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독일 패망 후 미국 여론은 '멘붕 상태'에 놓였습니다. 나치 패망 전, 이미 냉전은 시작되었고 나치 독일을 패망시킨 가장 큰 공은 자기들에 있다고 생각한 미국 국민들은 소련과 함께 독일의 사분의 일만 할당된 전후 처리 결과가 썩 마음에 들 지 않았기 때문이죠.
베를린을 가장 먼저 점령한 것이 소련이었다는 것도 마치 미식 축구에서 마지막 10야드도 채 안 남기고 패스 미스로 터치다운을 놓친 그런 허탈한 기분이었을 겁니다. 물론 나치를 쓰러뜨리는 데 미국의 공은 정말 컸습니다.
하지만 나치가 가장 무섭고 잔인하게 유럽에 분탕질을 칠 때 미국은 유럽 옆에 있지 않았습니다. 나치의 예봉을 꺾고 그들에게 결국 우린 패망할 것이라는 공포감을 들게 만든 건 소련이었죠.
소련의 희생은 다른 유럽 나라에 비해 너무나 컸습니다. 그 당시 소련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100여 년 전에나폴레옹이 이끈 프랑스 군을 대할 때와 비슷한 전술을 필 수밖에 없었죠. 자신들의 안방 깊숙히 적을 유인한 후, 보급로를 끊고 적이 자멸하여 퇴각할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필연적으로 이 전술은 아군과 민간인의 엄청난 희생을 요구합니다. 보급이 끊긴 군대는 오합지졸이 될 뿐만 아니라, 폭력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는 민간인들에게 야수의 잔인성을 보이는 건 이미 인류 전쟁사가 잘 보여주고 있지요. 한국전쟁 때에도 물론 그랬고요. 당시 소련 입장에선 '우리 연합군 맞아?' 할 정도로 처절하게 혼자 싸우는 처지였습니다.
히틀러는 국민의 지지를 얻어가며 자신에게 반대하는 세력을 차례차례 숙청해나가는 타고난 정쟁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역사를 깊게 읽지도 지도자로서 콘텐츠를 쌓는 데 관심을 두지도 않았습니다. 결국 히틀러는 100여 년 전 나폴레옹의 전철을 똑같이 밟아가며 소련이 파놓은 패망의 늪에 자국의 국민들을 인도합니다.
일본을 패망으로 이끄는 과정도 큰 관점에서유럽전선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당시 일제의 멸망은 절대로 미국만이 이뤄낸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이름도 전해지지 않는 수많은 독립군들은 (여기서 독립군은 포괄적 의미입니다, 동학농민군, 항일의병들, 3.1운동 열사들, 광복군, 독립군, 의열단 등 일제에 목숨을 걸고 항거한모든 분들을 포함합니다) 일제가 자기들의 식민지로 우리민족을 탐하기 시작할 때부터 끊임없이 일본군에 타격을 가했습니다. 그리고 중국을 침공하려는 일본군에게 자신들의 뒤에 늘 적이 있다는 압박을 가했습니다.
중국 또한 내전 중에서도 결국 일제를 대륙의 '늪'에 빠드렸습니다. 일제가 한참 독이올라 독일이 울고 갈 정도의 천일공로할 학살과 범죄를 이웃나라들에 저지를 때 미국은 역시 누구 옆에도 있지 않았습니다.
미국이 결국 일제에 '파이널 블로우'를 날렸지만, 우리 민족은 어느 나라보다도 먼저 일제를 멸망의 길로 인도하며 수십 년 동안 천문학적인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를 감수했습니다. 우리 민족과 일제의 전쟁은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기 한참 전인 1894년 동학 농민 항쟁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후, 이 전쟁은 1945년까지 독립군의 꾸준한 항쟁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런 대일 항쟁이 3년간의 프랑스 레지스탕스 활동보다 의미가 없을까요? 프랑스는 떳떳이 전승국 대접을 받고 독일의 분할점령에까지 참여했습니다.
우리 민족이 일부로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역사 교과서까지 바꾸면서 노력할 이유는 없습니다. 항일 전승절 행사는 중국보다 더 떳떳이 대한민국에서 할 수 있어야지요. 우리는 그에 합당하고도 남을 희생을 치렀습니다. 'ㄱ'을 보고 일부러 'ㄴ'이라고 부르려고 억지로 노력해야 할 이유가 뭔가요?
광복 후 지금까지 이어지는 남북의 대립은 여전히 튼튼한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는 남한의 친일 세력과, 북한의 1인 독재와 제정일치를 섞은 왕조 세력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겠지요. 이 두 세력의 공통점은 자기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전쟁, 살인, 온갖 불법행위를 거리낌 없이 저지르고 왔다는 것입니다.
서양식의 우파니 좌파니 하는 레이블링은 이 두 세력들에게 적용될 수 없다고 봅니다. "꼴통 보수", "빨갱이"라는 단어들또한 결코 이 두 세력들을 표현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단어들도 서양식 정치이론으로 이들을 너무 후하게 불러주는 게 아닐까요? 그저 자기들의 기득권 유지와 세습을 위해 어떠한 극단적인 방법도 마다하지 않는 패거리들에 불과한데 말입니다. 이들에게는 타협과 양보가 아닌 탐욕만이 보일 뿐입니다.
한반도에 극단이 아닌 타협,전쟁이 아닌 평화가 뿌리 내리도록 하는 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어느 왕도, 독재자도, 자칭 최고 존엄도, 대통령도 아닌, 평범한 시민들의 몫입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