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버스정류장에서는 '딴짓' 금물

[30일, 제주를 달리다 6] 제주의 과거가 있는 곳

등록 2015.07.31 08:32수정 2015.07.31 08:32
8
원고료로 응원
 제주엔 지금 비오는 중
제주엔 지금 비오는 중 황보름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다. 아침에 눈을 떠 창밖을 보니 아직은 오지 않는다. 대신 하늘엔 회색빛 구름이 가득하다. 구름이 마치 커다란 돔처럼 제주를 꼼꼼히 감싸고 있다. 곧 빗방울이 떨어지려나 보다. 오늘은 달리기를 쉬기로 했다.

어제 저녁부터 몸이 좋지 않았다. 그간 안 쓰던 몸을 지난 며칠 너무 써버린 탓이다. 아침엔 뛰고 하루 종일 걷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걷기를 원래 좋아하고 또 달리기도 미리부터 시작했던 터이지만 그래 봤자 며칠 걸러 한 번씩 뛰고 걸었을 뿐이다. 여행자가 되어 매일 뛰고 걷자니 몸에 무리가 온 듯 했다. 그러던 차에 비 소식을 들은 거였다. 마음 편히 달리기를 '패스'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여행마저 패스할 수는 없는 일. 아침을 먹고 남사장님과 오늘 어디를 갈지 상의했다. 맛 좋은 커피를 홀짝이며 나는 남사장님의 손가락을 따라 지도 위 여기저기를 미리 여행해 보았다. 사장님은 비가 오는 날 가면 좋을 몇 곳을 꼽아 주었다. 친절한 설명도 함께. 사장님이 꼽아준 곳은 주로 숲이었다. 사려니 숲, 비자림, 몇 군데의 곶자왈. 그리고 숲이 아닌 만장굴. 나는 만장굴이 괜찮을 것 같았다. 간 김에 그 근처에 있다는 미로공원에도 들러보면 좋을 것 같고.

기분 좋게 일정을 짠 후 게스트하우스를 나섰다. 역시나,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늘엔 음산한 구름이 가득했고 공기도 구름의 기운을 따라 음산했다. 후드드득, 비가 우산을 연신 때려댄다. 우산을 때리지 않은 비는 기어코 바람을 타고 우산 안으로까지 치고 들어와 나를 때려댄다. 몇 분 걸었을 뿐인데 옷이 흠뻑 젖었다.

만장굴로 가기 위해선 우선 제주 시내로 나가야 했다. 제주 시내에서 만장굴로 가는 버스는 990번 하나라고 했다. 나는 비에 젖은 몸을 이끌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한눈 팔았다고 혼내는 버스기사 아저씨, 왠지 좋았다

미리 말하자면 나는 이 날 만장굴에 가지 못했다. 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제주 버스노선과 버스 배차 간격을 나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버스 배차 간격이 길다는 사실도 자꾸 잊어버렸다.


습관적으로 버스정류장에 가면 바로 버스가 올 줄 알고 기대했다가 실망하기 일쑤였다. 내가 있던 게스트하우스에서 제주 시내로 나가는 버스는 둘. 두 버스의 배차 간격은 1시간이었다. 운이 나쁘면 1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 하지만 평균적으로 30분 정도 기다리면 버스는 왔다.

그냥 느긋하게 기다리면 될 것을. 나는 매번 조급증이 걸린 사람처럼 굴었다. 언제 버스가 오나 버스가 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쭉 내밀고 오매불망 님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버스를 기다렸다. 그런데 이렇게 고개를 쭉 내밀고 버스를 기다리는 행동은 나중에 알고 보니 제주에선 매우 바람직한 행동이었다. 어느 게스트하우스 스탭은 이렇게 귀띔해주었다.


"제주에서 버스를 탈 때는 꼭 버스가 오는 방향을 보고 있다가 버스가 가까이 왔을 때 운전기사아저씨와 눈을 마주쳐야 해요."
"아니, 어떻게 눈을 마주쳐요. 그리고 왜요?"
"눈을 마주칠 수 없으면 앞으로 몇 발자국 걸어 나가 손을 흔들어야 해요. 택시를 탈 때처럼."
"아니, 왜요?"
"안 그럼, 그냥 지나가니까요."

