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우 시인출판기념회에서 소감을 말하고 있다.
문세경
약대를 나와 대학원에 다닐 때 서울적십자병원에서 1년 반쯤 근무하고 신약 개발하겠다고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 들어간 이성우씨는 정작 연구원 노릇은 제대로 하지 못했다. 오로지 돈 되는 연구만 하라는 정부 정책에 발끈하여 노조활동을 시작했다. <삶이 시가 되게 하라>라는 표제작으로 출간된 그의 첫 번째 시집에는 평등하고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어 보려다 먼저 저세상으로 간 열사들을 추모하는 시가 여러 편 있다.
고교 시절, 혼자 자취를 하며 한여름엔 석유곤로, 겨울에는 연탄아궁이에서 밥을 지으며 그 옆에서 쪼그려 앉아 책을 읽었다고 한다. 수학을 좋아했지만 부뚜막에서는 문제 풀이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책을 읽으며 거기서 '시'를 만났다고 한다. 시집 맨 마지막에 쓴 <시와 나>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성적에 대한 남들의 관심 말고는 변화 없는 자취생의 일상으로 시가 야금야금 파고들었다, 시는 사랑이었고 시는 죽음이었고 시는 구원이었다"라고.
저자는 4.19와 5.18을 겪으면서 비로소 교과서 밖의 시들을 만났다고 한다. <아직도 니네 나라에서는>이라는 시에서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아직도 니네 나라에서는아직도 니네 나라검찰은사람을 때려죽인다지.아직도 니네 나라경찰은 모든 국민을 적군으로 여긴다지.천하무적 상권불패!아직도 니네 나라국회라는 것이조폭보다도 더 나와바리에 미쳐 날뛴다지.눈에는 눈 이에는 이.아직도 니네 나라백성들은 그런 놈들한테 날마다 두들겨 맞으면서도숨이 붙어 있기는 하다지.그래, 이놈아.서른 창창한 나이에 근골격계 시름으로 자살하고환갑 넘은 노점상 형님이 단속에 노하여 분신하고농민 할배들이 이틀이 멀다하고 농약을 마시고전쟁도 일어나지 않았는데일 년에 3,000명 노동자가 산재로 죽어가는 나라에서절통하고 분통하여우리가 어째 쉬 죽을 수 있겠느냐.감옥에 끌려간들 대수랴.방패에 찍히는 것이 아프랴.수십 바늘 꿰맨다고 흔적이나 남으랴.더 밀릴 곳도 없는 벼랑 끝에서우리가인간으로 살아남기 위해서간다면 어디로 가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