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않고 사라지는 것, 무슨 의미일까

산그늘에 묻혀

등록 2015.08.24 20:34수정 2015.08.24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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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은 결코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Old soldiers never die, They just fade away.)


맥아더 장군이 52년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1951년 4월 19일 미국 상하 양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한 연설문의 마지막 내용이다. 근래에 이 말에 사로잡혀 있다. 이 말이 갖는 함의는 무엇일까. 사라짐은 삶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을진대 그렇다면 사라짐을 통해 삶의 무엇을 현현(顯現)할 수 있다는 말인가. 삶의 본질적 구조라고 할 수 있는 '사는 것' 혹은 '살아가는 것'과는 어떤 얼개로 연결되고 있는 것일까. 이런 생각은 변화가 없는 일상의 적막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사는 것의 끝에 이르기까지 집요하게 계속되었다.

산골의 생활은 여유와의 동거다. 자유와의 동거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여유 혹은 자유의 진액은 고독일 수밖에 없다. 고독은 또 어디서 왔는가. 무엇이나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현실적인 무력감에서 도래했다. '고독은 자유'라고 하신 법정 스님이 살아 계신다면 죽비를 맞을 말이다.

그럼에도 묻고 답하기를 여러 번 반복하여 매번 같은 답을 얻었으니 내게 있어 그것은 사실인 것이다. 누구의 제재도 없이 내 자유의사에 따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고 살고 싶었다. 실제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럼에도 넘쳐나는 이 무력감은 무엇일까. 실제와 이상의 갭일까? 아니면 언제나 만족하지 못하는 내 본질 때문인가? 그토록 꿈꿔왔던 삶의 방식이었는데 왜, 이런 공허감이 되풀이 되는 것일까. 오랫동안 그 물음을 지속해 왔다.

오랜 직장생활을 마감했을 때 상실감이 먼저 찾아왔었다. 주체에서 객체로, 중심에서 변두리로 이동했다는 실감은 처음의 자유의 만끽에서 곧 상실감으로 변했다. 그러다가 얼마 되지 않아 그것은 다시 무력감을 거쳐 내밀한 고독이 되었다. 따라서 지난 1년 동안 고독이나 외로움을 어떻게 두려워하지 않고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것인가,에 몰입해왔다. 그 결과의 산물이 고독이 우리 삶에 왜 필요한지에 대한 각성이었다. 고독에 대한 탐구를 통해 이상의 삶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아시다시피 고독은 인간의 속성이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면 그 반대로서 고독은 우리에게 성찰과 겸손을 통해 삶의 에너지를 전한다. 그래서 고독은 반드시 필요한 삶의 요소이다. 그럼에도 최근 또 낯선 것을 만나게 되었으니 그것은 성찰을 넘어 '사는 것'에 대한 의미였다. 사는 것, 그리고 살아가는 것. 성찰과 겸손을 통해 삶을 직면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해도 행복하지 않았다. 아직 욕심이 출렁이고 있었고, 사람들이 그리웠고, 사랑이 그리웠다. 다시 외로워졌고 혼란에 휩싸였다.


그렇다면 또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러다 삶은 무엇인가, 그 끝은 어디인가를 되작거렸고 떠오른 것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이 세상은 사라지는 것들로 구성되어 있지 않은가. 모든 것은 생겨난 이후 바로 사라짐을 향한다. 자연의 법칙이다. 이것을 거스르는 존재는 없다. 세상의 모든 것은 희로애락을 통해 소멸되어 간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처럼,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순환처럼. 그러나 소멸이 곧 죽음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소멸하되 죽지 않는다는 것, 죽음은 멀리 있고 사라짐은 가까이 있다는 것, 죽지 않고 사라지는 것. 거기에 삶을 궁굴리는 커다란 의미가 담겨있었다. 삶, 사라짐, 사라지는 것…….

그렇다. 사라지는 것이다. 아직 끝은 멀리 있으니 자기 삶의 몫을 다했다면 사라져 주는 것이다. 지극히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일이다. 세상에 남겨진 이름과 상관없이 주체에서 객체로, 중심에서 변두리로 몸을 뺐다면 그에 걸맞게 능동적으로 없어지는 것이다. 그것이 곧 사라짐이다. 사라짐은 세상의 질서를 위해서도 당연한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대대(代代)를 물리는 것과 같고, 전(前)세대가 후(後)세대에게 묵은 의자를 물려주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를 넘어서려 한다. 이미 사회적 공간이동이 끝났음에도 허망을 위해 공중에서 낙엽처럼 팔랑거리는 이들을 가끔 본다. 정말로 무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세월은 이 순간에도 흐른다. 흐드러지게 피었던 봄꽃도 반드시 떨어져 흩어진다. 나는 새도 떨어뜨릴 것 같은 권력도 언젠가는 기운다. 그것을 알고 스스로 흔적을 지우고 사라지는 것. 더없이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산그늘에 묻혀 사는 노인들을 본다. 누구 하나 삶에 대해, 늙음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세월을 받아들이고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우리는 그저 때가 되었음을 인정하고 기꺼이 웃는 낯으로 장삼이사가, 갑남을녀가 돼야 한다.
     
맥아더가 어떤 의미로 그 연설을 했는지 알 수 없다. 혹자는 그의 원수로서의 직위가 죽을 때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비록 군복을 벗지만 원수의 직위는 계속된다는 뜻으로, 또 다른 사람은 군인으로서 그가 퇴역한다고 해도 그의 빛나는 업적과 카리스마는 사라지지 않고 후배들의 가슴에 유전자로 남아 계속 될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나는, 참나무 밑 작은 울타리에서 나름의 개똥철학으로 산촌의 적막을 곰곰이 헤적이다가 문득 맥아더의 말이 다른 의미로 떠올라 이 글을 쓰고 있다. 모든 것의 이치는 하나로만 묶여 있지 않은 것임을 생각하면서. 
덧붙이는 글 무등일보에도 송고했습니다.
#산골편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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