그 버스정류장을 지나가는 버스가 버젓이 그 버스 하나만 있어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이 그저 수줍은 듯 서 있기만 하면 버스는 그냥 지나갈 거라는 거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분명 과장 된 말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실제로 정말 그런 일이 벌어졌다.

한 번은 버스 정류장에 앉아있지도 않고 서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정말 버스가 쏜살같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잠시 딴 곳을 보고 있었을 뿐인데! 이 버스를 놓치면 또 삼십 분을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나는 택시를 부르듯 손을 흔들며 버스를 따라 달렸다. 다행히도 버스는 서주었고, 나는 무사히 탈 수 있었지만, 대신 나는 버스기사 아저씨한테 혼이 나야만 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한 눈을 팔면 어떻게 합니까!"
"죄송합니다."

'다신 그러지 않을게요'라고 속으로 뉘우친 후 넘어지지 않으려 얼른 눈에 보이는 자리에 엉덩이를 걸쳤다. 이때쯤 나는 버스기사 아저씨들의 카리스마에 기가 단단히 눌려있었다. 그렇다, 제주 버스기사 아저씨들은 카리스마가 있었다.

처음엔 버스를 타기가 조금 불편했다. 기사 아저씨들이 너무 불친절한 것 같아서. 버스도 너무 험하게 모는 것 같았다. 자리에 앉기도 전에 급 출발을 하는 통에 넘어지지 않으려 매번 애를 써야 했다. 앉아 있어도 손잡이를 꼭 잡고 있어야 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서서히 나는 카리스마가 있는 버스기사 아저씨들이 그냥 참 편해졌다. 계속 타고 다니다 보니 기사아저씨들이 그냥 제주도민같이 느껴졌다. 가끔은 버스를 탄 동네친구와 내내 잡담을 하며 가는 기사아저씨도 있었다. 친척을 만난 아저씨도 있었고 말이다.

차라리 이게 나은 게 아닐까 싶었다. 나는 그간 너무 과도한 친절에 익숙해져 있었던 게 아닐까. 너무 서비스를 받는 것에만 익숙해져 있던 통에 누가 조금만 불친절해도 신경이 곤두섰던 건 아닐까. 누가 나를 좀 불친절하게 대한들 그게 뭐 대수일까.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 행동하는 게 기사 아저씨들에게 편한 일이라면 그게 내게도 좋은 일이 아닐까 싶었다. 억지 친절, 억지 미소는 아픔을 동반한다. '먹고사니즘'이 만들어놓은 부자연스러운 서비스는 결국 서비스를 받는 사람에게도 부메랑처럼 돌아오기 마련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먹고사니즘'은 결국 우리 모두의 문제이니까 말이다.

3년 전 오스트리아 미술사 박물관에 갔었을 때가 기억난다. 입구 매표소에서 표를 팔고 있던 뚱뚱한 오스트리아 할아버지는 내가 그때껏 만난 모든 매표원들 중 가장 불친절했다. 내가 돈을 내고 표를 받고자 서 있는 것 자체가 불쾌하단 표정이었다. 드디어 건네주는 표를 조심스레 받아 들면서 나는 생각했었다. '우리 같으면 어림도 없다. 저렇게 굴면 금방 잘리고 말겠지.'

하지만 오스트리아 할아버지는 이런 걱정 없이 본인의 성격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를 보며 난 내가 한국에서 보았던 그 많던 포장된 웃음들을 떠올렸다. 이때 나는 처음으로 차라리 누군가의 불친절을 감내하는 게 훨씬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살기 위해 표정을 포장해야 하는 사람들의 고달픔과 슬픔을 보기 보다는.

뭐, 이런 생각을 해본 적도 있었던 탓에 나는 제주버스기사 아저씨들의 불친절함을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물론, 버스는 좀 조심히 몰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간절하다. 이건, 안전의 문제이니까. 어찌됐건, 역시 버스를 기다리는 일은 고됐다. 더군다나 오늘처럼 비가 오늘 날에는.

