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 동의 못한 박지만 "그건 추측이겠죠"

[정윤회 문건 10차 공판] 4차례 불출석 끝에 나타나... 수사 결과 불신 드러내

등록 2015.07.21 17:37수정 2015.07.21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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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 동생인 박지만 EG회장이 지난해 12월 15일 오후 서울중앙지검에서 '정윤회-십상시 국정농단 보고서' 작성 및 유출과정 관련 조사를 받기 위해 도착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동생인 박지만 EG회장이 지난해 12월 15일 오후 서울중앙지검에서 '정윤회-십상시 국정농단 보고서' 작성 및 유출과정 관련 조사를 받기 위해 도착하고 있다.이희훈

'출세에 눈먼 청와대 직원 2명이 대통령 동생을 이용했다'는 검찰의 '정윤회 문건' 수사 결과가 흔들리고 있다. 이 사건 핵심 인물, 박지만 EG그룹 회장 때문이다.

박 회장은 21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8부(부장판사 최창영) 심리로 열린 '정윤회 문건' 10차 공판에 증인으로 나왔다. 지금껏 그는 법원의 출석 요구에 네 차례 불응했으나 7월 14일 재판부가 강제 소환을 위한 구인장을 발부하자 마음을 바꿨다. 다만 박 회장은 법원에 취재진 등을 피할 수 있도록 증인지원절차를 신청했고, 공판 당일 오전 10시 6분 재판부 쪽 통로로 조용히 입장했다.

1시간 반 동안의 증인 신문 내내 그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하지만 차분한 답변 곳곳에는 검찰 수사 주요 내용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말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쟁점① 공소사실] 그가 받은 것은 '청와대 공식 문건'?

이 사건의 피고인,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과 박관천 경정(전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은 대통령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을 어기고, 공무상 비밀을 누설한 혐의로 지난 1월 5일 기소됐다. 당시 검찰은 두 사람이 정윤회 문건 등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공식 문건 17건의 원본을 비서 전아무개씨를 거쳐 박 회장에게 넘겼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21일 박지만 회장의 법정 진술은 검찰 수사 결과와 맞지 않았다. 그는 전아무개 비서에게 주로 구두보고를 받았으며 서류를 받더라도 A4용지에 내용을 정리한 형태였다고 말했다.

검찰은 "전씨가 공직기강비서관실 문건을 받는 것을 알고 있었냐, 조응천 전 비서관이나 박관천 경정이 전씨에게 문건을 전달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냐"고 거듭 물었지만, 박 회장의 대답은 달라지지 않았다.


"자꾸 문건 얘기를 하는데, 저한테 (내용을) 확인하려고 (조응천 쪽에서) 전씨에게 문건을 줬을 수도 있지만 저는 그게 정식문건인지, 메모문건인지 모른다. 정식문건이라면, 제가 어릴 때 청와대에 있으면서 슬쩍 본 것들과 지금은 다르다는 느낌이라도 받았을 텐데, 그런 것도 없었다."

검찰은 박 회장이 지난해 조사 때 '청와대 문건을 보고받은 적 없다'고 진술하다 전씨와 면담 후 '그건 맞다'고 진술을 바꾸지 않았냐고 되물었다. 그러나 박 회장은 "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전씨가 면담 때 '문서를 갖고 온 적이 있다'고 하니까 '그 말이 맞나 보다'라고 얘기한 것"이라며 "제가 서류 17건을 다 봤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쟁점② 범행동기] 조응천·박관천, 박지만을 발판 삼아? "난센스"

'정윤회-십상시' 결과 발표하는 검찰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유상범 3차장 검사가 지난 1월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정윤회-십상시 국정농단 청와대 보고서' 의혹 사건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정윤회-십상시' 결과 발표하는 검찰서울중앙지방검찰청 유상범 3차장 검사가 지난 1월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정윤회-십상시 국정농단 청와대 보고서' 의혹 사건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이희훈

검찰 주장대로라면, 조응천 전 비서관과 박관천 경정은 대담했다.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인 정윤회씨와 정호성·이재만·안호봉 비서관을 몰아내기 위해 대통령기록물을 빼돌리고, '정씨가 박 회장 미행을 지시했다'는 허위사실을 퍼뜨리기까지 한 인물들이다.

