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격서', 대만인이 감탄한 한국 노동자

[하이디스 릴레이 기고①] 노동자들의 국경넘기, 배움과 연대의 새로운 지평

등록 2015.06.30 20:05수정 2015.07.05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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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디스 노동자들은 대만자본에 의한 FFS(광시야각기술특허) 기술먹튀, 1000억 흑자에도 불구하고 공장폐쇄를 단행한 사측을 상대로 투쟁하고 있습니다. 이들 하이디스 노동자들은 지난 2월 8일을 시작으로 대만원정투쟁을 세 차례나 진행했으나 3차 대만원정투쟁 과정에서 강제추방되고, 입국이 불허되는 등 대한민국 정부의 무관심 속에 투쟁이 장기화될 우려에 놓여 있습니다. 하지만 대만 현지 진보, 노동운동 단위의 전폭적인 지지와 연대, 노동인권 변호사들의 적극적인 대응으로 강제추방이 부당하다는 판결을 이끌어내기도 하였습니다.

최근 해고노동자 전원이 원정투쟁을 결심하고 지난 6월 26일 다섯 명의 노동자들이 우선 대만으로 출국하였습니다. 국가는 탐욕스러운 외국기업으로부터 이들의 생존권과 신변을 보호해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타지에서의 투쟁이 외롭지 않도록 우리가 버팀목이 되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들이 모인다면 하이디스 노동자들의 기약없는 대만행은 멈추어질 수 있겠지요. 다음은 김정수 캐나다 빅토리아 대학 정치학 박사 후보자가 보내온 글입니다.

 3월 27일 대만 YFY그룹 산하 시노팩은행(Bank SinoPac) 동문지점을 기습점거한 하이디스 노동자 원정투쟁단
3월 27일 대만 YFY그룹 산하 시노팩은행(Bank SinoPac) 동문지점을 기습점거한 하이디스 노동자 원정투쟁단금속노조 하이디스지회

가진 것이 없거나, 가진 것을 내려놓은 이들이 국경을 넘는 일은 언제나 고되다. 근 1백 년 전인 1920년대 식민지 백성들에게 국경은 늘 어두운 곳이었고, 안심할 수 없는 곳이었다. 그렇기에 김동환의 서사시 '국경의 밤'은 '아하, 무사히 건넜을까'라는 걱정의 물음으로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50여 년이 지난 후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아서, 혁명시인 김남주는 미국 밀항선에 몸을 실은 광주의 투사 윤한봉과 파리의 망명객 전사 홍세화를 보며 '더러는 국경의 밤을 넘어 유령으로 떠돌기도 한다'고 했다. 유령이 되지 않고 안전하게 노동자가 국경을 넘으려면 마르크스의 일갈처럼 일국의 닫힌 국경이라는 쇠사슬을 끊어야 한다.

세대를 넘는 노동자들의 국경 넘기 투쟁

대만 초국적 기업 영풍위의 하이디스 공장폐쇄와 대량해고로 한국 하이디스 노동자들은 더 이상 잃을 것이라고는 국경이라는 마지막 사슬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지난 2월 하이디스 노동자들은 이 국경의 사슬을 끊고 대만원정투쟁을 시작했다. 하이디스 노동자, 아니 한국 금속노동자들의 이번 원정투쟁은 여러모로 지난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 외자기업들의 휴폐업에 대한 투쟁과 닮았다.

피코, TC전자와 수미다를 포함한 초국적 기업의 노동자들은 자본의 휴폐업에 맞서 국경을 넘었다. "죽을 수는 있어도 패배할 수는 없다"는 비장한 결의로 국경을 넘은 수미다의 여성노동자들은 수백일 동안 일본에서 원정투쟁 끝에 승리를 거두었다.


노동자들의 비장한 결의에서부터 해당 지역 지원 세력들과의 연대, 거리 홍보에서부터 노숙 투쟁, 그리고 심지어 한국 정부의 무관심까지. 하이디스 노동자들의 투쟁은 많은 점에서 30년 전 이제 막 노동자 대투쟁으로 눈을 뜬 선배 노동자들의 투쟁과 닮았다.

그러나 하이디스 노동자들의 투쟁과 30년 전의 원정투쟁의 이러한 공통점에만 주목하게 되면 우리는 하이디스 노동자들의 국경 넘기 투쟁이 우리에게 던지는 중요한 시사점들을 놓칠 수 있다.


