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와 쵸르, 두 강아지가 통했다

[유기견 입양기26] 12살 가을이와 2살 쵸르가 주고받은 편지

등록 2015.07.21 18:28수정 2015.07.21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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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중인 가을 이 세상은 가을에게 훌륭한 학교이자 놀이터입니다.
산책 중인 가을이 세상은 가을에게 훌륭한 학교이자 놀이터입니다.박혜림

쵸르도 입양된 강아지예요. 자기들끼리는 텔레파시로 통한다기에 한번 상상해봤어요.
-기자의 말


가을이의 편지

쵸르에게

쵸르야, 더운 여름 어떻게 보내고 있니? 우리 비록 만난 적은 없지만, 엄마로부터 네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 난 네가 꼭 오래 알고 지낸 친구 같아.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좋은 집에 입양을 갔다는 것, 깨무는 버릇 때문에 벌을 받았다는 것, 석류 엑기스를 먹고 피부병이 나았다는 것 등. 우리 엄마는 너에 대해 참 많은 이야기를 해줬어. 그래서 심심하던 차에 문득 네게 편지 쓸 생각이 났지.

최근에 너희 가족은 여행을 다녀왔다면서? 넌 호텔 같은 곳에 머물렀니? 지낼 만했어? 나도 그런 곳에 가게 될까? 우리 엄마도 여행 비슷한 것을 가는 것 같아. 하지만 집안에서 볼일(화장실)을 보지 않는 내가 걱정돼서인지 꼭 돌봐주는 다른 사람을 집으로 보내. 처음엔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이 엄마가 아니어서 엄청나게 놀랐지만, 산책은 해야겠기에 따라나섰어. 그들은 엄마 부탁으로 왔다면서 밥을 차려주고 좋은 말도 해주고 그러더라. 하지만 이건 어쩌다 한 번이야. 주로 엄마는 "돈 벌러 간다"하고 나갔다가 몇 시간 만에 헐레벌떡 들어와. 중간에 잠깐이라도 바람을 쐐야 내 건강에 좋다며, 일하다 말고 짬을 내서 오는 거래.

물론 엄마가 오랜 시간 날 혼자 두는 경우도 있지. 넌 집을 볼 때 뭘 하니? 듣자하니 텔레비전을 좋아한다면서? 난 기계엔 영 흥미가 없어. 카메라만 들이대도 도망쳐버려. 차라리 땅을 파고 노는 게 좋아. 맞아, 우리 집에 흙바닥은 없지만 부드러운 매트는 있거든. 엄만 내 관절 때문에 깔아놓은 거라는데, 나에겐 훌륭한 장난감이란다. 발톱으로 있는 힘껏 긁으면 만질만질한 가루들이 아름답게 흩어져. 음, 이게 '분리불안'은 아니라고 생각해. 엄마가 장판을 양탄자로 덮어버리면, '긁기'를 포기하고 그냥 자버리고 말거든.


내가 또 좋아하는 놀이가 있어. '전쟁놀이'인데, 제목처럼 무섭진 않아. 공격보다 방어에 힘쓰거든. 사진을 첨부할 테니 봐봐. 나의 식량을 비축해둔 모습이야. 가까이에 있는 이불 따위로 밥을 덮으면 되는데, 마땅한 게 없을 땐 이불 말고도 무엇이든 이용할 수 있어. 엄마의 속옷이나, 방석, 수건, 때론 나의 밥으로 밥을 가리기도 해. 난 누구 말마따나 제3차 세계대전을 대비하고 있는 건지도 몰라. 미리미리 챙기는 습관이 나쁜 건 아니잖아, 안 그래?

전쟁놀이의 흔적 생의 기로도 아닌데 살아남겠다고..
전쟁놀이의 흔적생의 기로도 아닌데 살아남겠다고..박혜림

쵸르야, 넌 언제가 가장 행복하니? 난 당연히 바깥 냄새를 맡을 때야. 입양 오기 전에 10년을 갇혀 산 내게, 이 세상은 훌륭한 학교이자 놀이터란다. 엄마는 천천히 걸으며 구경하고 있는 나에게 "그치? 어쩌고저쩌고"라며 이야기해. 무슨 말인지 몰라서 그저 혀를 날름거리고 마는데, 그래도 엄만 날 보고 웃어. 예전에, 가슴줄이 풀리는 바람에 꽤 먼 거리에서 나 혼자 집에 찾아왔다는 얘기 들었지? 평소에 구석구석을 눈여겨보고 냄새 맡아놓기를 잘했지 뭐야. 근데 가끔은 난감할 때도 있어. 난 고양이 앞에만 서면 왜 이렇게 작아질까? 엄마가 쭈그리고 앉아 고양이들에게 밥도 주고 말도 걸고 할 때, 난 숨어 있어. 예전에 만난 사나운 고양이가 떠올라서야. 나이를 먹으니까 한 번 학습된 건 영 잊히지 않아. 너도 내 말을 곧 이해하게 될 거야.


