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터는 눈높이보다 높게? 당신은 속았다

[사무실을 살려줘, 쫌②] 사무실 노동환경, 무엇이 문제일까

등록 2015.08.26 21:38수정 2015.08.27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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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서 일하는 사람을 보면 '편하게 일한다'는 말이 나오던 시대가 있었지요. 아닙니다. 장시간 앉아 일하면 땀은 나지 않을지언정 몸은 망가집니다. 3, 4번 디스크가 터지고 목은 거북이가 됩니다. 근골격계 질환에 노출됩니다. 장시간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은 건강하게 일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제 그 권리를 찾고자 합니다. 관련 기사를 10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편집자말]
(*1편에서 이어집니다.)

'산업재해', '직업병'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조업 노동자들을 떠올린다. 하지만 사무직 노동자들이 겪는 산업재해, 직업병도 이에 못지않게 심각하다. 목·허리 디스크, 거북목 증후군, 손목 터널 증후군 등과 같은 근골격계 질환이 대표적이다.

근골격계 질환은 신체상해처럼 눈에 확 드러나진 않지만, 이를 방치하게 되면 일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될 정도로 건강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는 '사무실에서 앉아서 일하면 편하다'는 인식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사무직 노동자들의 근골격계 질환은 사무실 노동환경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작업자들의 신체적 차이가 있고, 작업 자세도 계속 변하는데 획일화된 사무실 작업환경은 이를 수용하지 못해요. 일정한 자세를 항상 유지하도록 강제하면서 불편한 작업자세가 반복되는 거죠.

또 책상 앞에 앉아서 고정된 높이와 각도의 모니터를 장시간 바라보다 보면 정적 피로가 발생해요.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피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누적되는 거죠. 이는 근골격계 질환 발생의 원인이 됩니다.

그런데 편하게 앉아서 일한다는 인식 때문에 이러한 직업적 유해요인과 육체적 부담이 간과되거나 무시되고 있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예요."- 김철홍 인천대 산업경영공학과 교수


<오마이뉴스> 편집부에서 함께 일하는 김지현 기자와 나는 지난 7월부터 정진주 사회건강연구소장, 김형렬 가톨릭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김철홍 인천대 산업경영공학과 교수(인천대 노동과학연구소장)를 차례로 만났다. 노동과 건강을 함께 연구하는 전문가들이다. 이들에게 지금의 사무실 노동환경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 물었다.

세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이 '노동'이라는 인식이 아직 사회 전반적으로 미약한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이들에게 우리가 찍어간 <오마이뉴스> 사무실 사진을 함께 보여줬다.


 오마이뉴스 기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오마이뉴스 기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김지현

 <오마이뉴스> 사무실 풍경
<오마이뉴스> 사무실 풍경김지현

사무실 장비, 가장 중요한 것은 '조절성'

"칸막이가 없네요. 이렇게 되면 뒤통수가 매일 따가운 거지. 프라이버시가 기본적으로 보장이 되어야 하는데... 개인이 확보해야 할, 최소한의 안정감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의 규격이 있는데, 이건 다 때려 넣어서 닭장을 만드는 거예요." - 김철홍 교수

"의자 등받이가 전혀 역할을 못하고 있네요. 등을 대도 확 젖혀지지 않는, 등을 고정해줄 수 있는 의자가 좋아요. 모니터도 너무 높아요. 모니터 화면이 눈높이에서 15도 정도 아래에 있는 게 좋아요." - 김형렬 교수

"책상이 높낮이 조절이 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앉아서 일하는 게 척추에 하중이 얼마나 큰데요. 앉았다 일어섰다 하면서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는 책상이 필요해요. 제가 2000년대 초반 덴마크를 갔는데, 거기는 다들 서서 일하는 거예요. 높낮이 조절이 되는 책상으로. 외국에는 이미 일반화돼 있어요." - 정진주 소장

