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천만원으로 8년간 세계여행한 남자

"2~3개월 계획했다가 8년으로 늘어났다"... 1996~2004년 121개국 여행

등록 2015.07.23 15:55수정 2015.07.23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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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년간의 여행을 회상해준 히데오노리 수사 사부님. 즉흥적으로 떠났던 여행. 그것이 8년으로 이어졌다. 새파란 젊음을 길위에서 보낸 청년은 이제 지천명의 나이가 되었다. 그 8년의 시간이 천명(天命)을 더 분명하게 알 수 있게 해주었다.
8년간의 여행을 회상해준 히데오노리 수사 사부님. 즉흥적으로 떠났던 여행. 그것이 8년으로 이어졌다. 새파란 젊음을 길위에서 보낸 청년은 이제 지천명의 나이가 되었다. 그 8년의 시간이 천명(天命)을 더 분명하게 알 수 있게 해주었다. 이안수

 팔극권의 한일 연합수련을 위해 일본과 한국의 수련인들이 모티프원에 모였다.
팔극권의 한일 연합수련을 위해 일본과 한국의 수련인들이 모티프원에 모였다. 이안수

지난 토요일(7월 22일), 한국의 팔극권 수련인들과의 교류와 연합수련을 위해 일본의 팔극권 수련인들이 오셨습니다.

팔극권은 2008년 6월, 중국의 국가급비물질문화유산(國家級非物質文化遺産, 우리나라의 무형문화재에 해당)에 지정된 중국 무술로 중국 창주(滄洲)의 맹촌(孟村)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법통은 현재 오씨개문팔극권이며 이 가문의 7세 전인인 오련지(吳連枝 우롄즈) 노사께서 전승자로 지정되었습니다.


이 무술은 중국무술계에서 붕감돌격(崩撼突擊 태산을 무너뜨리는 일격)으로 두려워하는 공격형 실전 무술입니다. 권법뿐만 아니라 검술과 창술, 봉술을 함께 구사하는 무술로 현재는 한국과 일본뿐만 아니라 유럽과 미주 등 세계 각국에서 수련하고 있습니다.

모티프원에 오신 일본 팔극권 수련인 네 분 중에는 중국팔극권 가문 계보에 7세 전인으로 오른 히데오노리 수사(周佐英德 Hidenori Shusa) 사부님이 함께했습니다.

이영훈 관장님을 비롯한 한국개문팔극권수련인들과 함께 무술을 연마하는 짬짬이 히데오노리 사부님과 대면했습니다.

방문한 일행 중에서는 지도를 펴고 사부님을 눌러 앉힌 사람도 있었습니다. 영어와 중국어에 가장 능한 사부님이 8년간이나 한 번도 귀국하지 않고 지구를 두 바퀴 도는 여행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죠.

"중국 거쳐 동남아로 갔는데 돌아올 생각이 사라졌다"


 길 위에 시간들이 그를 바꾸었다. 값비싼 게 명품이던 것이 편리하고 값싼 것이 명품이라는 것을, 돈을 많이 주는 직장보다 더 많은 시간을 허락하는 직장이 좋다는 것을 아는 사람으로...
길 위에 시간들이 그를 바꾸었다. 값비싼 게 명품이던 것이 편리하고 값싼 것이 명품이라는 것을, 돈을 많이 주는 직장보다 더 많은 시간을 허락하는 직장이 좋다는 것을 아는 사람으로...이안수

▲ 여행 기간 - 1996년~2004년
▲ 여행 거리 - 지구 두 바퀴
▲ 여행 국가 - 121개국
▲ 여행 형태 - 독립배낭여행

- 여행하면서 3~4년간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여행자들은 종종 만났다. 하지만 8년간 여행만을 한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다.
"10년 전의 얘기다. 보다시피 지금은 다시 매인 몸이다."


- 여행을 떠날 때가 몇 살이었나?
"1996년이니 31살 때이다."

