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기다리는 북한으로 돌려보내주세요"3일 오전 종로5가 기독교회관에서 탈북자 김련희씨가 참석한 가운데 김씨의 북한 송환을 촉구하는 종교인 기자회견이 열었다. 김씨는 지난 2011년 6월 중국에 해외여행 갔다가 남한에 가서 몇달만 일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브로커의 꾀임에 빠졌다며, 부모님과 자식이 기다리는 고향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호소했다.
권우성
하지만 김씨의 설명에도 일부 기자들의 의문은 해소되지 않은 듯 했다. <뉴욕타임즈>의 한 기자는 "김 선생님 이야기가 사실이 맞다면, 슬픈 코미디"라고 평가했다. 그는 "저희는 외신이기 때문에, 기사를 쓰면 (독자들이) 도대체 이런 우스운 일이 어떻게 벌어지는지 궁금해 한다"고 덧붙였다. 질의응답에서는 김씨가 남한 행을 선택하게 된 과정이나 간첩 행세를 하게 된 계기에 대한 질문이 주를 이뤘다. 다음은 질의응답에서의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간첩과 유사한 행위를 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북으로 가기 힘들게 된 것 아닌가, 남한 측의 입장에서 간첩을 북으로 돌려보낸다는 것이 잘 납득이 안 된다."탈북자들이 남한에 오고 난 뒤 6개월이 지나면 여권을 내준다. (처음에는) 여권 내주면 중국에 가자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6개월 후에 (여권을) 신청하니까 여권이 나오지 않았다. 10개월 만에 다시 (여권을 신청) 하니까, '당신은 절대로 여권이 나올 수 없다, 국정원장이 신원특이자로 찍어서 해외 출입을 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야 비로소 나는 국가의 힘을 빌어서 절대로 고향에 갈 수 없구나 생각하게 됐다.
그 다음에 불법으로 밀항과 위조여권을 준비하게 됐지만 그것도 안 됐다. 그래서 '고향에 못 갈 바에야 이 땅에서 살아 숨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자살시도를 했다. 그러다 정신이 들고 인터넷을 보니 원정화, 유우성 사건이 기사에 많이 떴다.
기사 제목을 보니, '탈북자 명단을 수집해서 북에 보냈다'는 내용이 있었다. '탈북자 명단을 수집하면 간첩이 되는 구나'라는 걸 그때 배웠다. 그래서 '(간첩이 되려면) 증거가 있어야 하니까 (탈북자 정보를) 수집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감옥에 갈 것을 생각했다. 나를 담당한 신변보호관 경찰에게도 말한 적이 있다. '나 1~2년 감옥 간다면, 면회 좀 오라'고 농담도 해본 적 있다.
남파 간첩들이 여러 명 감옥에 가있는데, 어떤 간첩인지 모르겠지만 3, 4년 형을 받았다더라. 북한에서 직접 파견한 사람이 3, 4년 형이면, 내가 고향에 가기 위해 간첩을 했다고 하면 1, 2년 정도 형을 받지 않을까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죄를 받으면 간첩이니까 제 고향으로 보내지 않을까 생각했다. 여기서 간첩이 되고, 감옥살이라도 해서 그렇게라도 가자 그 방법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선 탈북자 17명의 정보를 휴대폰 입력했다. 북측에 보낼 자료를 수집했다고, 빨리 나를 멈춰 세워달라고 경찰에 전화했다. 그런데 2, 3일 돼도 연락이 없었다. 내가 간첩행위를 했다고 하는데도 경찰의 연락이 없는 점이 이상해 다시 연락을 했다. 좀 만나자고 하고, 앉은 자리에서 휴대전화 입력된 정보를 보여줬다. 진짜 탈북자 정보를 수집했다고. 그래서 구속이 되고, 간첩이 된 것이다."
