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고은 글.그림 <우리 가족 납치 사건>
책읽는곰
그러니까 이건 엄마, 아빠 이야기에요. 아빠가 회사에 가려고 막 지하철을 타려는 순간, 사람이 너무 많아 떠밀려 나자빠지고 말았대요. 믿기 어렵겠지만, 그때 아빠 가방이 아빠를 꿀꺽 삼켜버렸대요. 아빠는 회사에 가야 한다고 발버둥 쳤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았대요. 그러더니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 아빠를 '웩' 하고 토해놓았대요.
엄마는 나를 깨우고 먹인 뒤 학교에 보냈대요. 화장하고 아침 설거지까지 해놓고 출근을 하려는데, 갑자기 치마가 훌러덩 뒤집혀 엄마를 보쌈하듯 싸안고 날아올랐대요. 엄마도 아빠처럼 회사에 지각하겠다며 발버둥을 쳤대요.
한참 만에 치마가 엄마를 내려놓은 곳은 아빠가 있는 바닷가. 둘은 훌러덩 벗은 채로 회사도 잊고 먹을 것도 실컷 먹고 잠도 쿨쿨 자고 신나게 놀기로 했다지 뭐예요. 물론 중간에 온 저랑 같이요. 그런데 저는 어떻게 납치되었느냐고요? 그날 저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수학문제를 풀고 있었는데…. 여기까지만. 다 알려주면 재미없잖아요.
오늘은 말을 좀 아끼련다. 독자들의 재미를 위해서. 책을 읽고 난 뒤, 궁금했다.
"딸(9살 큰애)도 학교 가기 싫은 적 있남?""응…. 요즘 구구단 외우는 거 싫어서 가기 싫어.""(헉) 그랬어? 그럼 너도 주인공 여자애처럼 수업 시간에 머리끈을 확 풀러 버려. 그럼 풍선 바람이 빠지는 것처럼 머릿속에서 구구단이 줄줄 나오면서 휭 하고 바닷가로 가게 될지도 모르잖아.""에이 엄마... 그건 상상이잖아.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구구단을 처음부터 외는 건 곧잘 하는데, 갑자기 중간부터 떠올리는 건 어려워서 스트레스를 받았던 모양. 선생님이 구구단을 잘 못 외는 친구에게 2단부터 9단까지 3번씩 써서 오라는 '엄청난' 숙제를 냈다며 흥분하는 아이.
그래서 우리는 이날 한 가지 약속했다. 구구단을 열심히 외워서 구구단 게임을 하기로. 그냥 하면 심심하니까 '우주에서 가장 신 레모네이드'를 만들어주면 먹어야 하는 복불복 게임도 하기로 했다. 신 걸 잘 먹는 아이에겐 그다지 큰일도 아니겠지만, 난 벌써 몸서리가 쳐진다.
우리 가족 납치 사건
김고은 글.그림,
책읽는곰, 2015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