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421미터의 KL타워쿠알라룸푸르에서 '유일한'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어서 체감하는 높이는 훨씬 더하다. 페트로나스 트위타워와 함께 말레이시아를 대표하는 관광명소다.
서부원
'회색 도시' 쿠알라룸푸르의 랜드마크는 KL 타워와 페트로나스 트윈타워다. 쿠알라룸푸르를 넘어 말레이시아를 대표하는 상징물이다. 열쇠고리나 메모꽂이, 티셔츠 등 관광지에서 파는 온갖 기념품들의 '유일한' 디자인 소재로, 실상 그것 아니면 딱히 살 게 없을 정도다. 심지어 현지 방송사의 TV 뉴스도 이 두 건물을 나란히 담은 화면을 배경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 둘은 쿠알라룸푸르 최고의 관광 명소이기도 하다. KL 타워는 높이가 421미터에 이르는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고층 타워다. 더욱이 대부분이 평지인 쿠알라룸푸르에서는 드물게 언덕 위에 세워져 있어, 빌딩 숲속에서도 유독 도드라져 보인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도시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오는데, 맑은 날에는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믈라카 해협까지 조망할 수 있다고 한다.
높이로 치자면 페트로나스 트윈타워를 더 앞에 둬야 한다. 88층짜리 건물로, 높이가 452미터에 달한다. 현재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높은 건물이라는데, 쌍둥이 빌딩으로는 앞으로도 당분간 세계 1위라는 타이틀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우리나라의 한 건설사가 일본 업체와 경쟁하듯 완성한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똑같이 생긴 두 건물 사이에는 화해를 상징하듯 육교가 놓여 있다.
그러나 조만간 세계는커녕 말레이시아 내에서도 그 '명성'과 '지위'를 내려놔야 할지도 모르겠다. KL 타워에서 시내를 내려다보면 군데군데 살갗이 벗겨진 빈 터가 보이는데, 그 위엔 어김없이 크레인과 굴착기들이 명령을 기다리는 듯 잠시 멈춰서 있다. 그곳마다엔 머지 않아 고층빌딩이 세워질 것이다. 보아하니 얼마 전까지는 울창한 숲으로 덮여 있었을 만한 자리다.
2019년까지 쿠알라룸푸르에는 635미터 높이의 빌딩이 또 세워질 계획이라고 한다. 'KL 118'로 이름 붙여진 이 마천루가 들어서게 되면, KL 타워와 페트로나스 트윈타워는 과거의 영화를 뒤로 하고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날 게 뻔하다. 그때 다시 KL 타워를 찾는다면, 지금처럼 발아래 건물들을 내려다보는 '쾌감'만큼 고개 들어 올려다보는 '굴욕' 또한 경험하게 될 것이다.
'KL 118'이 완공되면 세계 일곱 번째 고층 건물로 등극(?)한다. 듣자니까, 페트로나스 트윈타워를 비롯한 말레이시아의 내로라는 고층 빌딩은 죄다 우리나라가 건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한다. 그런 화려한 이력 때문인지 'KL 118'도 우리나라 굴지의 건설사들끼리 수주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자부심이 들지 않는 이유는 뭘까.
수십 층짜리 빌딩들이 '왜소해' 보이는 쿠알라룸푸르의 수그러들지 않는 건설 붐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828미터짜리 두바이의 부르츠 칼리파도 곧 따라잡을 태세다. 부르츠 칼리파의 두바이를 넘어설 수 있는 나라는, 지금 세계에서 중국과 말레이시아밖에 없다는 이야기도 있다. 마천루 경쟁에서의 'G2'라는 조롱 섞인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