버스 놓치고 찾은 극장, 이 시간이 아니었다면

삼십 분 넘게 빗속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더니 어제 저녁부터 느껴진 피곤함이 몰려왔다. 기온도 급격히 떨어져 반팔에 난방, 점퍼까지 입었는데도 몸이 으스스했다. 그래도 오는 버스를 반갑게 맞았다. 버스를 타고 15분 정도 달려 제주 시내에 도착했다. 990번 버스가 지나간다는 버스 정류장은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었다.

십분, 이십 분, 삼십 분이 흘렀는데도 버스가 오지 않는다. 분명, 여기가 맞는데. 나는 문득 든 생각이 있어 급히 인터넷을 검색해 봤다. 아, 이런, 바보같이 이걸 지금 알게 되다니. 990번 버스는 제주 시내에서 하루에 딱 두 번 출발하는데 이미 아침 일찍 두 대가 다 지나가버린 듯 했다. 그렇다는 건 나는 오늘 만장굴에 가지 못한다는 건데!

길찾기 앱만 믿고 여기까지 온 내가 너무 한심스러웠다. 길찾기 앱에는 가는 방법만 나와 있지 그 외의 정보는 나와있지 않았다. 이젠 어쩐다. 그런 그렇고, 너무 추운데. 내 한심함을 자책만 하고 있기에는 날이 너무 쌀쌀했다. 이왕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만장굴은 빨리 포기하고 우선 어디든 들어가기로 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저기 앞에 극장이 하나 보였다. 그렇게 나는 올해 처음으로 극장에 가게 되었다.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은 990번 버스에 대해 알고 있었을까. 영화를 기다리며 나는 맛있는 커피를 내릴 줄 아는 남사장님의 얼굴과 남사장님이 몰고 다닐 차를 떠올려 보았다. 어쩌면 사장님은 당연히 내가 차가 있는 줄 알았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 리는 없겠지. 내가 걷는 여행 중이랬으니. 하지만 순간적으로 착각했었을 수는 있겠지. 사실, 택시를 타면 갈 수는 있으니까. 사장님을 원망하지는 말자. 다 내 탓이지, 뭐.

영화가 한 시간 뒤에 시작된다고 해서 극장 내 푹신한 의자에 앉아 오늘 일정을 다시 짜보았다. 아무래도 시내를 벗어나긴 힘들 것 같아 근처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지 찾아보았다. 검색 몇 번 만에 금방 갈 곳이 두 곳이나 생겼다.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과 삼성혈이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뭔가 지루해 보이는 이 장소들을 적극적으로 찾아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아마 이번 제주 여행의 색깔도 조금은 달라졌겠지. 나는 이 두 곳에서 알게 된 과거의 제주를 통해 현재의 제주를 조금 더 밝은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가끔은 오늘처럼 이렇게 망가진 상황 속에서도 뜻밖의 의미 있는 이야기가 전개되기도 한다.

피곤함이 싹 달아날 정도로 시원한 영화였다. 그런데 제주도민들도 나만큼이나 극장엘 자주 오지 않는 걸까. 주말 점심때인데도 불구하고 극장은 거의 텅 비어있어 아주 쾌적하게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결국엔 민중이 승리를 거두는 <매드맥스>를 보고 밖으로 나왔다. 기분 때문인지 이제는 비에서도 음산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약간 우울할 뿐이다. 나는 애써 우울을 털어내지 않기로 했다. 그러자 우울이 오늘의 나를 깊이 감동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향기나는 서각, 나 혼자 누리다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에는 제주의 과거와 현재가 담겨 있었다. 세계자연유산 홍보전시관과 해양종합전시관을 포함, 자연사전시실, 민속전시실, 특별전시실 그리고 시청각실이 커다란 박물관 안에 들어서있었다. 입구로 들어서자 만장굴을 본떠 만든 자연사전시실 통로가 보였고(만장굴이라니, 왠지 반가웠다), 거기서부터 길을 따라 죽 걸으며 구경을 하다 보니 어느새 시청각실 앞에 다다르게 됐다.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민속전시실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민속전시실 황보름