쵸르, 너도 별명이 있니? 난 꽤 많아. 엄마는 나를 '애기 강앙징', '백설공주 마마', '꾀순이' 하는 식으로 잘 불러. 언젠가는 병원에 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애기가 나이가 많아서…"라고 하더라. '애기'는 나처럼 현명하고 우아한 개를 일컫는 말인가?

참, 너희 집에 나타난 작은 인간은 어때? 널 귀찮게 굴거나 하진 않니? 길에 걸어 다니는 작은 인간들은 대개 시끄럽더라. 난 멀리서 그들이 보이면 다른 길로 가버려, 후후.
너도 콩을 좋아한다기에 조금 보낼게. 난 요새 두부가 제일 좋아.

그럼 또 편지할게, 안녕!

생후 2개월의 쵸르와 아가씨 쵸르 이제 어엿하게 자라 텔레비전을 시청한다.
생후 2개월의 쵸르와 아가씨 쵸르이제 어엿하게 자라 텔레비전을 시청한다.이율이

쵸르의 편지

가을이 언니에게

언니 안녕! 편지 보내줘서 고마워. 나도 엄마에게 언니 이야기 많이 들었어. 언니도 이젠 엄마를 좋아하겠지? 입양되고 얼마 동안은 낯가렸다며, 히히. 난 우리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엄마가 설거지할 때면 엄마 발 옆에 앉아있고, 엄마가 TV를 보면 엄마 무릎 위에 올라앉아 같이 봐. 동물 친구들이 나오는 채널은 너무 재미있어서 TV 앞으로 막 달려가기도 해. 언니는 기계에 관심이 없다니 유감이다. 난 스마트폰도 좋아해. 내가 발로 누르면 이것저것 작동되거든! 엄마가 나보고 똑똑하다고 칭찬해줬어. 신나서 더 마구 눌렀더니 이번엔 혼이 났어. 그래도 괜찮아. 엄마가 날 많이 사랑하는 걸 아니까.

언니, 우리 엄마도 나를 '애기'라고 잘 부르는데 '우아한 개'를 뜻하는 말은 아닌 거 같아. 10개월 전에 엄마가 '애기'라고 하는 작은 사람을 데리고 왔거든. 2주 동안 엄마가 안 보여서 무지 보고 싶었는데, 그 친구와 함께 돌아왔더라. 열심히 냄새를 맡아보니 그 애에겐 좋은 향기가 났어. 게다가 정말 작고 귀여워서 한참을 바라봤지. 그런데 이 친구가 자꾸만 커지더니 이젠 나보다 커! 그리고 장난도 치고 날 보고 웃어대기도 해. 어쩌다 내 꼬리를 세게 잡아당길 때도 있지만, 날 화나게 하려는 것 같지는 않아. 난 평화를 사랑하니까 이해할 수 있어.

근데 말이야, 처음엔 어떤 사람들이 나랑 작은 친구가 같이 살면 큰일 난다고, 나를 다른 곳에 보내라고 했대. '큰일'이라는 건 뭘까? 아무리 봐도 그 애와 나 사이에 '큰일'은 안 생기는 거 같거든. 혹시 내 응가를 말하는 건가? 엄마가 응가를 가끔 그렇게 부르던데…

아, 언니 그거 알아? 작은 친구는 내가 싫어하는 응가 기저귀를 항상 입고 있어. 난 기저귀가 답답하고 싫어서 입양 온 지 2주 만에 응가, 쉬야를 잘 가렸는데 말이야. 그래서 말인데 '애기'는 뭔가 어리고 철없다는 뜻이 아닐까?

요즘 엄마가 자꾸 나한테 미안하다고 해. 산책하러 못 가서 미안해. 못 놀아줘서 미안해. 오늘 목욕해야 하는데 미안해……. 엄마는 작은 친구 때문에 할 일이 많아졌대. 그래도 엄마를 미워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어.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이야. 엄마가 작은 사람을 품에 안고 자면 나는 엄마 등에 기대 잠들어. 오늘 밤에도 엄마에게 살포시 몸을 대고 잘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언니, 처음으로 편지를 썼더니 피곤해서 자야겠어. 보내준 콩 맛있게 먹을게. 이따가 스마트폰으로 두부 맛집을 찾아볼래. 물론 우리가 들어갈 순 없겠지만. 다음에 또 편지 쓸게!

한..한 입만.. 쵸르는 작은 인간의 얼굴에 묻은 밥이 탐난다.
한..한 입만..쵸르는 작은 인간의 얼굴에 묻은 밥이 탐난다.이율이

#유기견 #강아지입양 #가을이 #쵸르 #텔레파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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