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7년(선조 30) 동북아국제전쟁 때 경남 사천 선진리성(船津里城)에 주둔하고 있던 왜군과 결전을 벌이다가 희생된 조명연합군(朝明聯合軍) 군사들의 넋이 잠든 ‘조명연합군총’
김종신
우는 아이를 달랠 때 "울면 안 돼, 에비"라고 한다. 말속에 나오는 '에비'가 실은 왜군이 코와 귀를 베어 간 '이비(耳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눈 뜨고 있어도 코 베어 간다'라는 말 속에 숨겨진 전쟁 속에 희생당한 넋 앞에 그저 숙연해질 뿐이다. 잠시 고개 숙여 넋을 위로하고 조명군총 앞에 있는 기념관인 덕승관(德勝館)으로 들어갔다. 덕승관의 덕승은 '得勝(득승)'과 중국어 발음이 같은 '더성(德勝)'이라는 명칭을 붙여 승리를 기원하는 바람을 담았다고 한다. 기념관에서 동북아전쟁 연대기와 거북선의 첫 출전인 사천해전을 비롯해 이총에 관한 이야기도 살필 수 있었다.
국화과의 루드베키아(원추천인국)이 덕승관 옆으로 노랗게 피었다. 덕승관을 나와 조명연합군총으로 갔다. 일충문(一忠門)을 들어서자 왼편으로 '새삼 덧없어라. 시간(時間)이란 무시종(無始終)의 바람결이며 그 수레바퀴에 실려 가 누누(累累)한 청사(靑史)의 책장 밖에서 민들레꽃 솜털인 듯 떠돌이 구름다운 무주원혼(無主怨魂)들이 구천어디메 오갈곳 없음인들 무릇 얼마리오. 저기 당병소(唐兵沼)와 사남(泗南) 화전(花田)의 병둔(兵屯)자리 및 왯골, 왯등 따위로 이름이 남았고 이 일대 선진신성(船津新城)터는 一五九七年 정유(丁酉) 재침(再侵)후 十二月 卄二日에 준공(竣工)시킨 왜장(倭將) 도진의홍(島津義弘)이 十여 달이나 차지했던 자취로서 어언 근 400년(近 四百年)의 춘풍추우(春風秋雨)동안 이곳 선진리(船津里)의 속칭 · 댕강무데기 · 아래 무언의 흙이 된 왜군 명병과 호국전몰(護國戰歿)의 사연들을 되살려 보련다~'로 시작하는 <조명연합군전몰위령비(朝明聯合軍戰歿慰靈碑)>가 세워져 있다.
사당 뒤로 경상남도 기념물 제80호인 사방 36㎡의 사각형의 조명연합군총이 나온다. 흔히 '댕강 무데기','당병무덤'으로 불렸던 이곳은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선진리성(船津里城)에 주둔하고 있던 왜군과 결전을 벌이다가 희생된 조명연합군(朝明聯合軍) 군사들의 넋이 잠든 곳이다. 현재는 음력 10월 1일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재침한 왜군은 소사전투와 명량에서 대패함으로써 울산에서 순천에 이르는 동서 800여 리에 성을 구축하고 농성했다. 명나라 중로제독(中路提督) 동일원(董一元)과 경상도우병사(慶尙道右兵使) 정기룡(鄭起龍)이 이끄는 약 3만의 조·명연합군은 1598년 9월 19일 진주에서부터 차례로 왜군을 물리치고 사천읍성까지 탈환했다.
10월 30일(음력 10월 1일) 연합군은 선진리 왜성을 포위하고 왜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연합군은 뜻하지 않는 화약고 폭발로 전열이 흐트러졌다. 왜군의 기습을 받아 수많은 전사자를 패배했다. '선조실록'에 따르면 7000~8000명의 연합군이 전사했다고 한다. 왜군 장수 시마즈(島津義弘)이 본국으로 돌아가 작성한 '도진가기'라는 책에는 3만2000명의 연합군 수급을 베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