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밥터디, 청년들이 먹는 '불안밥'

[아, 외롭다 ①] 경쟁 사회를 사는 청년들이 밥 먹는 방식

등록 2015.08.19 17:12수정 2015.08.19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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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안에서는 혼자 밥을 먹는 게 편안하거든요. 아무에게도 시선을 안 받고, 특히나 이 식당 같은 경우에는 혼자서 밥을 먹는 사람들이 많고 딱히 신경을 안 쓰는 분위기여서, 딱히 위화감이 없어요." - 대학생 이지영(25, 가명)씨

혼자 밥을 먹는 것은 외로운 개인의 모습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지금의 '혼밥'(혼자 밥 먹기)이 과거의 '혼밥'의 의미를 여전히 지니고 있는지는 좀 더 살펴봐야 한다.

혼자 살고 있는 '1인 가구 청년'들이 급증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0년의 1인 가구의 비중은 15.5%였던 데 비해 2012년에는 25.3%로 늘었다. 2014년에 발표된 1인 가구의 나이대 별 분포를 살펴보면 20대가 17.0%, 30대가 17.9%를 차지한다.

자연스럽게 청년들이 집에서 다른 가족들과 같이 식사할 기회가 없어지고, 오히려 이러한 추세에 맞춘 '나홀로 식사족'을 위한 식당을 방문할 가능성이 잦아졌다. 신촌의 한 일식당의 경우, 주문 때부터 식당을 빠져나올 때까지 사람들과 접촉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입구에서 선불로 주문하고 테이블에 앉아 메뉴를 기다린다. 자리에는 칸막이와 커튼이 쳐져 있어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고, 개인용 음수대와 옷걸이도 따로 있다.

혼밥이 부정적이고 부끄러운 것이라는 인식은 이제 과거의 일이 되었다. 서울에 사는 임소연(21, 가명)씨는 "다른 사람의 밥 먹는 속도에 맞추지 않아도 되고 자신의 밥값만 계산하는 편이 훨씬 합리적이고 편안하다"며, 각자의 스케줄에 따라 제각각인 밥 먹는 시간을 굳이 맞추려 하기 보다는 학기 중에는 혼밥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강원 지역 한 사립대를 다니는 허준영(21, 가명)씨는 "친구들과 같이 밥을 먹으면 식당을 방문하게 되는 경우가 많지만, 혼자 밥을 먹을 때는 자유롭게 해먹을 수 있으니 비용이 적게 든다"며, 혼밥을 통해 식비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저렴한 학생 식당에서만 하루 삼시 세끼를 먹어도, 기본적으로 하루에 만원이 식비로 든다고 말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즉석밥, 참치, 맛김 등을 주문해 놓으면 하루 식비를 절반 이상 아낄 수 있다.

당신의 '혼밥' 레벨은?


 MBC <나혼자산다>에 출연한 신화 김동완이 패밀리레스토랑에서 혼자 식사하고 있다.
MBC <나혼자산다>에 출연한 신화 김동완이 패밀리레스토랑에서 혼자 식사하고 있다.MBC

방송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혼밥에 대한 반응도 처량하거나 싸늘하지 않다. MBC <나 혼자 산다>에는 일명 '혼밥 레벨'이 소개됐다. 편의점에서 삼각 김밥과 라면을 먹는 단계(레벨1)부터 술집에서 혼자 술 마시기(레벨9)까지 레벨을 올리는 일종의 놀이로 '혼밥'을 즐기는 모습은 신선했다. 출연진들이 고기 집을 찾아가 소주를 시키고 혼자 고기를 구워먹고 있거나 혼자 레스토랑을 방문해 느긋하게 식사를 즐기는 모습을 보인다.

혼밥 문화의 이면에는 다양한 이유가 존재하지만, 그 중 '경쟁'이 차지하는 비중도 적지 않다. 장기화되고 있는 취업난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해 등장하고 있는 캠퍼스의 '자발적 아웃사이더'와 관련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취업을 위해 캠퍼스의 낭만과 인관 관계를 포기하기도 한다.


