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법안도 박근혜 뜻과 다른데... 본회의에 올라올까

[이슈인터뷰] 사형제 폐지법안 발의한 유인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등록 2015.07.09 15:18수정 2015.07.10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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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유인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자신의 집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17대 국회 때 자동폐지 됐는데도 불구하고 이번에 또 '사형제 폐지를 위한 특별법'을 발의한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날 유 의원은 "아직 우리사회에서 존치 여론이 더 강한 걸 인정하지만, 사형제 폐지는 세계적 시대 흐름이기 때문에 우리도 따를 때가 됐다"고 말했다.

유인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자신의 집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17대 국회 때 자동폐지 됐는데도 불구하고 이번에 또 '사형제 폐지를 위한 특별법'을 발의한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날 유 의원은 "아직 우리사회에서 존치 여론이 더 강한 걸 인정하지만, 사형제 폐지는 세계적 시대 흐름이기 때문에 우리도 따를 때가 됐다"고 말했다. ⓒ 유성호


두 번째 도전이다.

그는 "안 됐으니 또 하는 것"이라며 "누군가는 될 때까지 계속 나서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의 이름은 유인태(67세).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국회의원으로, '사형 폐지를 위한 특별법' 발의를 주도했다. 3선의 유 의원은 17대 국회의원이던 2004년에도 사형 폐지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해 자동 폐기됐다.  

유 의원은 한때 사형수였다.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4년 7월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지난 2012년 2월 재심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38년 만이었다.

8일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당시 심경을 이렇게 회상했다.

"어처구니가 없었죠. 대학생들이 모여서 유신헌법이랑 군사독재에 반대하는 데모를 한 거잖아요. 그걸 가지고 '공산 정권을 세우려고 내란을 음모했다'면서 사형시킨다고 하니…."

그러면서 "실제로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선배의 마지막 뒷모습을 보기도 했는데, 그걸 어떻게 잊을 수 있겠나"라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가 말한 선배는 소위 '민청학련 사건'과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연결고리로 지목돼 31세에 사형당한 여정남이다. 그는 2007년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다시 입을 연 유 의원은 "법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그때부터 확고히 갖게 됐다"라고 사형제 반대 이유를 설명했다. 학창 시절의 경험이 법안 발의로 이어진 것이다.

EU·미국 등도 사형 폐지 추세... "시대 흐름 따를 때 됐다"



지난 6일 사형제 폐지 법안이 발의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온라인 게시판 등에서는 반대 여론이 이어졌다. 유 의원도 이미 알고 있었다. 간혹 의원실로 항의 전화도 온다고 했다. 그는 "아직 우리 사회에서 존치 여론이 더 강한 걸 인정한다"라면서도 "사형제 폐지는 세계적 시대 흐름이기 때문에 우리도 따를 때가 됐다"라고 강조했다.

유 의원은 국외 사례와 통계 등을 예로 들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세계 198개국 중 140개 국가가 법률적·실질적 사형폐지국이다. 미국도 네브래스카 주를 포함해 총 19개 주가 사형제를 없앴다.

우리나라도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7년 12월 30일을 마지막으로 18년 가까이 단 한 건의 사형도 집행하지 않았다. 실질적으로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 것에 이어, 제도적으로 사형을 폐지해야 한다는 게 유 의원의 생각이다.

"사형제를 폐지한 외국을 보면 처음에는 다들 반대 여론이 높았습니다. 프랑스도 존치 여론이 더 높았는데, 의회와 정치인들이 결단해 폐지한 거예요. 이후에 부활하자는 목소리가 나오나요? 전혀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의회에서 추진하면 된다고 봐요. 유럽 국가들도 우리나라가 적극 나서주길 기대하는 분위기입니다. 한·중·일 중에서 그나마 우리가 폐지에 가장 근접해있으니까요."

일각에서는 흉악범죄를 둘러싼 사회적 반감과 피해자 가족의 감정을 고려해 형식적으로라도 사형을 존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 의원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사형이 범죄 공포와 피해자 가족의 상처를 치유해줄 수는 없다"라고 봤다.

그는 "피해자 가족의 정신적·물질적 상처는 국가와 사회 공동체가 관심을 가지고 계속 관리해야 할 문제"라며 "국가가 범인 죽이는 걸로 '할 일 다 했다'고 끝내는 건 아니지 않는가"라고 말했다.

유 의원이 내놓은 대안은 가석방 등이 없는 절대적 종신형이다. 살아서 나오지 못하게 한다는 의미다.