제주에 대해 몰랐던 것이 많았다. 제주가 우리나라 남해안과 연결되어 있었다는 걸 사람들은 알고 있었을까. 하지만 급속한 침강이 있은 후 제주는 남해안과의 연결이 끊어지게 되었고 이후 약 120만년 전부터 서서히 지금의 제주도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현재의 섬 모양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약 70만년 전부터인데, 이때 화산 활동으로 많은 양의 현무암 용암이 흘러나왔다고 한다. 한라산 화산체가 만들어진 건 30만년 전, 360개가 넘는 단성화산, 즉 오름이 형성된 건 20만년 전부터이다.

비도 피할 수 있고 쾌적하기도 한 전시실 바닥 돌출된 부분에 둘러앉아 어느 보험상품이 더 좋은지를 이야기하던 어머니들을 지나쳐 자연사박물관을 나오자 바로 민속전시실이 이어졌다. 1,2관으로 나누어져 있는 민속전시실에서는 제주의 변천사과 제주인의 과거 생활 풍속도를 볼 수 있었다. 1관에서는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전형적인 제주인의 삶의 과정을 볼 수 있었고, 2관에서는 제주 바다에서 거칠게 삶을 일구어낸 해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해녀의 모습은 그 모습 그대로 고단함이 묻어났다.

향기나는 서각풍경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아름다운 글귀가 아름다운 나무에 새겨져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고 있다
향기나는 서각풍경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아름다운 글귀가 아름다운 나무에 새겨져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고 있다황보름

박물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소는 특별전시실이었다. '향기나는 서각풍경'이라는 이름아래, 마음을 울리는 아름다운 글들이 아름다운 나무에 새겨져 전시실 벽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무심코 들어선 텅 빈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아름다움의 향연에 나는 흠뻑 취했다. 황홀한 마음을 안고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글들을 읽어나갔다. 그렇게 나 혼자 아름다움을 누리고 있는데도 어느 한 명 함께 누리러 들어오지 않았다. 내게는 잘 된 일이었다. 가끔은 눈물을 흘려야 했으니까. 그 날 본 글 중 몇 개를 옮겨보면 이렇다.

풀꽃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풀꽃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황보름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무성 깊은 물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무성깊은 물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황보름

'얕은 물은 요란하게 흐르지만 깊은 물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어리석은 자는 반쯤 채운 항아리같고 지혜로운 사람은 가득 찬 연못과 같다.'

살다보면 살다가보면 넘어지지 않을 곳에서 넘어질 때가 있다
살다보면살다가보면 넘어지지 않을 곳에서 넘어질 때가 있다황보름

'살다가 보면 넘어지지 않을 곳에서 넘어질 때가 있다. 사랑을 말하지 않을 곳에서 사랑을 말할 때가 있다. 눈물을 보이지 않을 곳에서 눈물을 보일 때가 있다. 살다 보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기 위해서 떠나 보낼 때가 있다. 떠나 보내지 않을 것을 떠나 보내고 어둠 속에 갇혀 짐승스런 시간을 살 때가 있다. 살다가 보면.'

그리움 기쁨이 찾아올 수 있게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놓아요
그리움기쁨이 찾아올 수 있게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놓아요황보름

'기쁨이 찾아올 수 있게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놓아요. 마음속으로 햇살 같은 희망이 들어와 빛날 수 있도록.'

웃음꽃 웃어 봐요
웃음꽃웃어 봐요 황보름

불쑥 내 마음에 건네진 이 아름다운 글들이 오늘의 나를 완벽하게 완성시켜주는 듯 했다. 사랑, 지혜, 기쁨, 이런 단어들을 나는 살면서 얼마나 사용하고 있을까. 사랑하고 지혜로워지고 기쁘게 살기 위해 나는 얼마나 노력하고 있을까. 잠시라도 이런 아름다운 가치들을 생각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몸도 좋지 않고 기분도 조금 그랬지만 그래서 더 천천히 글들을 음미할 수 있었다.

