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사이 체포 → 석방, 겁주기용?

지난해 세월호 집회 참가 건으로 체포... "경찰, 폰으로 체포영장 발부 알렸다"

등록 2015.07.23 12:03수정 2015.07.23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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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포된 최장훈(30) 동국대 일반대학원 총학생회장
체포된 최장훈(30) 동국대 일반대학원 총학생회장 허우진

[기사 수정 : 23일 낮 1시 19분]

지난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집회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한 대학원생이 경찰에 체포됐다. 하지만 경찰이 체포영장 원본이 아닌 휴대전화 앱(전자 영장)을 제시했고, 조사도 하지 않고 하룻밤 유치장 신세만 지게한 뒤 풀어줬다. 이에 겁주기 목적의 '체포 아닌 체포'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한밤중 걸려온 형사의 전화... "체포하러 왔으니 나오라"

지난 21일 오후 11시 23분께 집에서 휴식을 취하던 동국대 대학원 총학생회장 최장훈(30)씨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건 정체모를 남성은 "2014년 8월 14일(세월호 집회 당시) 일반도로교통방해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돼 체포하러 왔으니, 집 앞으로 나오라"라고 말했다.

전화를 받은 최씨는 집 앞에 나갔다. 집 앞에는 두 남성이 서 있었고, 신분 확인 결과 이들은 용산 경찰서 형사였다. 두 형사는 휴대전화 앱(전자 영장)을 통해 영장 발부 사실을 알렸다.

집안에서 놀라 뛰쳐나온 최씨의 이모 김아무개씨는 "오늘은 이만 돌아가시고, 내일 아침에 경찰서로 조사받으러 가면 안 되겠냐"라고 형사에게 물었으나 형사는 "그렇게 하면 직무유기"라고 대답했다. 이날 오후 11시 30분께 두 형사와 최씨는 서울 성동경찰서로 이동했다.

오후 11시 40분께 성동서 지능팀에 도착한 최씨는 당직형사에게 몇 가지를 물었다. 다음은 최씨가 복기한 당시 상황이다.


최씨 : "출석요구서를 받은 적이 없고, 담당 형사에게 연락받은 게 없는데 어떻게 된 것인지 알려 달라."
당직형사 : "내가 담당도 아닌데 어떻게 알겠는가. 모른다."

최씨 : "이 밤에 체포돼 왔으면 뭔가 납득이 돼야 할 게 아니냐. 지금이라도 전화해서 물어보면 되는 문제 아니냐."
당직형사 : "지금 시간이 너무 늦었다. 담당형사가 제주도에 출장 가 있다. 이해해 달라. 유치장에서 하룻밤 자고, 내일 아침에 다른 형사가 조사할 것이다."


22일 오전 12시 10분께 최씨는 성동서 유치장으로 이동했다. 들어가 누워있는 최씨에게 당직형사가 서면으로 된 체포영장을 보여줬다. 최씨는 체포영장이 지난해 10월 27일에 발부된 걸 확인했지만, 유효기간은 확인하지 못했다.

영장 내용에 대해 최씨는 "대표 혐의는 일반도로교통방해이고, 2013년 12월 민주노총 사무실 수색 저지, 2014년 2월 25일 민주노총 총파업, 2014년 6월 / 8월 세월호 집회 이상 총 네 건의 혐의를 조사받지 않아 2014년 10월 27일 자로 체포영장을 발부한다는 내용이었다"라고 전했다.

출장 간 형사 대신 다른 형사가 조사하게 될 것이라는 말과는 달리, 체포 다음날인 22일 오전 9시 10분께 최씨는 석방됐다. 성동서 당직 형사는 최씨에게 "담당 형사가 복귀하면 전화할 것이니 날짜를 정해서 조사를 받으라"고 말했다. 최씨는 "이렇게 할 거면 뭐하러 어젯밤에 그렇게 잡아갔느냐"라고 따졌다.

"세월호 집회 참가자에 대한 겁주기식 공안 탄압 아니냐"

집에 돌아온 최씨는 출석요구서가 왔는지 확인했다. 최씨는 민주노총 사무실 수색과 총파업집회 참여에 대해선 출석요구서가 두 차례 도착했지만, 세월호 집회와 관련해서 온 출석요구서는 없었다는 점을 확인했다. 최씨는 "경찰이 아주 조금만 노력을 했어도 제대로 출석요구서를 보낼 수 있었다"라면서 "휴대전화 번호도 알고 있었을 텐데, 전화조차도 오지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최씨의 전화번호와 실거주지도 알고 있었던 경찰이 세월호 집회와 관련해서는 출석요구서도 보내지 않고 조사 불응을 이유로 체포영장을 청구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또 체포의 시급성도 없는 사안에 체포영장도 지참하지 않고 체포에 나선 데에는 불법성도 제기된다.

최씨의 체포 상황에 대해'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박주민 변호사는 "최씨가 이미 두 건에 대해서는 경찰이 보낸 소환장을 받은 사실이 있으며, 경찰은 그것을 근거로 해서 영장을 청구한 것으로 보인다"라면서 "이 경우 세월호 집회 건으로 소환장을 보내지 않았더라도 영장청구는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라는 의견을 내놨다.

하지만 박 변호사는 "지난해 일어난 사건에 대한 조사여서 시급하게 체포할 필요성이 없는데도, 경찰은 무리하게 영장 원본도 보여주지 않고 체포를 진행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형사소송법 85조 1항 및 209조에 위반될 수 있다"라며 "22일 아침에 석방한 것은 '절차상의 적법성' 때문이라 추측한다"라고 밝혔다.

최씨는 "형사가 집 앞까지 찾아와 체포를 하는 것은 출석요구서나 형사와의 통화보다 두려움의 체감이 훨씬 컸다"라면서 "이는 세월호 집회 참가자들에 대한 겁주기식 탄압이 아닌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한편, 체포를 맡았던 용산서 두 형사와 성동서의 '당직형사'는 수차례 전화 연결에도 불구하고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에 최씨는 "석방 당시 언론과 SNS를 많이 신경을 쓰고 있는 듯 보였는데, 이 때문에 연락을 받지 않는 것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덧붙이는 글 허우진 기자는 오마이뉴스 22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최장훈 #성동서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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