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인생에서 1~2년 감옥, 별거 있나요?"

[현장] 거리에서 법정으로 ‘청년좌파’ 법률강의

등록 2015.07.24 20:18수정 2015.07.24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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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 : "오늘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으세요?" 
수강생 A : "벌금 깎는 법이요."
수강생 B : "무죄 선고받는 법이요."
수강생 C : "사복 경찰의 채증을 막으려면 어떻게 하면 되죠?"

법률가가 되려는 이들의 수업이 아니다. 당장 재판을 앞둔 청년들이다. 수강생들은 자신이 기소된 혐의를 나열하기 시작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일반교통방해, 공무집행방해, 모욕죄 등.

지난 15일 서강대학교에서 열린 '청년좌파' 법률강의 모습이다. '박근혜 정부 파산 선고', '제헌절 대한민국 헌정 종식 선언', '박정희 기념관 기습시위' 등을 벌인 단체 '청년좌파'에는 재판 중인 회원이 50여 명이다. 선고받은 벌금을 합하면 4천만 원을 웃돈다.(관련 기사: "박 대통령, 한국이 입헌군주제라고 착각")

이날 열린 강의 참석 대상은 '6~7월에 재판을 선고받은 회원'이었고, 여덟 명이 참석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아래 민변)' 소속의 서경원 변호사(28)가 강연자로 나섰다.

 지난 15일 서강대학교에서 열린 '청년좌파' 법률강의 모습.
지난 15일 서강대학교에서 열린 '청년좌파' 법률강의 모습.청년좌파

"법을 어겼는지 몰라도 범죄자라고 생각 안 해요"



강의에 참석한 김재섭(25)씨는 이미 재판을 여섯 차례나 겪었다. 그는 최근에 '박정희 기념관 기습시위'로 인해 1심에서 200만 원 벌금형을 선고받아 항소했다. 김씨에게는 세 개의 재판이 더 남았다. 그는 재판으로 법을 익혔다.

"처음 연행당하고 재판을 받을 땐 두려웠죠. 혼자였으면 힘들어서 계속 못 했을 텐데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이제는 아예 연행당할 각오를 하고 활동을 해요. 재판을 받아도 덤덤해요. 앞으로도 계속 이런 활동을 하며 살려고요."


김씨는 예전에는 사회문제에 큰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4년 전 우연히 참여한 집회에서 들은 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이야기가 그를 바꿔 놓았다.

한편, 조은별(22)씨는 얼마 전 2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밀양 송전탑 반대 집회에 참여했다가 경찰에 연행되고 재판까지 받게 된 것이다. 벌금을 구할 방법을 묻는 기자에게 조씨는 "1일 노역이 10만 원이니까 구치소에 들어가서 며칠 노역하면 된다"라며 "재판이 하나 더 남았다"고 밝혔다. 재판에 맞서면서까지 사회참여활동을 하는 이유에 대해 조씨는 다음과 같이 심경을 털어놓았다.


"힘들죠. 그만하고 싶을 때도 있어요. 그런데 밀양 할매 할배를 떠올리면 그만둘 수가 없어요. 법률을 어긴 것이 있다면 책임은 질 거예요. 그렇다고 제가 범죄자라고는 생각 안 해요. 인생 80년 이상 산다고 하는데 그중 1~2년 감옥에 있는 거, 별거 있나요. (웃음) 살다 보면 뭐 그럴 수도 있지..."

조씨가 해맑게 웃으며 말하자 옆에 있던 이소영(20)씨가 덧붙였다.

"이미 약자들의 모습과 그들이 탄압당하는 현장을 봐버렸어요. 본 이상 그만둘 수가 없게 됐고요. 저도 참 괴로워요.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때도 있지만, 어쩔 수가 없어요. 이미 알아버렸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어요? 이제는 시위 한두 번만 못 가도 부채의식을 느껴요. 활동까지 그만두면 정말 힘들 거예요."