바다 건너 친구가 온다는 소식, 어찌 기쁘지 않으랴

기쁨이 찾아올 수 있게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박물관을 나섰다. 물론, 우산도 활짝 폈다. 배가 고파 고기국수집에 들러 고기국수를 먹을 때도 입을 활짝 열고 맛있게 먹었다. 고기국수를 먹는데 친구 여진이에게 전화가 왔다. 내가 제주도에 와 있는 동안 한 번 놀러 올 거라고 여진이는 말했다. 이후 메르스 때문에 결국 친구는 오지 못했지만 친구가 나를 찾아오겠다고 하니 기분이 참 좋았다. 고기국수가 친구 때문에 더 맛있게 느껴졌다.

민속자연사박물관에선 볼 수 없던 제주의 아주 먼 과거가 삼성혈에는 있었다. 제주 신화였다. 제주 신화의 중심엔 삼신인이 있다고 했다. 삼심인은 한라산의 기운을 받아 태어난 신인으로 탐라왕국의 시초로 불린단다. 그리고 이들 삼신인과 결혼한 이들이 벽랑국 삼공주인데, 이들의 혼인으로 비로소 제주에도 인간이 살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 삼성혈이 바로 탐라국의 시초 삼신인이 태어난 곳이다.

삼성혈 울창한 나무숲
삼성혈울창한 나무숲황보름

삼성혈 계속 걷기에 좋은 길
삼성혈계속 걷기에 좋은 길 황보름

하나의 왕국이 시작된 장소라고 하기에 삼성혈은 매우 아담했지만, 나무들의 울창함은 놀라웠다. 비가 오고 있는데도 나뭇잎들이 우산이 되어 비를 막아주었다. 삼성혈 안에는 하나의 전시실과 건축물 몇 개가 있었는데 사실 특별히 볼만하지는 않았다. 둘러보는 데 2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이곳에서 한 시간 가량을 머물렀다.

그냥 아담한 삼성혈을 계속 걸어 다녔다. 나무에 폭 쌓여 있는 느낌이 좋았다. 외부와 완전히 격리된 느낌도 특별하게 다가왔다. 나무가 나를 보호해주고 땅의 기운이 내게 힘을 주는 기분이었다. 문지방 하나만 넘으면 시내 한복판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삼성혈 속 세상은 확실히 신비스러웠다.

삼성혈을 나오자 다시 현재의 제주, 그리고 비가 시작되었다. 멈춰서서 지도를 보던 중국인이 삼성혈에서 툭 튀어나온 내게 길을 묻는다. 내가 이곳 지리를 어떻게 안단 말인가. 하지만 중국인을 물리치지 않고 스마트폰을 꺼내 함께 길을 찾아 나섰다. 멀지 않은 곳에 중국인이 찾던 버스정류장이 있었고 중국인의 인사를 받으며 나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오늘 내가 알게 된 제주의 과거는 여행 내내 나를 따라다녔다. 특히, 제주도민들과 이야기를 할 때 오늘 알게 된 것들이 도움이 되었다. 내가 제주에 대해 말을 할 순 없어도 그들이 제주에 대해 하는 말을 알아 들을 수는 있었다. 제주의 화산활동은 끝이 났지만, 제주의 삶은 과거에서 현재로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덧붙이는 글 2015년 5월 26일부터 6월 24일까지, 30일간의 제주 여행 연재글입니다.
#제주여행
댓글8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liannah


AD

AD

AD

인기기사

  1. 1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2. 2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3. 3 이런 곳에 '공항'이라니... 주민들이 경고하는 까닭 이런 곳에 '공항'이라니... 주민들이 경고하는 까닭
  4. 4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5. 5 사다리 타고 올라간 동료의 죽음, 그녀는 도망치듯 시골로 갔다 사다리 타고 올라간 동료의 죽음, 그녀는 도망치듯 시골로 갔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