현재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책상, 의자 등은 대부분 노후화되어 있다. 책상 가운데는 10여 년 전부터 사용하던 것도 남아 있다. 의자의 경우 교체가 많이 되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등받이와 쿠션이 부실하다. 삐걱거리거나 일부분이 망가진 의자들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의자에 힘을 싣다가 조용한 사무실에서 의자와 함께 사람이 '쿵' 하고 넘어지는 민망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막내 기자에게 돌아간 망가진 의자. 다행히 새 걸로 교체되었다.
막내 기자에게 돌아간 망가진 의자. 다행히 새 걸로 교체되었다.홍현진

'정보의 부족'도 있었다. 사실 전문가들에게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모니터 화면은 눈높이보다 높은 곳에 있는 게 좋다고 대부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노트북 거치대를 사기도 하고, 모니터 받침대 아래 두꺼운 책을 쌓아두기도 했다. 그런데 이 같은 노력이 목을 뒤로 젖혀지도록 하거나 거북목을 만드는 등 오히려 목 뒤쪽에 무리를 주고 있었다.

이러한 모습은 <오마이뉴스> 사무실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실제로 회사에서도 사무실 집기 교체를 위해 다른 언론사 사무실을 방문한 결과, 크게 다른 점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김철홍 교수는 "한국의 경우 사무직 노조가 많지 않고, '그래도 사무직이 편하지'라는 인식이 있다 보니 그동안 사무직 노동자의 건강권에 대한 인식이 낮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사무실을 어떻게 바꿔야 할까.

"근골격계 질환의 원인 중 하나가 '과사용'이에요. 특정 부위를 많이 쓰면 부담이 생길 수밖에 없죠. 어떤 자세든 한 자세를 계속 취하는 건 위험해요. 그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장비가 필요한 거죠. 이미 제조업의 경우, 예전에는 작업장에 사람을 맞췄다면 지금은 작업장을 사람에 맞추고 있어요. 컨베이어 벨트가 사람에 맞춰서 움직여요. 그러니까 사람들도 덜 아프고, 생산성도 더 좋아졌어요." - 김형렬 교수

김철홍 교수 역시 같은 맥락에서 '조절성'을 강조했다.

"예전에 책을 보고 공부할 때는 책을 움직일 수 있었어요. 그때그때 내가 편안한 자세에 따라 이렇게도 봤다가 저렇게도 봤다가... 그런데 컴퓨터를 쓰게 되면서 모니터는 고정돼 있고 내가 여기에 맞춰야 하는 거죠. 그게 정적 피로를 가져오는 거예요. 몸의 가변성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조절성을 가진 작업환경이 조성이 돼야 해요."

김 교수는 책상과 의자를 포함해 모니터, 키보드 모두 조절성을 가진 것으로 교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컴퓨터를 이용하는 바른 자세
컴퓨터를 이용하는 바른 자세신수빈

 몸에 좋은 컴퓨터 작업 환경
몸에 좋은 컴퓨터 작업 환경신수빈

내 몸이 무너지면, 내 일도 못해요

전문가들은 쾌적한 노동환경을 만드는 것은 사업주의 당연한 의무라고 강조했다. 이는 산업안전보건법 5조 2항(사업주는 근로자의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 등을 줄일 수 있는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하고 근로조건을 개선할 것)에도 명시되어 있다. 특히 근골격계 질환과 관련해서는 산업안전보건법 24조에 따라 사업주에게 근골격계질환 예방의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최근 인터넷에서 아우디 자동차 생산공장 '입는 의자'가 화제가 됐잖아요. 작업자들이 편하게 일할 수 있는 의자를 개발한 거죠. 제조업에서는 얼마나 생산도구 개선에 투자를 많이 합니까. 책상, 의자, 컴퓨터 등이 사무직에게는 유일한 생산도구인데 사업주가 그걸 맞춰줘야 하는 건 당연하죠. 그래야 작업의 능률도 좋아지고요."- 김철홍 교수

