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성 장애1급 김정훈씨. 그림 그려서 개인전을 연다.
이상원
"이 아이는 자폐입니다. 이건 난치병도 아니고 불치병입니다. 이 아이는 평생 보호를 받아야 됩니다. 평생 말을 못 할 수도 있고, 평생 똥오줌을 못 가릴 수 있습니다. 평생 사회하고 섞이는 건 불가능합니다. 평생을 부모가 끼고 있어야 합니다."
21년 전, 원광대학교 소아정신과 의사는 정훈 엄마 송영숙씨에게 말했다. 그녀는 엄마의 직감으로 병원에 왔다. 진단 받자마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바로 연세대학교 병원으로 갔다. 의사는 "아이가 좀 늦될 뿐이에요"라고 했다. 그러나 아기는 혼자 놀았다. "정훈아!" 불러도 반응을 하지 않았다. 6개월 후, 그녀는 다시 연세대 병원으로 갔다. 의사는 말했다.
"자폐 맞습니다." 처음에 송영숙씨는 그저 멍했다. 아무 생각도 안 들었다. 며칠 지나고 나서야 '정훈(24개월)이랑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딸 지은(다섯 살)이가 있었다. 살아야 했다. 발달장애치료센터도 드물던 시절이었다. 송영숙씨는 자연치유한다고 애 둘을 데리고 산과 들로 쏘다녔다. 논에 빠진 아이들, 까맣게 탄 다리에 거머리가 붙기도 했다.
그때는 몸이 불편한 사람한테만 장애인이라는 말을 썼다. 발달장애를 가진 사람을 보면, '바보'라는 말을 툭툭 내던졌다. 유치원에서는 '따블'의 교육비를 요구했다. 비장애인 아이의 학부모들은 "왜 저런 애가 우리 아이하고 같이 있냐"고 성토했다. 쫓겨 다니는 게 일상이었다. 여러 곳의 보육시설을 전전할 수밖에 없었다. 정훈이가 아홉 살 될 때까지 그랬다.
"발달장애 아이를 둔 엄마들은 꿈을 꿔요. (웃음) '자고 일어나면 우리 애가 정상이 될 거야. 정상이 될 거야' 하면서. 꿈에서 깨고 싶지 않으니까 한없이 기다려요. 내년에는 상태가 훨씬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고서. 그래서 대개 학교를 1, 2년씩 늦게 보내죠. 또래 아이들보다 조금 늦게 학교에 들어가면 적응을 더 잘할 것 같으니까요." 한여름에도 한겨울에도 아이가 있는 학교 복도에...정훈이네 집은 군산시 나운 2동. 송영숙씨는 일부러 정훈이를 시 외곽에 있는 초등학교로 보냈다. 학부모이면서 학교 '소사'처럼 지냈다. 학교 청소하고, 아픈 애들 있으면 병원 데려가고, 토한 애들 있으면 씻겨주고. 한여름에도, 한겨울에도, 항상 복도에 서 있다가 정훈이가 아이들의 수업을 방해하면 교실에서 데리고 나왔다. 아이 손을 붙잡고 산책했다.
그때는 '교사가 아이들한테 헌신할 수도 있지만 한없이 편하게 지내는 곳이 특수학교'라는 말이 있었다. 장애 아이를 둔 부모들 중에는 체념한 사람이 많았다. 특수학교에는 희망이 아예 없다고. 그래서 송영숙씨는 정훈이를 어떻게든 일반학교 아이들과 섞이게 하고 싶었다. 특수학교에 보내는 것은 아이의 장애를 인정하고 교육을 포기하는 것과 같았다.
"시골 초등학교 3학년 때 학부모들 반발이 심했어요. 시내에 있는 중앙초등학교로 전학을 왔어요. 그때부터 봄날이었죠. 교장선생님, 선생님들, 학부모님들, 아이들 모두가 장애에 대한 인식이 대단했어요. 정훈이가 앉아있지를 못 하는데 반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달래고 붙잡고 있었어요. 자연스럽게 정훈이는 친구들이랑 소풍도 가고, 체육대회도 했어요." 열 살까지 말을 못 했던 정훈은 중앙초등학교에 다니면서 "엄!마!"라고 말했다. 아기들 말문이 터지는 것처럼 폭발적으로 말이 는 건 아니었다. 하나하나씩 말하던 단어가 문장이 된 건 언어치료센터에서 했던 숱한 연습 덕분. "과자 주세요"를 못 할 때는 무조건 울면서 뒹굴었다. 자기 요구를 똑바로 말하게 되면서, 정훈의 거칠던 행동은 조금씩 누그러졌다.
정훈의 반 친구 어머니들은 항상 "우리 애들이 정훈이를 통해서 배우는 게 너무 많아요"라고 말했다. 6학년 때 반 친구들은 "정훈이도 우리랑 같은 중학교로 보내주세요"라고 했다. 그러나 정훈이는 수업 시간에 돌아다녔다. 수업의 흐름을 깼다. 송영숙씨는 아들이 3년 동안 받은 엄청난 사랑을 되돌려줄 방법을 고민했다. 막다른 길밖에 없었다.
"중학교 가면 본격적으로 공부하는 때잖아요. 정훈이네 친구들도 당연히 그래야죠. 그 친구들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정훈이는 특수한 아이구나'를 인정해야 했어요. 자고 일어나면 정상이 될 거라는 꿈에서도 깼죠. 그래서 중학교를 지적장애 특수학교인 명화학교로 보냈어요. 정훈이는 중2 때부터 스트레스성 간질이 오고, 자해를 시작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