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한편,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는 오는 27일 오후 2시 산내 골령골 추모공원 (대전 동구 낭월동 13-1)에서 '제65주기 16차 대전산내학살사건 희생자 위령제'를 진행할 예정이다.

#산내학살 #대전 골령골 #대전동구청 #한현택 #민간인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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