- 만약 북한으로 돌아간다면, 북한의 입장에서는 김련희씨를 어떻게 대할 것이라고 생각하느냐."이렇게 하다가 (북한에) 못갈 수 있다는 건 각오를 했다. 혹시 가게 된다면 불이익은 장담하지 못 한다. 하지만 한 가지는 명백하다. 이 땅에서 살아서 못 간다면, 죽어서라도 갈 것이다. 시체로라도 갈 것이다. 안 보내주면 판문점 앞에 분신이라도 해서 갈 것이다. 그러면 간첩이고 뭐고, 사상이고 뭐고 없잖느냐.
북에 들어가서 '너는 적을 배신한 배반자다, 벌을 받아야 한다, 죽는다'고 해도 내 땅에 묻히는 것이다. 내 부모, 자식 곁에 묻힐 것이다. 가서 호강하고 사는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다. 부모님 살아 계실 때 내 얼굴 한 번 보이고 싶고, 영원히 부모 곁에서 죽어서라도 살고 싶은 거, 그것 한 가지가 소원이다."
- 브로커가 상당히 문제인데, 브로커가 탈북자이냐 조선족이냐?"브로커를 만날 당시에는 간경화 때문에 중국에서 치료를 받고 있던 중이었다. 한 달을 놀고 보니, 돈이 있어야 병을 치료할 수 있더라. 언니한테 돈을 보태라고 말하기 힘들었다. 힘으로 해보겠다고 생각하고 중국에서 일을 했는데, 중국 위안으로 한 달에 1200원 받았다. 그때 브로커가 '중국 사람들은 한국 가서 다 돈을 벌어온다, 여기서는 안 된다. 한국 가서 돈을 벌어오면 병 치료도 하고, 집에 갈 돈을 벌수 있다'고 말했다. 치료비를 모으기 위해 석 달만 다녀오면 된다고 생각했다. 바보처럼 그렇게 생각했고, 너무 순진했다.
남한으로 오는 도중에 탈북자 7,8명이 함께 어떤 건물에 잡혀 있었다. 브로커가 거기에 모아뒀다. 그때 옆에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남한에 석 달 동안에 다녀온다는 건 완전히 상상이 안 되는 일이구나' 생각했다. 태국으로 가면 얼마 걸리고, 국정원에서 3개월, 하나원에서 3개월…, 한 1년 지내야 사회에 나가서 돈을 벌수 있다는 거다.
나는 몇 달만 있다가 조용히 북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래서 국정원한테 브로커 이야기를 다 했다. 브로커들 자체가 국정원이 서로 연결되어 있고, 브로커들 통해서 국정원에서는 북한의 정보를 많이 수집하고 있다. 어떻게 관계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미묘한 관계가 있다. 브로커들은 (탈북자들이) 원하든 원치 않던 단 한명이라도 끌고 오면 300만 원을 받는다. 그 돈을 위해 한 명이라도 끌고 오는 것이 목적이다.
종교단체에서 (브로커를) 하는 분들은 돈을 안 주고 데려온다. 실제 300만 원씩 받고 들어오는 사람들은 개인 브로커들이다. 그분들은 대체로 탈북자들이고, 한국에 있으면서 그런 일을 많이 한다. 우리는 그 사람들 이름도 모른다. 중국에 있는 조선족, 한족을 이용하여 데려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브로커 이름이라든지, 그런 걸 전혀 모른다. (탈북자를)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을 데려온다. 그 중에 브로커를 아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 통해서 브로커 계좌에 탈북 비용을 지급한다. 200만, 300만 원 정도다."
장경욱 변호사 "북송 위한 제도적 방안 마련 필요"하지만 김련희씨가 자신의 주장대로 북한에 송환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북한이탈주민이 북송을 공개적으로 주장한 것은 김련희씨가 처음이기 때문이다. 김련희씨의 북송을 위한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김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을 담당한 장경욱 변호사는 해당 사건에 대해 "개인의 이동의 자유를 온전하게 보장하기 위해 탈북 과정에서의 인권 침해 요인을 통제하고, 착오·기망으로 온 것이 인정되는 경우 돌아갈 수 있는 제도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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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기자 "김련희 이야기 사실이면 슬픈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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