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캇과 나 그리고 하우스메이트 셋이서 사용한 전기 요금 고지서. 그렇게 펑펑 썼던 걸 생각하면, 상당히 양호한 수준의 돈이 청구됐다.
이자민
처음에는 내가 한국에서 살아왔던 식으로 지냈다. 낮에 한창 더울 때만 잠깐 에어컨을 틀었다가 약간 공기가 시원해지면 다시 끄고, 거의 선풍기에 의지했다. 더우면 샤워를 하는, 그런 생활. 종종 같이 사는 하우스메이트(스캇의 절친이자 다음달에 나갈 예정인)가 '덥지 않냐?'라고 물어도 그냥 정말 말 그대로 '덥지 않느냐'는 뜻인 줄 알고 '괜찮은데?'하고 넘겼다. 게다가 스캇도 별말 하지 않아서 아무 문제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시엄마가 뭘 갖다 주러 우리 집에 오셨다가 에어컨을 안 튼 우리 집에 완전히 기함을 하셨다. "너희 왜 에어컨 안 틀고 사냐"고, "에어컨 좀 틀라"고….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날이 꽤 더워지니까, '에어컨을 조금 더 오래 틀면 되겠지'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눈에 띄었다. 내가 분명 거실 에어컨을 끄고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켜져 있는 것이다. 우리 침실 문도, 동거인 방문도 닫혀있는데 거실만 에어컨 바람이 빵빵하다. 시원하다 못해 추울 정도였다. 거실에 아무도 없는데 에어컨을 밤새 뭐하러 켜겠나. 그래서 난 당연히 에어컨을 껐다. 근데 또 그 다음 날 밤, 분명 나는 스캇이랑 자기 전에 에어컨을 껐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또 켜져 있다. 이런 상황이 계속 반복됐다. 진짜 이상했다. 에어컨이 자기 마음대로 껐다 켰다 하나? 자동 설정을 한 것도 아닌데!
날짜도 정확히 기억한다. 지난 6월 13일. 스캇과 내가 놀러 가던 날이었다. 식당에서 같이 점심을 먹는데 스캇의 핸드폰에 문자가 왔다. 자연스레 문자를 같이 확인했다. 하우스메이트의 문자였다.
"어쩌고저쩌고 'fxxking' 에어컨이 또 꺼져있어."알고 보니 지난 며칠 동안 나는 열심히 에어컨을 꺼대고, 얘는 열심히 켜댔던 것이었다.
난 정말 이해가 안 됐다. 누가 거실에서 자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방문을 열고 자는 것도 아닌데 왜 한밤중에 빈 거실에 있는 에어컨을 계속 틀어놔야 하지? 진짜 엄청난 전력 낭비 아닌가. 자기는 전기요금이나 물세 같은 돈 안 낸다고 마음대로 쓰겠다는 건가 뭔가. 그 전기세는 오롯이 우리 스캇 월급에서 나가는데!
내가 투덜투덜 대니 스캇이 그제야 말했다. 원래 여긴 에어컨을 그냥 하루 종일, 여름 3개월 내내 틀어놓는다고. 심지어 예전에 같이 살던 룸메이트는 더위를 많이 타서 4월부터 9월까지 에어컨을 틀어야 했다고. 뭐? 그게 사실이야?
여행에서 돌아와 시엄마를 만났다. 에어컨 이야길 꺼냈다.
"나는 한국에서 진짜 전기, 물 절약하며 살아와서 이런 게 정말 이해가 안 돼요. 3개월 동안 에어컨을 틀어놓는다니, 믿을 수가 없어요."그랬더니 시엄마는 오히려 나를 이해 못 했다.
"그럼 여름에 어떻게 사니? 에어컨을 적당한 온도로 맞춰놓고 자동으로 작동됐다가, 꺼지다가 하도록 오토매틱으로 설정해 놓는 게 이곳에서는 기본이야."모든 집이 다 그렇게 산단다. 옆에 계시던 시아빠도 동의하셨다. 오히려 "덥다고 에어컨을 껐다 켰다 하면 전기가 더 든다"고, "이게 더 절약하는 방법"이라고. '절약'이라니요, 시아빠…. 그나마 '덜 낭비'하는 방법이겠죠….
하여튼 나는 그동안 당연히 한국에서의 방식대로 살았고, 스캇은 굳이 나에게 태클을 걸지 않았다. 같이 사는 하우스메이트는 내가 더운데도 에어컨을 틀지 않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는 걸 나는 그제야 알게 됐다.
어쨌든 내가 지금 사는 곳은 미국이고, 나랑 스캇 둘만 살면 우리만의 룰을 새로 만들 수 있지만, 같이 사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 때문에라도 당분간은 미국의 방식대로 살기로 했다.
처음에는 전기가 너무 아까워서 혼자 전전긍긍하고, 스캇은 옆에서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난 대신 에어컨을 제외한 모든 전기를 아끼려 노력하고 그렇게 지냈다.
아둥바둥 500kw 아꼈는데 요금은 고작 2만 원 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