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사기사건에 연루된 한국인 10명이 수개월간 함께 생활했던 프놈펜 시내 뚤꼭지역 주택의 모습. 사건 발생 직후 경찰에 의해 지금까지도 폐쇄된 상태로 남아 있다.
박정연
여성 피의자 김주희(가명)씨 역시 수개월 전 교도소 면회 당시 "체포될 때까지도 신용대출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대출서비스를 안내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만 믿었다"면서 "이런 게 보이스피싱인 줄 알았으면 진작부터 캄보디아에 올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후회하며 눈물을 흘렸다.
현지 수사당국은 이들 사기단이 한국 내 거주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보이스피싱 범죄를 저질렀고 현지에서 피해를 입은 이들은 없는 것으로 파악했다. 또 증거물로 수백여 명의 전화번호가 적힌 수첩과 전화기 20여 대, 노트북 등을 현장에서 압수했다. 그러나 이들을 캄보디아로 꾀어 보이스피싱 사기 유혹에 빠지도록 만든 주모자에 해당되는 나머지 한국인 일당 2명은 현지에서 체포되지 않고 곧바로 국내로 도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단순 보이스피싱 사기로 여겨졌던 이 사건은 현지 언론매체 <프놈펜 포스트>의 최근 보도로 캄보디아 현지사회를 깜짝 놀라게 하며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지난 20일 발행된 이 신문 기사에 따르면, 이들에게 단순 보이스피싱 사기 외에도 캄보디아 정보통신부 사이트를 해킹, 비밀자료를 훔치고 저장된 통화내용 등을 해킹한 혐의도 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 신문은 지난 19일 열린 최종 심리에서 내무부 산하 반테러지원경찰국 채춘 대령이 "이들이 우편통신부의 비밀 데이터 속에 저장된 자료들과 저장된 통화내역을 해킹했다"고 진술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피의자들은 이날 법정 최종진술을 통해 "정부기관 사이트 접속을 시도한 바 있지만, 이것이 위법인 줄 전혀 몰랐으며 통신자료 등을 훔친 적이 없다"고 선처를 호소했었다.
한편 단순 보이스피싱 사건으로 여겨졌던 범죄가 캄보디아에선 흔하지 않은 정부기관 해킹사건으로까지 확대되는 등 파장이 일자, 지난 26일 1심 판결이 예정된 법정에는 많은 취재기자들이 몰려왔다. 법정 촬영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산하 국가부패방지위원회(ACU)가 재판부의 사전 승낙 하에 이례적으로 녹화용 카메라를 법정에 설치, 전 재판과정을 모니터링하기도 했다.
사실 1심 판결을 앞두고 해킹을 통한 국가기관 정보유출 혐의가 유죄로 확정될 경우 형량이 예상보다 훨씬 높아질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징역 1년형이라는 이번 판결 내용만 본다면, 해킹 범죄는 증거불충분으로 혐의가 인정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재판부도 이 부분만큼은 무죄라고 밝혔다. 이들에게는 '집단 범죄 예비 혐의'만 유죄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경찰 등 관계 전문가들은 단순히 증거불충분 사유 때문이라기보다는 해킹을 비롯한 IT정보통신 관련 범죄에 대해 캄보디아 현행법상 체벌조항이나 관련규정이 아직 미비하거나 준비가 덜 된 탓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이 끝난 후 수갑을 찬 채 경찰에 의해 다시 압송되기 직전 피의자중 한 명에게 항소할 것인지 여부를 물었다. 그는 "항소해봤자 시간만 더 갈뿐이다. 그냥 포기하겠다"라고 짧게 대답했다. 일부 젊은 여성 재소자들은 판결 소식을 들은 후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나머지 피의자들은 1심 재판 결과에 대해 대체로 수긍하는 듯 담담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집행유예 정도로 끝날 것이라 내심 기대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