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 이웃 할배
최종규
우리 식구가 전남 고흥 시골로 들어와서 처음 살 무렵, 마을 할매랑 할배가 으레 '종자'라고 해서, '종자'가 뭔 말인가 하고 한참 갸웃거린 적이 있습니다. '종재'라고도 하고 '종자'라고도 해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벼 종재'나 '벼 종자'라 할 적에 '種子'라는 한자말인 줄 알아차렸습니다. 그러니까, 한국말로는 '씨앗'입니다.
'볍씨'라 하거나 '씨나락'이라 해야 쉽게 알아들을 텐데, 시골 할매랑 할배는 농협이나 면소재지나 군청에서 쓰는 한자말로 논일이나 밭일을 이야기합니다. 더구나, 시골 어르신들은 농협 일꾼이나 공무원처럼 서울말(표준말)대로 말하지 않고 높낮이를 섞어서 말꼴을 달리 쓰시기에, 한참 듣고 또 들어야 비로소 알아듣는 말이 제법 많습니다.
"내가 항상 아재한테 심바람만 시켜싼께 미안흐다만. 진작부터 멋을 잔 줬으문 좋것다 그랬는디 촌에서 줄 것이 머시 있어야제. 그란디 오늘 이것이라도 있응께 내가 한 주먹 싸주께 갖고 가서 자셔 잉!" (102쪽)
"시방 우리 집 편지통에 애기들이 있당께. 그란께 안 되야!" "애기들이 있다니요? 그건 또 무슨 말씀이세요?" "와따아! 말귀도 징허게 못 알아묵네! 새가 새끼를 까놓고 있는디 거그다 그것을 너문 쓰것어? … 딴 집에 더 크고 널룹고 이삔 편지통도 많은디 해필 우리 집 째깐한 통에다 새끼를 까놨당께. 안 쫍은가 몰것네!" (153쪽)<밥은 묵고 가야제!>를 천천히 여러 차례 곱씹으면서 읽습니다. 이 책에 실린 보성 시골말을 보성 시골 할매랑 할배가 어떤 높낮이하고 결로 말씀하는가 하고 헤아리면서 여러 차례 되읽습니다. 귀로만 듣는다면 짐짓 못 알아듣겠네 싶던 말마디여도, 여러 차례 되읽고 내 입으로도 읊어 보니 뜻이나 느낌이 살아납니다.
"예쁜 우체통"이 아닌 "이삔 편지통"이라 말하니 한결 재미있습니다. 류상진님은 "우체국 배달 직원"이지만 시골 어르신들은 하나같이 "편지 아재"라고 부릅니다. "편지 아재"라는 이름도 대단히 살갑습니다. "조그마한 통"이라 않고 "째깐한 통"이라 하니, 말느낌이 사랑스레 살아나는구나 싶습니다. "안 좁은가 모르겠네"가 아닌 "안 쫍은가 몰것네"라 하니, 말빛이 새롭구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