우선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의 해외원정투쟁은 한국 경제가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여전히 말단에 위치하고 있던 상황에서 발생했다. 대부분 경공업 중심의 초국적 기업들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각성된 한국 노동계급의 압력을 피해 중국과 동남아 등 새로운 약탈지로 도피했다. 대량 휴폐업은 우연이 아닌 한국경제와 노동계급의 동반성장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한국은 더 이상 이러한 글로벌 가치사슬의 말단이 아닌, 중위 혹은 상위에 자리 잡게 되었으며, 하이디스의 특허 기술은 이러한 달라진 한국경제의 글로벌 가치사슬에서의 위치를 보여주고 있다.

둘째로 이러한 경제와 계급관계의 변화라는 객관적 조건 외에도 하이디스 노동자들은 30년 전과는 다른 주체적 조건과 마주하고 있다. 당시 한국노동자들은 싱싱한 계급적 연대의식 속에서 공동의 투쟁을 모색하였다. 1989년에 결성된 외국기업 부당 철수 저지 및 노조탄압분쇄 공동투쟁위원회는 대량 휴폐업 사태에 맞서기 위한 노동자들의 공동 대응이었고, 이 공동투쟁은 사업장간의 연대에서부터 제도개선까지 다양한 경험의 교류와 연대의 모색으로 이어졌다.

물론 지금은 민주노총이라는 상급기관이 개별 사업장 투쟁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지만 과거만큼 당사자간 연대를 활성화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쌍용과 오스람, 하이디스의 투쟁이 '외로운'이라는 수식어를 동반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셋째로, 그간의 해외원정투쟁은 대부분 미국, 일본, 프랑스, 독일 등 소위 선진국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벌어진 대우자동차와 한국 네슬레의 투쟁도 미국과 스위스와 같은 선진국을 향한 호소의 원정투쟁이었다. 그러나 하이디스 사례는 비슷한 개발 수준의 소위 후발 산업국가들의 초국적 기업의 행태에 대한 고발과 규탄, 그리고 연대의 국경 넘기 투쟁이다. 한국과 대만 그리고 이제는 중국의  초국적 기업들은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더 이상 말단에 위치하고 있지 않으며, 따라서 싼 노동력에 대한 착취를 넘어 고급기술과 인력에 대한 역내 투자는 점차 증대 일로에 있다.

하이디스의 국경 넘기 투쟁은 바로 이러한 신흥 역내 초국적 기업에 대한 도전이라는 측면에서 기존의 선진국의 초국적 기업에 대한 투쟁과는 다른 새로운 투쟁이다. 다시 말해 하이디스 노동자들의 투쟁은 초고속 개발 과정에서 성장한 신흥 초국적 기업에 대한 투쟁이다.

따라서 단지 립서비스에 그칠지라도 오랜 기간 위기관리 차원에서 기업윤리를 관리해 온 선진국의 초국적 기업들에 대한 투쟁보다 하이디스 노동자들의 투쟁은 훨씬 더 간고할 수 있다. 또한 역내 상호투장의 증가현상을 볼 때 하이디스 노동자들의 투쟁은 이후 이러한 사례들의 전조이자 예고인 셈이다.

새로운 대만의 노동운동과 하이디스 노동자들의 조우

 3월 27일 대만 YFY그룹 산하 시노팩은행(Bank SinoPac) 동문지점을 기습점거한 하이디스 노동자 원정투쟁단
3월 27일 대만 YFY그룹 산하 시노팩은행(Bank SinoPac) 동문지점을 기습점거한 하이디스 노동자 원정투쟁단금속노조 하이디스지회

대만 노동운동의 역사는 한국과 비교할 때 비교적 젊다. 1980년대 중반 권위주의 체제의 정치적 자유화와 더불어 시작된 대만의 노동운동은 30여 년 동안 지속된 계엄령이 1987년 해제되면서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 급속히 성장하였다. 그러나 대만 특유의 중소기업 중심 산업구조로 인해 노동조합 조직 환경은 열악했다.

더욱이 198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에 따라 대만자본들의 대거 중국 진출과 이에 따른 산업공동화는 이제 막 성장하기 시작한 노동운동에 커다란 압력으로 작용했다. 따라서 대만노동운동은 민간 중소기업을 주 기반으로 삼을 수 없었다.

1990년대 불어 닥친 신자유화와 민영화는 그동안 비교적 안정적 지위를 보장받았던 국영 대기업 노동자들을 각성시켰고, 1990년대 중반 이후 독립노조운동을 지향한 대만의 노동운동은 1997년 전국산업총공회(TCTU)의 결성으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

전국산업총공회는 그 영문 이름에서도 드러나듯이 홍콩직공회연맹(HKCTU)과 한국의 민주노총(KCTU)를 염두에 두고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인 노동운동을 지향하였다. 그러나 국영기업 노동자들의 이익을 중심으로 한 전국산업총공회의 노동운동은 민간분야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데 실패하였고, 정치적으로 국가기구를 장악한 집권당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려웠다.

