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댓글들 말이다.
네이버 댓글 캡쳐
가령, 웹툰 댓글에서 "이 만화 병맛인데 자꾸 보게 되네"와 같이 대뜸 자기통제불능을 고백하는 걸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아도르노는 이거야말로 문화산업의 추세가 욕구를 야만의 상태로 몰고 있기 때문이라고 일갈할 것이다. 본래대로 라면, 예술은 대중들이 다양한 욕구를 진지하고 장기적인 노력 속에서 승화시키도록 도와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웹툰 이용 실태가, 아도르노적 시선에서 고통을 순간적으로 잊게 해줄 뿐인 마약성 진통제 효과의 징후로 읽힐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에게 진정한 예술이란 모름지기 사회 부조리를 향한 '비판적 내용'을 포함해야 한다. 그래야 대중의 욕구를 '진정으로' 실현시키는 데 일조한다. 그가 볼 때, 현대 사회의 대중문화는 본질적으로 일시적 '유흥'이라는 점에서 천편일률적이다. 그러나 그때그때 옷만 다르게 입고, 뭔가 차별화 되는 척 대중을 현혹하고 있을 뿐이다.
유흥이 가볍게 즐김으로써 진지성이 결여된 산만한 오락이라면, 예술은 비판적 의도를 가지되 작품 깊숙이 감춘다. 그래서 진중하게 집중하듯 관조에 참여시킴으로써 대중의 자발적 사유를 가능케 한다. 그럴 때 예술의 자율성도 지켜진다. 비판이 노골적이라면, 문화산업의 권력과 경망스런 동조자들이 금세 알아차리고 '산업화' 시켜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코믹 장르가 무슨 불구대천의 원수라고, 그냥 웃고 좀 즐기자는 건데 '개그를 다큐로 받느냐'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아도르노의 강경함에 대한 불편함은, 그의 시대적 배경을 고려할 때 퍼즐이 풀린다. 그는 모든 걸 효율성 논리로 '관리'하고 심지어 욕구까지 '조작'하던, 나치즘과 미국 독점자본 시대에 살았던 것이다.
물론, 오늘날 한국사회가 그 정도까진 아니겠다. 그러나 직장에선 효율성을 닦달하고, TV에선 대통령이 '자기정치' 하는 원내대표를 대놓고 꾸짖는 시대인 것도 사실이다. 아도르노가 보내는 메시지, 즉 '인생은 실전이야'라는 경고가 새삼 무게감 있게 다가오는 이유다.
아닌 게 아니라, 오늘날은 '가벼움'이 과포화된 시대다. 그래서 적어도 예술만은 좀 더 많이 '무거움'으로 남아주기를 기대할 수 있다. 문화산업의 효율성 계산과 가벼운 쾌락적 감수성으론 도무지 파악할 수 없는, 질적 깊이와 진중한 한국적 감수성을 지닌 예술이 "보아라! 내가 문화산업이 닦달하는 '쓸모' 없이도 떡하니 존재하지 않느냐"며 버틴다는 사실. 이 자체만으로도 부조리한 현실에 비판이 되고, 그제야 예술이 '쓸모 있는 것'이 된다는 희망 말이다.
"정치의 웹툰화" vs. "웹툰의 정치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