'보이지 않는 골병'인 근골격계 질환을 겪고 있는 사무직 노동자들은 치료비를 자비로 부담하는 경우가 많다. 정진주 소장은 "업무상 사고나 질병으로 인해 4일 이상 요양하면 산재 신청을 할 수 있다"며 "그러나 고용불안정성이 있다 보니 노동자가 아프다고 이야기하기 쉽지 않고, 업무연관성 증명 문제 때문에 산재 신청도 하기 어려워하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지금까지 업무로 일한 질환은 '개인차'의 문제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었다. 실제로 <오마이뉴스> 편집부 기자들도 유사한 업무를 하지만 아픈 부위나, 정도는 각기 다르다. 이에 대해 김철홍 교수는 한 가지 비유를 들었다.

"같은 자동차 밑에서 조립하는 사람이 있어요. 한 사람은 키가 커요. 180cm 정도, 또 한 사람은 160cm 정도 된다고 해요. 똑같은 일을 해도 한 사람은 키가 크니까 허리를 숙여야 하고, 한 사람은 까치발을 들어야 하는 거예요. 아픈 곳도 다르겠죠. 그런데 여기에다가 '얘는 허리가 아프다는데 왜 너는 어깨가 아프냐'라고 말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요? 운동을 많이 하거나 근력 활동을 많이 하는 사람은 아픈 게 더디 오고, 회복도 빠를 수 있지만 그러한 개인적인 차이나 운동에 대한 취미나 습관을 회사가 강제할 수는 없는 거죠."

전문가들은 사무직 노동자의 건강 문제를 장시간 노동 문제와도 연관 지어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복된 장시간 노동이 문제예요. 서서 일하는 게 좋다고 하지만, 이 자세 역시 오랫동안 취하게 되면 위험하죠. 마트에서 일어서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생각해 보세요. 1시간 이내에 휴식을 취해주는 것이 좋아요." - 김형렬 교수 
"자동 차단 시스템이 필요해요. 일정 시간이 되면 스크린을 자동 차단한다든지, 벨이 울린다든지. 그리고 같이 체조를 하든지 쉬든지 하는 거죠. 제조업에서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어요." - 정진주 소장

전문가들의 조언을 들으며, 그동안 뉴스에 나오는 '노동' 관련 이슈에는 관심을 많이 가져왔지만 정작 우리가 하고 있는 노동에 대해서는 무지했다는 반성이 들었다.

"<오마이뉴스>의 최대 목표가 무엇인가요. 좋은 뉴스를 내는 것 그리고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것 아닌가요? 사업주가 건강보건을 사업목표에 넣어야 해요. 산업안전보건 교육도 필수고요. 노동자들도 일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 몸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지해야 해요. 내 몸이 무너지면 내 일도 못해요." - 정진주 소장

이러한 문제의식에 따라 <오마이뉴스> 사무실은 조금씩 바뀌고 있다. 편집부를 시작으로 모니터와 의자, 그리고 마우스가 교체되었다. 모니터 화면이 커지면서 더 이상 등과 허리를 굽히지 않아도 되게 되었고, 새롭게 지급된 의자는 허리를 단단히 지지해 주었다. 마우스 역시 손목에 무리가 덜 가는 버티컬 마우스로 바뀌었다. 장비 몇 개만 바뀌었는데도 노동자들이 느끼는 변화는 크다. 사무실이 살아야 노동자도 산다.

 오마이뉴스는 최근 의자, 모니터, 인체공학 마우스 등 사무기기 교체를 단행했다.
오마이뉴스는 최근 의자, 모니터, 인체공학 마우스 등 사무기기 교체를 단행했다. 김지현

(*3편에서 계속됩니다.)

[관련 기사]

① 디스크 탈출, 팔 마비... 나는 사무실이 무섭다
#사무실 #노동환경 #근골격계 질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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