대만의 주류 노동운동은 비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연대에 상당히 인색한 편이다. 지난해 중국과 대만 양안무역협정에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의 해바라기 운동에 대해서 내수중심의 안정적인 국영기업에 기반하고 있는 대만의 주류 노동운동이 수미일관 침묵했던 것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하이디스 노동자들은 따라서 대만 주류 노동운동의 지원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국경을 넘은 하이디스 노동자들은 그러나 다른 곳에서 따뜻한 환대를 받았다. 기존의 대만 노동운동의 사업장 중심주의를 극복하고 직업별, 산업별 노조를 결성하려는 대만 고등교육산업노조, 대만 노동운동을 넘어 대만에서의 노동운동을 통하여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원하는 다양한 사회세력들, 국영기업 노동운동의 외곽에서 새롭게 활성화된 민간기업과 비정규직에서의 노동운동, 대만 최대 노조인 개혁적인 중화통신노조, 그리고 해바라기 운동으로 활성화된 사회운동.

이들이 하이디스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원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발벗고 나섰다. 영풍위의 악성 공장폐쇄에 반대하고 하이디스 한국노동자들의 해외투쟁 지원 모임에는 이러한 다양한 세력들이 들어 와 있었고, 국경을 넘은 하이디스 노동자들이 대만의 새로운 노동운동의 흐름과 만난 것은 참으로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국경을 넘어선 배움의 지평

우연한 기회로 하이디스 노동자들의 국경 넘기 투쟁을 지원하기 위한 이 대만 현지 지원모임의 첫 회의를 참관할 수 있었던 필자는 하이디스 노동자들에 대한 이들의 지지가 얼마나 열려 있고, 열정적이고, 꼼꼼한지를 목격하였다.

하이디스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대만인들의 예상되는 반대 질문들을 논리적으로 꼼꼼히 검토하고, 삼보일배나 촛불시위처럼 생소한 시위 문화를 대만인들에게 알리고 설득하는 논리를 개발하고, 원정단의 영접에서부터 숙식 및 시위 동선 그리고 보도자료와 동원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챙기는 이들의 모습은 공문연대나 립서비스의 연대와는 차원이 달랐다.

첫 만남에서 한국의 여성 금속노동자가 한국의 세월호 사고만큼이나 비극적이었던 대만의 비행기 추락 사고에 애도를 표하는 것으로 만남을 시작하자 가슴을 열고, '단결 투쟁'이라고 쓰인 빨간 머리띠를 한국노동자들이 선물하자 자신들의 연대가 보상을 받은 것처럼 기뻐하던 대만 사람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명하다.

헌신적이지만 전투적인 투쟁에 아직 낯선 이들은 한국의 노동자들의 노숙투쟁 결의에 놀라고, 영풍위 그룹 산하의 시노팩 은행(Bank SinoPac)의 본점 점거를 예고했다가, 동문지점에서 기습 점거 시위를 벌이는 한국 노동자들의 성동격서에 감탄한다. 이렇게 사슬의 국경을 넘은 노동자들은 서로에게 새로운 배움의 지평을 열었다.

한 번의 실천이 천 갈래의 생각을 뛰어 넘는다며 하이디스 전 지부장 배재형씨가 스스로 세상을 떠난 지금, "죽을 수는 있어도 패배할 수는 없다"는 수미다 여성노동자들의 결의가 30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의 가슴을 새롭게 울린다.

떠나간 배재형씨를 우리의 노동자 동지 배재형이라 부르는 대만의 연대세력 덕택에 하이디스 노동자들의 국경 넘기 투쟁은 패배할 수 없고, 그리고 그들이 넘는 국경의 밤은 더 이상 저 혼자 시름없이 지지는 않을 것이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덧붙이는 글 글쓴이 김정수는 캐나다 빅토리아 대학 정치학 박사 후보자입니다. 이 글은 금속노조 기관지 금속노동자에도 중복게재하였습니다.
#하이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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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간 반부패운동에 몸담아 왔다. 또한 10년간 가족들과 함께 홈스쿨과 대안교육활동을 했다. 편역/편저로는 반부패지도 I, II, III이 있으며, 저서로는 "다리미를 든 대통령-부패 없는 사회를 위하여"(민들레)가 있다. 현재 캐나다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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