대학생 7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경인일보>의 설문 결과에 의하면, 응답자의 45.8%가 인간관계보다 미래를 위한 목표가 중요하다고 응답했고 47%가 이를 위해 '아웃사이더'가 될 마음이 있다고 했다. 상대적으로 저학년인 1, 2학년 학생들도 '자발적 아웃사이더가 될 용의가 있다'고 밝힌 비율이 각각 32%, 48%나 됐다. 생존을 위해 일찍부터 취업을 준비하는 경우가 많아진 현실을 반영하는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수도권의 한 대학에 다니는 손아현(22, 가명)씨도 미래의 취업을 위해 1학년 때부터 철저히 학점관리를 했다. 그는 2학년 때 인문학 전공에서 회계 관련 학과로 전과 했다. 그는 "열심히 해서 전과를 했지만 다시 또 경쟁을 해야하는 것 같아 힘들다"고 말했다. "전과한 학과에는 회계사가 되기 위해 1학년 때부터 CPA 자격증 취득을 목표로 도서관을 자주 오가는 학생들이 있는데 혼자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는 '자발적 아싸'가 되고 일찍부터 준비한 사람들에 비해 자신이 뒤처지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 

혼밥의 반대 편에는 밥을 같이 먹는 '밥터디'가 있다. 혼자 밥을 먹는 것이 지겹거나 외로운 사람들이 서로 시간과 장소를 정해 정기적으로 모여서 밥을 먹으며 정보 공유도 하는 형태다. 취업 준비생들이 몰리는 온라인 카페에는 '밥터디할 사람을 구한다'는 게시물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밥터디'를 아시나요?

밥터디는 같이 밥을 먹는 것과 혼자 밥 먹기의 장점만을 결합한 형태다. 여럿이 밥을 먹지만 동시에 밥만 먹고 돌아가기 때문에 시간을 빼앗기지 않는다. 같이 밥 먹을 사람을 구하거나 시간을 조정하기 위해 휴대폰을 붙잡고 시간을 허비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함께 밥을 먹음에도 그 관계는 일시적이다. 하루 정해진 시간 이외에는 만나지 않고 취업이 되면 구성원들과 떨어지게 된다. 밥터디에서 밥을 같이 먹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터놓고 이야기 하며 친밀감을 형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규제하기 위해서다. 밥 약속을 외적인 규제 수단으로 정해두고 밥터디 시간에 맞추어 자기 생활을 규율하는 것이다.

혼밥은 자연스러운 하나의 현상으로 볼 수도 있지만, 취업 준비생들이 혼밥 혹은 밥터디를 하는 이유는 무언가 씁쓸함을 남긴다. '개인의 자유이니 상관없다'고 말하기에는, 경쟁이 가속화된 환경에서 함께하기 보다는 고립되고 파편화되는 것을 스스로 선택하는 청년 개인들의 모습을 혼밥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혼밥의 한 측면에서 볼 수 있듯이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서 인간 관계를 포기하고 자기 자신을 스스로 고립하는 모습이 존재한다. 이런 경쟁적인 양상이 '자발적 아싸'와 같이 현재를 포기하고 미래의 목표를 성취하는 데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청년들은 학교, SNS 등과 같은 일상적인 관계에서도 파편화 된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사람들과 편안하게 지내야하는 관계에서조차 경쟁으로 인식하고 진지하고 솔직하게 들어줄 수 있는 편안함과 진정성보다는 불안감과 회의감이 앞선다. 일상생활에서 무엇이 청년들을 외롭게 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청년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아, 외롭다] 기획에서는 이런 부분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김태호 시민기자는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http://seoulyg.net) 대학생기자단입니다. 청정넷은 7월 13일부터 7월 19일까지 서울청년주간(http://youthweek.kr/)을 열었습니다.
#혼밥 #밥터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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