- 그렇게 장기간의 여행이라면 떠나기 전에 고민도 많이 하고 준비 기간도 있었을 것 같다?
"아니다. 즉흥적으로 떠났다. 당시 나는 직장 생활을 7년 정도 했을 때다. 같은 직종의 샐러리맨 생활에 싫증이 났고 이직을 하고 싶었다. 우선 직장부터 그만두었다. 그리고 새로운 직장을 찾는 중에 짬이 생긴 것이다. 다시 취직하면 시간을 내기 어려우니 직장을 구하기 전에 2~3개월 정도 여행부터 하자는 생각을 했다. 거의 즉흥적으로 떠난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 3개월이 8년이 되었다는 건가?
"그렇다. 먼저 중국을 거쳐 동남아로 들어갔는데 다시 직장으로 복귀할 생각이 사라져버렸다."

- 독립여행을 해보지 않은 사람으로서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누구나 길 위에서 여행자들과 어울리다 보면 가장 확실한 여행의 기술을 익히게 된다."

- 숙소는?
"백팩커들이 이용하는 저렴한 호스텔과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했다."

- 이동은 주로 어떤 방식을 택했나?
"지상 이동을 제일 원칙으로 삼았다. 항공을 이용한 것은 아프리카에서 북미로 이동하거나 남미에서 뉴질랜드로 이동하는 것 같은, 육로 이동이 불가능한 코스에서만 이용했다."

 이동은 육로를 택했다. 열차와 버스, 때로는 히치하이크로...
이동은 육로를 택했다. 열차와 버스, 때로는 히치하이크로...히데오노리 수사

- 8년간 비용은 얼마나 들었나?
"약 4천만 원 정도이다. 1년에 500만 원 정도이지만 평균이 그렇다는 것이고 유럽이나 북미 등 물가가 비싼 곳에서는 훨씬 더 많이 들었다. 그래서 물가가 높은 곳에서는 체류시간을 줄이고 저렴한 곳에서는 좀 더 느긋하게 여행을 했다."

- 언어에는 문제가 없었나?
"나는 애초에 법대에 입학했다. 그런데 너무 재미가 없더라. 결국, 3개월 만에 그만두었다. 팔극권 무술을 시작하고 중국어의 필요성을 느꼈고, 중국 천진으로 유학을 가서 중문학을 공부했다. 그러니 일본어, 중국어, 영어가 기본 도구가 되었다.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브라질을 제외하고는 중남미 전역이 스페인어권이다. 처음에는 '그라씨아스(Gracias, 감사합니다)' 밖에 몰랐지만, 시간이 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생존을 위한 언어는 입에 붙는다."

- 장기간 여행을 하다 보면 사건 사고를 당하기 마련이다. 8년 동안 별일은 없었나?
"도난이나 강도를 만나지는 않았다. 물론 항상 조심했다. 위험한 곳을 혼자 이동할 때는 뒤를 경계했고 수시로 유리창 반사 등을 통해 뒤의 상황을 체크했다. 하지만 여행 시작 1년 쯤 뒤 터키에서 불상사가 생겼다.

말라리아에 걸린 것이다. 병원에 입원했는데 수액 주사에 문제가 생겨서 사태가 심각해졌다. 지역병원에서는 내 여권 정보를 보고 일본대사관으로 연락했고 일본대사관에서 경비행기를 수배해서 프랑스의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나와 조종사, 의사와 간호사 네 사람이 한 비행기 탑승 인원의 전부였다. 후송된 다음 날 어머니께서 오사카에서 오셨다. 대사관에서 부모님께 알린 것이다. 어머니는 입원한 나를 보고 눈물바다가 되셨다."