"이것 역시 인권 침해 소지가 있지만, 법이 강제로 목숨을 끊지 않도록 만드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미 사형이 흉악범죄 억제에 효과가 없다는 UN 조사 결과가 나왔고, 미국도 사형을 폐지한 주가 살인율이 더 낮다는 통계가 있어요. 이제 우리도 사형제 폐지를 위한 수순에 돌입해야 합니다."

의원 172명 참여... 과반 이상 서명 얻어

a  '사형 폐지를 위한 특별법'을 대표 발의한 유인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우리나라에서 18년 가까이 단 한 건의 사형도 집행하지 않았다"며 "사형제 폐지하고 대안으로 가석방 등이 없는 절대적 종신형으로 바꾸자"고 말했다.

'사형 폐지를 위한 특별법'을 대표 발의한 유인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우리나라에서 18년 가까이 단 한 건의 사형도 집행하지 않았다"며 "사형제 폐지하고 대안으로 가석방 등이 없는 절대적 종신형으로 바꾸자"고 말했다. ⓒ 유성호


유 의원의 다음 과제는 17대 국회 때의 쓰라린 경험을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인터뷰 도중 기자에게 A4 용지 하나를 건넸다. 지난해 말 여야 의원들에게 보낸 서한이었다. "선배·동료 의원님의 사형 폐지 동참을 촉구한다"라는 내용이 담긴 서한 말미에는 유 의원을 비롯해 박지원(새정치연합)·심상정(정의당)·정갑윤(새누리당)·정두언(새누리당) 의원의 이름이 적혔다. "원래 정의화 의원이 동참했는데, 국회의장이 되면서 정갑윤 의원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서한을 발송한 그는 본격적으로 의원들에게 법안 서명을 받으러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서명해줄 의원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유 의원은 "의원들이 좀 부담스러워 하는 눈치였다"라며 "17대 때 서명해준 한 의원은 '지역구에서 욕먹었다'라며 이번엔 동참해주지 않았다"라고 전했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올해 초부터 본회의나 대정부질문 등이 열릴 때마다 법안 서류를 들고 의원들을 일일이 찾아다녔고, 평소 친분이 있는 길정우 새누리당 의원과 강창일·인재근 새정치연합 의원 등의 도움을 받아 서명을 늘려갔다. 사형 폐지에 공감하는 천주교·불교 신자 의원들을 집중 공략하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총 172명 의원이 법안에 서명하게 됐다. 새누리당에서 42명, 새정치연합에서 124명이 각각 참여했고, 정의당 의원 5명도 동참했다. 유 의원은 "법안을 발의하고 나서 이인제 새누리당 의원이 찾아와 '나도 사형 폐지에 찬성하는데 왜 물어보지 않았냐'고 묻더라"라며 "선입견을 버리고 의원들에게 더 열심히 말을 붙여볼 걸 그랬다"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여당 의원 42명 서명했지만... 대통령 뜻 거스를 수 있을까

국회의원 과반 이상의 서명을 받긴 했지만, 법안 통과는 미지수다. 17대 국회 때도 의원 174명이 서명했지만 본회의에 회부조차 못 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에 사형제를 존치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력히 피력한 적 있다. 과연 새누리당 의원들이 박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고 사형제 폐지 법안에 찬성표를 던질 수 있을까 싶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저도 그 점이 우려됐죠. 사실 법안을 2014년 초에 발의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박 대통령 취임 1년도 안 된 시기니까, 대통령 뜻과 다른 법안에 여당 의원들이 쉽게 참여할 수 없을 거라고 봤습니다. 지금은 시간이 조금 지났으니 괜찮지 않을까요? 그러니 40명 넘는 여당 의원이 서명해줬겠죠."

그는 "사형제 폐지 법안에 찬성할지 여부는 의원 개인의 소신과 철학으로 결정할 문제"라며 "당과 상관없이 개별 국회의원들의 의견을 물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법안이 법사위를 무사히 통과해 본회의에 상정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라고 덧붙였다.

유 의원을 인터뷰한 이날, 새누리당은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를 권고했다. 국회법 개정안으로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불협화음을 일으켰으니 책임을 지고 물러나라는 뜻이다. 결국 유 원내대표는 사퇴했다. 그는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평소 같았으면 진작 던졌을 원내대표 자리를 끝내 던지지 않았던 것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초 유 원내대표와 함께 국회법 개정안에 찬성했던 새누리당 의원 95명은 지난 6일 재의를 위한 본회의에서 일사불란하게 표결을 거부했다. 의원 개인의 소신은 없었다.

과연 새누리당 의원들이 대통령 뜻과 다른 사형제 폐지 법안에 표를 던지는 날이 찾아올 수 있을까?

○ 편집ㅣ손병관 기자

#유인태 #사형제 #인혁당 #박근혜 #새누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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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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