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막대형마트로 향해 허겁지겁 준비한 그늘막
이영란
드디어 찾아온 아침, 비가 왔다는 흔적만 있다. 아침잠 많은 신랑이 점심때쯤 출발하자기에 딸아이와 함께 그동안 유부초밥도 준비하고, 계란도 삶고, 냉장고 속 먹을 것을 이것저것 챙겨 넣었다.
12시가 조금 지나 부스스 일어난 신랑은 캠핑 의자와 자전거 그리고 비장의 그늘막을 차에 실었다. 모두 트렁크에 싣고 보니 캠핑에 준하는 짐들이 차를 가득 메웠다. 우리는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미사리 조정 경기장으로 향했다.
그늘막에 누워있는 여유 있는 한때를 상상하니 벌써부터 즐겁다. 도착해 보니 오랜만에 와서 그런가 어디라도 다 좋아 보인다. 신랑은 좀 안쪽에 나무가 앞을 가리는 곳에 그늘막을 치자고 했지만, 두 여자는 앞이 탁 트이고 평평한 자리를 골랐다.
트렁크의 짐을 하나 둘 내리고 그늘막을 펼쳤다. 손발이 척척 맞는다. 안쪽에 캠핑용 매트까지 깔고 나니 '힐링' 할 일만 남았다. 그런데 멀리서 제복 입은 아저씨가 자전거를 타고 우리를 향해 달려 온다.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 일단 이런 곳에서 제복 입은 사람이 다가온다는 것이 어쩐지 불안하다.
"죄송합니다. 이곳에 그늘막이나 텐트 치면 안 돼요.""전에는 이곳에 그늘막 다들 치던데요…""그날은 어린이날 기념해서 특별히 치도록 한 거예요. 죄송합니다.""예나야 어쩌냐? 안 된다고 하시네…"아저씨는 "부탁드립니다" 라는 말을 남기고 왔던 길로 다시 자전거를 타고 꼬불꼬불 가신다. 어쩌겠냐 규정이 그렇다는데... 아이도 별다른 저항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늘막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대신 정약용 생가 쪽으로 가자는 제안을 한다.
"이왕 온 거 주차비도 냈는데 여기서 돗자리 펴고 놀면 안 될까? 거기 가도 그늘막 된다는 보장도 없는데…" 신랑은 잠시 아이와 나의 얼굴을 보더니 "그래. 가보지 뭐! 거기도 안 된다고 하면 접으면 되지~" 한다. 이럴 때면 신랑의 긍정적이고 배려심 많은 성격이 고맙다. 이렇게 해서 우리 가족은 오로지 그늘막 한 번 사용해 보겠다는 일념으로 정약용 생가로 향했다.
정약용 생가는 미사리와 달리 인근 사람들이 모두 모인 것처럼 빽빽하다. 주차할 자리도 찾기 힘들다. 트렁크에 하나 가득 실린 짐을 뚜벅이로 옮길 생각을 하니 머리가 띵~ 하다. 이 많은 짐을 들고 갈 신랑 얼굴을 보니 멀리 주차하자는 말도 할 수 없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메인 주차장을 지나 더 안으로 들어가니 주차할 자리가 딱 하나 보인다. 어찌어찌 주차를 하고 캠핑용 의자 3개와 그늘막은 신랑이, 자전거와 아이스박스는 아이가, 캠핑용 매트와 돗자리는 내가 들고 나름 좋은 자리를 잡았다.
사실 짐이 너무 많아 더 이동할 엄두가 나지도 않았다. 우리는 비장의 무기인 그늘막부터 펼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바로 옆에 그늘막을 접고 그 위에서 자고 있는 아저씨와 아줌마가 눈에 들어온다.
"여보 저기 좀 봐. 저 사람들 그늘막 접었어…여기도 안 되는 것 아닐까?" 나의 불안한 말에 신랑은 이렇게 말했다.
"안 되면 접지 뭐. 그지 예나야~"그늘막이 뭐라고... 딸아이가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