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음성군에 지난 3월 전국 군 단위 최초로 노동인권센터가 문을 열었다. 이달 3일로 개소 180일을 맞았다. 이곳은 비영리 단체로 돈 없고 기댈 곳 없는 노동자들에게 상담과 법률 지원 활동을 무료로 지원하고 있다. 2억 원에 달하는 체불임금, 이주노동자의 밀린 임금 2000만 원을 해결하는 등 굵직한 문제를 풀어냈다. 이 센터를 책임지고 있는 조광복(48) 상임노무사의 입을 통해 이곳의 일상을 들여다봤다. - 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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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성노동인권센터 조광복 상임노무사 ⓒ 이화영
남루한 차림의 노인이 사무실 문을 열어 젖혔다. 이 남성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좌우로 몸을 심하게 흔들었고 절룩거리면서 들어왔다. 지체장애는 그림자처럼 평생 따라 다닌 듯했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한 쪽 손이 없는 중년의 여성이 그를 뒤따랐다. 그녀의 시선은 초점을 찾지 못했고, 어딘가 모르게 불안해 보였다. 행색은 후줄근하고 화장기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는 곧장 정수기로 향했고 냉수를 종이컵에 받아 서너 번 들이켰다. 그러고선 "세상에 이럴 수가 있어요, 이럴 수가 있어요"라는 말을 반복했다. 억울한 얼마나 사무쳤는지 시비 거는 사람처럼 인상을 일그러뜨렸고, 목청은 괄괄했다.
"글쎄 우리 며느리가 있는데, 손목이 잘린 것도 못 볼 일인데 글쎄 휴업급여를 부정수급 했다면서 내놓으라는 거요. 이럴 수가 있어요?"
그에겐 장성한 아들이 있다. 아들은 정신지체 3급이다. 그 아들이 뒤늦게 결혼시켜 달라고 떼를 썼다. 아들의 등살에 어쩔 수 없이 혼인을 시켜 같이 살게 했다는데 그러던 중 건축일 나가서 크게 다치고 말았다.
그 후 아들의 장애는 더욱 심해졌고,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시켜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 노인은 아들을 떠올리며 가슴이 먹먹했는지 "불쌍한 놈"이라는 말을 연발했다. 무엇이든 해주고 싶은 아비였지만, 자신의 성치 않은 몸과 비루한 삶을 한탄하는 듯했다.
병원에 입원한 아들이 남기고 간 며느리가 있다. 1969년생이니 이제 50을 바라보는 나이다. 며느리 역시 정신지체 3급 장애가 있다. 노인은 며느리가 오갈 곳이 없으니 방 하나 구해주고 보살펴주고 있다.
시아버지와 함께 온 며느리는 한 쪽 손이 휑했다. 며느리는 2년 전 인력업체를 통해 취업한 공장에서 취업 첫날 손목을 통째로 기계에 먹히고 말았다. 열 구렁의 물이 한 구렁으로 모인다(十洞之水會一洞)고, 화와 액운이 모두 이 집으로 다 모여드는 듯했다.
며느리는 치료를 받으면서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휴업급여를 받았다. 휴업급여란 산재보험으로 치료를 받는 기간 동안 생계를 지원받는 산재보험급여 중 하나다.
음성군 내 공공기관 관계자가 그녀의 사정을 딱하게 여겨 두 달 정도 되는 그 기간 동안 도움을 줬다. 이 기관에 시간제로 채용했고 한 달에 20여만 원 정도를 두 차례 줬던 일이 있다.
이 시간제 채용은 황당한 사건으로 이어졌다. 근로복지공단은 시간이 꽤 흐른 후에 58일 동안 지급한 휴업급여 240여만 원이 부정으로 수급한 돈이니 그 전액을 반납하라고 결정했다. 시아버지는 이 일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수소문 끝에 이곳을 찾았다.
노인, 듬성듬성 빠진 이를 드러내고 처음 웃었다
근로복지공단, 참 야박하다. 며느리의 처지를 조금만이라도 살폈다면 의도적으로 휴업급여를 부정수급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을 텐데. 이 기관이 피해 노동자를 보듬고 보호해야할 위치에 있고 그런 시선으로 바라봤다면 합법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을 것이다.
산재보상보험법에 부분휴업 급여제도가 있다. 치료받는 도중에라도 시간제로 일을 나갈 경우 일정한 요건을 갖추면 시간제로 받은 급여를 제하고 법이 정한 금액을 부분휴업급여로 지급받을 수 있는 제도다.
충북 음성 노동인권센터는 근로복지공단을 방문해 이 제도를 설명하고 휴업급여의 일부 금액을 보전해줄 것을 요구했다. 며느리는 다행히 반납해야 될 휴업급여의 상당액을 보전받게 됐다.
근로복지공단은 늦게라도 며느리의 권리를 인정해줬지만, 일을 알선해 준 인력업체나 일을 시킨 회사는 한 순간에 사라져버린 손에는 관심이 없다. 병원에 입원시킬 때 빼고는 찾아오기는커녕 안부전화 한 통도 없었단다.
지금이라도 이 회사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혐의로 고발하면 처벌받게 할 수 있겠지만, 노인과 며느리는 너무 많이 지쳐 있었고 힘들어 했다. 또다시 마음고생을 시킬 용기가 나지 않았다.
노인이 듬성듬성 빠진 이를 드러내며 처음으로 환하게 웃었다. 연실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이 일을 잊고 있었는데 두 달이 지났을까 노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는 "늦었지만 고맙다고, 늦게 연락드려서 죄송하다"라고 했다. 수화기 너머로 가는 신음이 들렸다. 흐느끼는 듯 했고, 정말 고마워하는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이 일은 금세 잊힐 것이다. 일을 알선해 준 인력업체도, 일을 시킨 회사도, 근로복지공단 담당자도, 나조차도 잠시 스쳐간 바람처럼…. 하지만 정신지체인 그녀는 휑한 손을 볼 때마다 우리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남의 인권이 존중받을 때 내 인권도 존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면 내 고통도 외면 받는 것은 자명하다. 인권사각지대에 놓인 이웃들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과 우리 사회의 인식 전환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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