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7일 대만 YFY그룹 산하 시노팩은행(Bank SinoPac) 동문지점을 기습점거한 하이디스 노동자 원정투쟁단
금속노조 하이디스지회
가진 것이 없거나, 가진 것을 내려놓은 이들이 국경을 넘는 일은 언제나 고되다. 근 1백 년 전인 1920년대 식민지 백성들에게 국경은 늘 어두운 곳이었고, 안심할 수 없는 곳이었다. 그렇기에 김동환의 서사시 '국경의 밤'은 '아하, 무사히 건넜을까'라는 걱정의 물음으로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50여 년이 지난 후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아서, 혁명시인 김남주는 미국 밀항선에 몸을 실은 광주의 투사 윤한봉과 파리의 망명객 전사 홍세화를 보며 '더러는 국경의 밤을 넘어 유령으로 떠돌기도 한다'고 했다. 유령이 되지 않고 안전하게 노동자가 국경을 넘으려면 마르크스의 일갈처럼 일국의 닫힌 국경이라는 쇠사슬을 끊어야 한다.
세대를 넘는 노동자들의 국경 넘기 투쟁대만 초국적 기업 영풍위의 하이디스 공장폐쇄와 대량해고로 한국 하이디스 노동자들은 더 이상 잃을 것이라고는 국경이라는 마지막 사슬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지난 2월 하이디스 노동자들은 이 국경의 사슬을 끊고 대만원정투쟁을 시작했다. 하이디스 노동자, 아니 한국 금속노동자들의 이번 원정투쟁은 여러모로 지난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 외자기업들의 휴폐업에 대한 투쟁과 닮았다.
피코, TC전자와 수미다를 포함한 초국적 기업의 노동자들은 자본의 휴폐업에 맞서 국경을 넘었다. "죽을 수는 있어도 패배할 수는 없다"는 비장한 결의로 국경을 넘은 수미다의 여성노동자들은 수백일 동안 일본에서 원정투쟁 끝에 승리를 거두었다.
노동자들의 비장한 결의에서부터 해당 지역 지원 세력들과의 연대, 거리 홍보에서부터 노숙 투쟁, 그리고 심지어 한국 정부의 무관심까지. 하이디스 노동자들의 투쟁은 많은 점에서 30년 전 이제 막 노동자 대투쟁으로 눈을 뜬 선배 노동자들의 투쟁과 닮았다.
그러나 하이디스 노동자들의 투쟁과 30년 전의 원정투쟁의 이러한 공통점에만 주목하게 되면 우리는 하이디스 노동자들의 국경 넘기 투쟁이 우리에게 던지는 중요한 시사점들을 놓칠 수 있다.
우선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의 해외원정투쟁은 한국 경제가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여전히 말단에 위치하고 있던 상황에서 발생했다. 대부분 경공업 중심의 초국적 기업들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각성된 한국 노동계급의 압력을 피해 중국과 동남아 등 새로운 약탈지로 도피했다. 대량 휴폐업은 우연이 아닌 한국경제와 노동계급의 동반성장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한국은 더 이상 이러한 글로벌 가치사슬의 말단이 아닌, 중위 혹은 상위에 자리 잡게 되었으며, 하이디스의 특허 기술은 이러한 달라진 한국경제의 글로벌 가치사슬에서의 위치를 보여주고 있다.
둘째로 이러한 경제와 계급관계의 변화라는 객관적 조건 외에도 하이디스 노동자들은 30년 전과는 다른 주체적 조건과 마주하고 있다. 당시 한국노동자들은 싱싱한 계급적 연대의식 속에서 공동의 투쟁을 모색하였다. 1989년에 결성된 외국기업 부당 철수 저지 및 노조탄압분쇄 공동투쟁위원회는 대량 휴폐업 사태에 맞서기 위한 노동자들의 공동 대응이었고, 이 공동투쟁은 사업장간의 연대에서부터 제도개선까지 다양한 경험의 교류와 연대의 모색으로 이어졌다.
물론 지금은 민주노총이라는 상급기관이 개별 사업장 투쟁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지만 과거만큼 당사자간 연대를 활성화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쌍용과 오스람, 하이디스의 투쟁이 '외로운'이라는 수식어를 동반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셋째로, 그간의 해외원정투쟁은 대부분 미국, 일본, 프랑스, 독일 등 소위 선진국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벌어진 대우자동차와 한국 네슬레의 투쟁도 미국과 스위스와 같은 선진국을 향한 호소의 원정투쟁이었다. 그러나 하이디스 사례는 비슷한 개발 수준의 소위 후발 산업국가들의 초국적 기업의 행태에 대한 고발과 규탄, 그리고 연대의 국경 넘기 투쟁이다. 한국과 대만 그리고 이제는 중국의 초국적 기업들은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더 이상 말단에 위치하고 있지 않으며, 따라서 싼 노동력에 대한 착취를 넘어 고급기술과 인력에 대한 역내 투자는 점차 증대 일로에 있다.
하이디스의 국경 넘기 투쟁은 바로 이러한 신흥 역내 초국적 기업에 대한 도전이라는 측면에서 기존의 선진국의 초국적 기업에 대한 투쟁과는 다른 새로운 투쟁이다. 다시 말해 하이디스 노동자들의 투쟁은 초고속 개발 과정에서 성장한 신흥 초국적 기업에 대한 투쟁이다.
따라서 단지 립서비스에 그칠지라도 오랜 기간 위기관리 차원에서 기업윤리를 관리해 온 선진국의 초국적 기업들에 대한 투쟁보다 하이디스 노동자들의 투쟁은 훨씬 더 간고할 수 있다. 또한 역내 상호투장의 증가현상을 볼 때 하이디스 노동자들의 투쟁은 이후 이러한 사례들의 전조이자 예고인 셈이다.
새로운 대만의 노동운동과 하이디스 노동자들의 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