 '청년좌파' 회원 차상우씨는 자신을 변론해주던 서경원 변호사에게 동료들을 위한 법률강의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서 변호사는 흔쾌히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날 법률강의에서 차상우씨는 “이윤보다 생명이 우선인 사회를 위해 계속 싸울 것”이라고 전했다.
'청년좌파' 회원 차상우씨는 자신을 변론해주던 서경원 변호사에게 동료들을 위한 법률강의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서 변호사는 흔쾌히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날 법률강의에서 차상우씨는 “이윤보다 생명이 우선인 사회를 위해 계속 싸울 것”이라고 전했다. 차상우

"이들을 매개로 민주화 세대의 감동을"

'청년좌파' 회원들은 대부분 집회 현장에서 있던 일로 재판을 받거나 앞두고 있다. 이날 강의에 나선 서 변호사는 '청년좌파' 회원인 차상우(21)씨의 변론을 맡고 있다. 서 변호사는 앞으로도 '청년좌파'를 위해 법률지원을 할 계획이다. '부채의식'과 '존경심' 때문이라고 한다.

"흔히 청년들이 사회 문제에 관심이 없다고 하잖아요. 저도 학생 때 그랬고요. 그런데 이 친구들(청년좌파)은 정말 열심히 사회에 목소리를 내요. 사회가 바뀌든 안 바뀌든 나서서 행동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저는 88년생이라 87년 민주화 운동이나 광주 민주화 운동이 잘 안 와닿았거든요. 그런데 이 친구들을 매개로 민주화 세대의 감동을 느껴요. '저렇게 행동하는 사람이 있어서 내가 그동안 편하게 잘 살았구나' 싶은 마음이 드는 거죠."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오마이뉴스>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집시법(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은 기득권층이 청년들의 입을 막으려고 사용하는 대표적인 법"이라고 말했다. 또한, 한 교수는 "집회에 참여한 젊은이들을 연행하고 제재하는 것은 처벌의 목적이 아니다"라며 "형벌법을 이용해 윽박지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판에 맞서는 청년들. 어떤 말로 그들을 응원할 수 있을까. 차상우씨가 지난해 '5.18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에서 연행됐을 때 동대문 경찰서로 찾아온 그의 어머니가 한 말에서 어른의 지혜가 느껴진다.

"잘했어. 눈치껏 잘 싸워."

법률강의는 어떻게 시작했을까?


"아악!"

의무경찰 한 명의 비명을 신호로 네 명의 경찰이 차상우씨를 붙잡았다. 쓰러진 의경은 자신의 다리를 차씨가 이빨로 물었다며 울먹였다. 차씨는 경찰들을 뿌리치고 쓰러진 의경의 바지를 걷었다. "이빨 자국 없이 깨끗하잖아요!" 다리가 아프다고 뒹굴던 의경은 순식간에 다른 곳으로 사라졌다. 다른 경찰이 황급히 달려와 차씨에게 사과하는 것으로 해프닝은 마무리됐다.

앞의 이야기는 지난 1월 10일 쌍용차 해고자 복직을 위한 '오체투지' 현장에서의 일이다. '오체투지'는 경찰이 <오마이뉴스> 기자를 사칭하다가 발각된 현장이기도 하다(관련 기사: 경찰, <오마이뉴스> 기자 사칭해 무단채증하다 발각). 의경의 연기가 서투른 덕분에 차상우씨는 연행을 면했다.

그러나 차씨는 지난해 '5.18 박근혜 퇴진 청와대 만민공동회'와 '6.28 민주노총 2차 시국대회'에 참여했다가 '공무집행방해'와 '일반교통방해' 혐의로 기소됐다. 차씨는 정상 참작을 예상했으나, 검사는 그에게 징역 10개월을 구형했다. 이후 판사는 차씨에게 3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차씨는 항소를 준비했다. 한편으로는 고단했다. 목소리를 낼 때마다 연행과 재판에 대한 우려가 그를 괴롭혔다. 차씨는 문득 자신과 같은 처지의 동료들이 떠올랐다. 그는 자신을 변론해주던 서경원 변호사에게 '청년좌파' 회원들을 위한 법률강의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서 변호사는 흔쾌히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날 법률강의에서 차상우씨는 "이윤보다 생명이 우선인 사회를 위해 계속 싸울 것"이라고 전했다.


덧붙이는 글 임성현 기자는 오마이뉴스 22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청년좌파 #법률강의 #서경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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