"여행 다녀온 후 월급보다 내 시간이 중요해졌다"

 터키에서 말라리아로 입원했다가 프랑스로 응급 후송되었다.
터키에서 말라리아로 입원했다가 프랑스로 응급 후송되었다.히데오노리 수사

- 아버지는 오지 않으시고?
"아버지는 여권이 없었다. 여권을 발급하는 데 시간이 걸리므로 엄마 혼자 오신 것이다. 2주간 입원했었는데 상태가 호전되고 나서 아버지와의 통화에서 무척 화를 내셨다. 당장 엄마와 함께 돌아오라는 요구셨다. 하지만 엄마만 돌려보내고 저는 다시 여행을 계속했다."

- 유럽에서의 병원비가 만만치 않았을 텐데. 게다가 비행기로 후송까지 되었으니?
"보험회사에서 모두 부담했다. 여행자보험을 대사관에 알려주었고 대사관에서 그 업무를 맡아주었다. 3천만 원 정도 보험비가 지급되었다고 들었다."

- 길 위에서는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고 간혹 마음이 잘 맞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지 않나. 사랑에 빠진 적은 없나?
"몇 명은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는다. 특히 흑해에 접한 조지아에 사는 사람과는 형제처럼 지내고 있다. 중국에서 한국 여자와 만나 사귄 적이 있다. 사랑까지는..."

- 일본의 가족들에게는 어떻게 연락했나?
"1년에 한두 번 편지를 보내는 것이 전부였다. 지금처럼 인터넷 무료전화가 없었기 때문에 여행비용을 아끼기 위해 일체 전화는 드리지 않았다.

- 형제가 어떻게 되나?
"여동생이 한 명 있다."

- 대를 이을 아들이 장가도 가지 않고 지구의 어느 곳에 있는지 알지 못하는 부모로서는 참 답답한 노릇이었겠다. 귀국했을 때 아버지로부터 매를 맞지 않았나?
"하하하. 아버지가 펑펑 우셨다. 살아서 다시 만난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기셨다."

- 올해 나이가 쉰이라고 하지 않았나. 결혼할 생각은 없나?
"그렇다."

- 왜 결혼을 안 하나?
"귀찮다. 누군가와 잠깐은 함께 지내는 것이 좋다. 하지만 계속 함께 지내야 한다는 것은 큰 고역이다."

- 부모님께서 서운해하지 않나?
"여동생은 결혼했고 아이들도 있다. 여동생을 통해서 만족을 찾는 듯싶다."

- 지금은 어떤 일을 하나?
"보험회사 에이전트로 일하고 있다. 1인 회사이다. 그리고 오사카 일대의 4곳 도장에 나가 팔극권을 지도하고 있다."

 그는 사람을 만나고 국경을 넘을수록 점점 마음의 문이 허물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사람을 만나고 국경을 넘을수록 점점 마음의 문이 허물어지는 것을 느꼈다히데오노리 수사

- 지금도 가끔 여행을 하나?
"장시간 여행은 어렵다. 일 년에 서너 차례 휴가를 이용해 1~2주 정도 다녀올 뿐이다."

- 앞으로 혹시 장기 여행계획이 있나?
"200개가 넘는 나라 중에서 내가 여행한 곳은 121개국이다. 나머지 국가들을 여행하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기약이 없다. 직업을 그만두기 전에는 어렵고 팔극권을 지도해야 하는 책무도 있다."

- 31살에 여행을 시작하여 39살에 일본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사회에 적응해서 11년을 살았다. 여행 전과 여행 후, 자신에게 어떤 변화가 있나?
"여행 전에 나는 명품에 많은 관심이 있었다. 옷과 가방 등 내가 받는 월급의 상당한 돈을 이 명품을 사는 데 소비했다. 하지만 여행은 그런 나의 취향을 바꾸어놓았다. 이제는 싸고 편리한 것이 내게 명품이다. 돈에 관해서는 가능하면 적게 벌고 적게 쓰는 것으로 바뀌었다. 예전에는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돈을 받는 직장을 원했다. 이제는 월급보다 내 시간이 중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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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데오노리 수사

덧붙이는 글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히데오노리 수사 #팔극권 #세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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