그런데 검찰은 두 사람의 동기를 명확히 밝혀내지 못했다. 이들이 범행 자체를 부인한다는 이유였다. 검찰은 다만 1월 5일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조응천·박관천이 문건을 유출한 일 등은 박지만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역할 또는 입지를 강화하려는 의도로 추단한다"고, 다시 말해 '짐작한다'고 밝혔을 뿐이다.

박지만 회장은 이 내용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조응천 전 비서관 변호인의 물음에 "그건 추측이겠죠, 전혀 그런 일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변호인이 다른 질문을 던지려고 하자 "좀 더 얘기해도 되겠냐"며 말을 이어갔다.

"조응천 전 비서관이 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저는 원래 정치권력 이런 것에 관심도 없고 굉장히 냉소적이다. 그것을 잘 아는 분이 저를 이용할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아주 난센스다. 말이 안 된다."

[쟁점③ 박지만 미행설] 각본·연출 모두 박관천 맡은 날조극?

박관천 경정은 청와대 문건 유출뿐 아니라 '박지만 미행설'에도 얽혀있다. 검찰은 지인 김아무개씨로부터 정윤회씨가 자신을 미행한다는 말을 전해 들은 박 회장이 박 경정에게 사실 여부를 문의했고, 2014년 1월 박 경정이 '정씨 사주를 받은 남양주 카페 운영자가 오토바이를 타고 미행한다'는 거짓 보고를 했다고 발표했다.

그해 3월, <시사저널>이 미행설을 보도하자 박 회장은 미행설의 진위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문의했다. '근거를 달라'는 김 실장의 요청에 박관천 경정을 찾은 박 회장은 그에게서 관련 내용을 정리한 보고서를 제출받는다. 하지만 박 경정은 이 서류를 청와대에 전달하려는 박 회장을 만류했다.

21일 박 회장은 "자료를 (대통령)비서실에 내는 것에 (박관천 경정이) 굉장히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며 "대통령한테는 내는 서류를 실장한테는 줄 수 없다는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행설은 박관천 작품'이라는 검찰 수사 결과를 납득할 수도 없다고 덧붙였다.

"나중에 (박 경정에게) 미행 관련 문건을 받아보니 상당히 구체적으로 내용이 있었다. (검찰을 한 번 쳐다보며) 그게 한 번에 그렇게... (헛웃음) '거짓으로 만든 문건'이라고 나왔는지는 이해를 못 하겠다."

박관천 경정 검찰 소환 일명 '정윤회-십상시 국정농단 보고서' 유출 및 명예훼손 사건 수사 관련 2014년 12월 4일 오전 박관천 경정(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이 피의자 신분으로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소환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박관천 경정 검찰 소환일명 '정윤회-십상시 국정농단 보고서' 유출 및 명예훼손 사건 수사 관련 2014년 12월 4일 오전 박관천 경정(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이 피의자 신분으로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소환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권우성

이날 박 회장은 재판부에 "제가 조사를 받고 이 사건에 대해 느낀 점 등을 썼다"며 두세 장짜리 서류를 제출하기도 했다. 서류를 건넨 자도, 받은 자도 '대통령기록물'이 아니라는, 별  다른 동기가 없었다는 이 사건을 법원은 어떻게 판단할까? 재판부는 8월 18일 결심 공판을 진행한 다음 9월 중순쯤 판결을 선고할 예정이다.

[관련 기사]

검찰 "조응천-박관천, 박지만 이용해 입지강화 노려"
그리고 대통령의 동생에게는 아무 일도 없었다
'박관천 유출 보고서는 자작극' 수사결과 뒤집히나
법원, '증인출석 거부' 박지만 EG회장 강제구인

○ 편집ㅣ최은경 기자

#박지만 #정윤회 #조응천 #박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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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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