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집밥 백선생>에 출연 중인 요리연구가 백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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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며칠 후였다. 아들이 한 사람의 냉장고를 공개, 두 명의 셰프가 냉장고 속 재료들을 이용해 음식을 만들어 경합을 벌이는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를 보여줬는데, 공교롭게 소유진씨네 냉장고가 공개됐다. 그리고 이틀쯤 지난 후, 딸이 밥상머리에서 "재미있는 프로그램 보여준다"며 보여준 것이 백주부가 나오는 <마이 리틀 텔레비전>란 프로그램이었다.
백종원씨 등 몇 명이 각각 자신만의 방송을 진행, 시청률이나 시청자들 반응에 따라 순위를 매기는 그런 방송이었다. 백주부를 이미 잘 알고 있는 남편과 딸은 방송을 보는 내내 백주부에 대한 감탄과 칭찬을 하고 또 했다. "<집밥 백선생>이란 방송에도 나오는데 재미있다"며. 심지어는 "다른 사람들은 보여주지 말고 백주부만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했다.
'대체 저 사람 요리가 어떻길래, 저렇게 좋아 죽겠다는 거야?' 궁금했다.
내가 처음 본 백종원씨 모습과 그의 요리는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통해서였다. 그날 백종원씨가 선보인 것은 화이트소스(크림소스)를 만드는 방법 그리고 그 소스를 이용한 스파게티와 브로콜리 스프였다. 사실 밀가루와 우유 버터로 만든다는 화이트소스는 30년도 훨씬 지난 중학교 가사 시간에 배웠었다. 그러나 24년 차 주부로 사는 동안 한 번도 해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몇 년 전까지 파스타를 거의 먹지 않았기에, 파스타 소스 정도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참 쉽고 흔한 재료들로 만드는 것인데도, 익숙하지 않은 음식이라 번거롭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날 백주부는 "지금 만들고 있는 양은 두고두고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이렇게 만들어 두면 많은 음식에 응용할 수 있다"와 같은 말로 내 호기심을 자극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며칠 후, 우연히 며칠 전에 딸이 말했던 <집밥 백선생>을 보게 됐다. 그날의 주요리는 카레. 김구라 등 4명의 제자가 이미 카레를 만든 후 시식을 하고, 백선생이 자신만의 카레를 만들어 보이는 부분부터 보게 됐다. 백선생이 자신만의 카레 방법을 알려주는데, 얼마 전부터 "카레 해 먹자, 해 먹자"하면서 이래저래 미뤄오던 터라 더욱 솔깃하게 와 닿았다.
백선생은 대부분의 사람이 카레나 짜장을 만들 때처럼 감자를 깍둑썰기로 하지 않고, 채 썰어 썼다. 게다가 고기도 아마도 불고기용 정도로 얇게 잘라놓은 고기를 대충 잘라 썼다. 백선생이 강조한 것은 양파를 다른 채소들과 볶아 익힌 후 카레 가루를 넣어 끓이는 것이 아닌, 채 썬 양파를 갈색이 돌 때까지 미리 볶아 양파 특유의 풍미와 감칠맛을 이용하는 것.
"특별한 재료들을 꼭 넣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냥 냉장고에 있는 것들을 가지고도 이렇게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거라고 생각을…." 솔직히 작은 충격을 받았다. 아니 신선했다. 그래서 백선생이 요리를 하면서 그리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하는 이와 같은 평범한 말도 특별하게 들렸다. 심지어는 카레를 해먹자 고기를 사왔다가 다른 음식에 넣기도 하면서 카레 만들어 먹는 것을 3월부터 미뤄오고 있던 내 사정을 알고 하는 말처럼 들리기까지 했다,
'그렇지. 고기 안 넣는다고 카레가 안 되는 것도 아닌데. 왜 저처럼 감자나 당근을 채 썰어 할 생각을 못 하고 그간 깍둑썰기만 고집했을까? 저렇게 하면 빨리 익으니 빨리 해먹을 수도 있을 것인데. 꼭 깍둑썰기 하라고 정해진 것도 아니잖아. 근데 의심 한번 없이 누군가 정해놓은 깍둑썰기만…. 카레에 스테이크 한 장? 대박! 손님 접대 요리로도 폼 나겠다.' 백선생의 카레는 20여 년간 고집해온 내 카레 만드는 방법을 돌아보게 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인 6월 25일 저녁, 백선생이 방송에서 알려준 대로 카레를 했다. 남편도 아이들도 "맛있다, 맛있다!"를 거듭하며 싹싹 긁어먹었다. 이후 '백주부의 고급진 레시피'란 네이버 밴드에도 가입했고, 나보다 열렬한 팬인 아이들이 틀어주는 백종원 출연 방송들마다 열심히 보고 있다.
주부인 나, 백주부로부터 받은 '충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