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특별법 위헌심판 공개변론에 참석한 김강자 김강자 한남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객원교수가 지난 4월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성매매 특별법) 위헌 여부를 가리는 공개변론에 참고인으로 참석하고 있다.
유성호
여기서 말하는 '비범죄화'는 당연히 '불법화'와 다르고, '합법화'와도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물론 전문적이고 복잡한 영역이기에 쉽고 단순하게 설명하는 데 어느 정도 한계가 있긴 하지만,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서술해 보고자 한다.
불법화 : 일반적으로 관련된 모든 행위가 법적 처벌 대상이다. 성매매를 하면 성구매자나 성판매자 포주나 알선업자가 모두 처벌을 받고, 마약에 대해서도 소지자·판매자·공급자가 다 처벌을 받는다. 안락사 역시 원칙적으로 이에 관여한 모든 사람이 문제가 되지만, 이 사안의 성격상 처벌 대상이나 강도가 마약이나 성매매와는 좀 차이가 있다. 한국은 성매매·마약·안락사 세 가지 사안 전부 다 불법화 국가라고 볼 수 있다.
합법화 : 일반적으로 관련된 모든 행위가 허용된다. 성매매 포주나 알선업자는 법 테두리 내에서 합법적으로 사업을 벌이면서 세금을 내고, 성 판매자와 성 구매자는 처벌의 염려 없이 자유롭게 성매매를 한다. 마약도 재배 및 판매·사용이 다 허용되고, 안락사도 이를 전문적으로 도와주는 단체들이 생길 정도로 양성화된다. 마약은 주로 마리화나 합법화이고, 안락사는 주로 '자발적 안락사(의식이 있는 환자가 직접 자신의 죽음을 자유로운 상태에서 동의한 안락사)'에 대한 합법화다.
비범죄화 : 마약과 성매매는 법적 처벌의 대상별로, 안락사는 그 종류에 따라 처벌 여부가 달라진다. 대부분 성매매 여성에 대한 비범죄화가 많이 이뤄지고(한국 여성계 내에도 이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국제엠네스티 투표처럼 성구매자에 대한 비범죄화도 일부 국가(프랑스·이탈리아·영국 등)에서 이미 실행됐다. 어떤 나라(멕시코·포르투갈·자메이카)에서는 소량의 마약을 소지한 개인은 더 이상 처벌하지 않으며, 상당수 국가에서는 '소극적 안락사(인위적으로 생명이 유지되고 있는 환자의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안락사)'가 대체적으로 용인되고 이와 관련해서 아무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비범죄화와 합법화를 혼동해서 사용하는데, 비범죄화의 핵심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불법화는 관련자를 다 처벌한다). 여기서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는 재판을 받고 징역형을 살거나 범죄기록이 남지 않는다는 뜻이고, 법의 구체적인 내용에 따라 범칙금이나 교육 등은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마약 비범죄화가 되더라도 마약 소지자들을 처벌하지는 않지만 범칙금을 부과할 수는 있고, 마약 복용자들을 처벌하지는 않지만 재활 프로그램 참여를 강제할 수는 있다.
흔히 말하는 합법화는 이렇게 관련자들에게 어떤 식으로도 제재를 가하지 않고, (이를 테면 '성매매'를 '성노동'으로 보듯이) 그 행위 자체를 정당한 일로 간주하는 것이다. 만약 마약이 합법화된다면, (따로 법조항을 만들지 않는 한) 소지자에게 범칙금을 부과하거나 단순 복용자에게 재활 프로그램 참여를 국가가 강제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성매매가 합법화되면, 성노동자들에게 특별한 사유 없이 어떤 제재를 가할 수 없게 된다. 이게 바로 비범죄화와 합법화의 결정적 차이다. 결론적으로 비범죄화는 개인에게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 반면, 합법화는 단순 수요자보다는 판매자와 공급자에게 훨씬 더 큰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성매매·마약·안락사 모두 '불법화'한 한국의 대혼란사실상 한국은 성매매·마약·안락사, 이 세 가지 중대한 문제에 대해서 사회적 논의 자체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물론 현재 불법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별다른 문제들이 발생하지 않으면 괜찮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우선, 성매매 특별법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심판 심리가 진행 중이다. 핵심적 쟁점 중 하나가 성매매 여성 처벌에 관한 부분인데, 지금 당장 '성매매 여성의 비범죄화'가 격론의 중심에 서있는 것이다. 그리고 성매매 특별법의 효과나 성구매자 처벌에 대해서도 첨예하게 의견이 갈리고 있으며, 국제엠네스티가 큰 비중으로 거론한 '신체적·정신적 장애가 있는 이들의 처벌 없는 성매매'에 관해서는 아직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지도 못하고 있다(개인적으로도 이 부분이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며,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수적이라고 본다).
다음으로, 지난 2005년 무렵부터 한국에서도 얘기가 나왔던 '대마초 비범죄화' 요구가 있다. 작년에 <뉴욕타임스>가 지적했듯이, 담배나 술과 비교해서 마리화나(대마초) 중독은 그리 심각하지 않고, 건강한 성인의 경우 적당한 양의 마리화나 사용은 건강에 심각한 위협을 가져오지 않는 걸로 밝혀지고 있다. 결국 미국의 워싱턴주와 콜로라도주는 작년에 오락용 대마초 판매를 허용했으며, 올해 들어서는 알래스카주와 수도인 워싱턴DC까지 오락용 대마초를 합법화했다.
현재 미국은 아예 '합법화'를 했고, 한국에서는 그냥 '비범죄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비범죄화는 그저 '처벌을 받지 않게 해달라'는 의미다. 본격적으로 대마초 비범죄화 얘기가 나온 지 벌써 10년이 지났는데, 과연 우리는 이 문제를 확실히 논의해 봤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왜 한국에서는 이런 사안에 대해서 자유롭고 적극적인 토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가?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라면, 어쨌든 사회적 합의의 과정이 있어야 되는 것 아닐까?
안락사도 마찬가지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한국은 법적으로 안락사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다. 그저 문제가 불거지면 각 사건별로 법원의 판단을 받는데, 도대체 뭐가 괜찮고 뭐가 처벌을 받는지 가늠할 수 있는 기준 자체가 없는 셈이다. 이토록 중대한 문제를 각 법원 판사 개인의 종잡을 수 없는 결정에만 맡긴다는 게 과연 적절한가? 지금 이 순간에도 분명히 안락사를 고민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텐데(아마 대부분 방치 또는 묵인의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이들을 국가가 '나 몰라라' 하는 건 너무 무책임하지 않나?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한국에서도 머지않아 성매매·마약·안락사와 관련된 비범죄화 논란이 곳곳에서 벌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급격한 초고령사회가 되는데 불법이든 합법이든 안락사 관련 법제화를 피하기는 힘들고, 점점 더 많은 지역에서 대마초 합법화가 됨에 따라 국내의 비범죄화 요구도 이전보다 훨씬 더 커질 테고, '성적 자기 결정권'이 이미 중요해진 마당에 성매매 처벌을 현행과 똑같이 유지하기도 어렵다.
이제는 단지 시간의 문제일 뿐, 변화는 불가피하다. 더 늦기 전에 사회적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어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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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범죄 아니다" 한국인은 모르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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